밥 숫가락이 안 올라가더라 - 봉하마을을 다녀와서

 

오늘 새벽에 봉하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서 씻었습니다.

할배 제사때도 잘 안 입는 양복 입었습니다.

- 양복 입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양복 입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

그리고 본가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금 출발하니 시간 맞춰서 준비하시라구요.

- 저희 부모님은 진영에 사십니다.

창원에 20여년 사시다가 몇 년전에 진영으로 이사가셨습니다 -

 

부모님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하니 부모님께서 내려오시고

울 엄마는 103호 할매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103호 할매 한 분 모시고 왔습니다.

 

울 엄마가 103호 할매 모시러 가셨을 때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처음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떴데예?"

"참~~! 아~~! 숫가락이 안 올라가더라"

아침 식사중에 티비로 소식을 접하셨나봅니다.

"아버지가 올해 예순다섯이니 노무현대통령보니 하나 많네예"

"그래"

"나는 그래도 봉하마을 몇 번 가보고 노무현 대통령 실제로 봤는데"

"갈 때 와 연락 안 했노 같이 가지?"

"준비하고 간 건 아니었고 해란이랑 진례에 흙 사러 왔다가 ... 원래 쉬시는 날이었는데..관광객들이 하도 부르니 나오시더라구요"

봉하마을 가서 노무현 대통령 살아실제 실제 뵌 것이 아버지께 자랑이 되었습니다.

혼자 간 아들이 아버지는 못내 서운하셨구요.

갑자기 먼 곳으로 가버린 "노무현 때문입니다"

 

103호 할매는 진영 토박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억이 직,간접적으로 있는 분이시구요.

가는 길에 내내 그런 추억들을 한 꼭지씩 꺼내 들려주셨습니다.

"진영이 큰 인물들 나는 동넨데...영부인도 둘이나 나고, 대통령도 나고....."

-여기서 영부인 2분은 권양숙 여사와 김영삼 대통령 부인이신 손명순 여사를 말합니다.

 진영읍장 딸 이라고 하시더라구요 -

"노무현몬살아서 우리 친척 누구 집에서 밥도 같이 마이 뭇따 아이가"

"봉하마을에서 대창초등학교, 진영중학교 까지 이십 리 길인데.."

 

중국에서 사업한다는 아들한테 우리 가족이 가는 길에 봉하마을 조문하러 간다고 하니

꼭 다녀오시라고, 한 사람이라도 직접 찾아가는게 도리고 예의라고 격려를 해줬다고 하네요.

 

진영읍네를 가로 질러 갔는데 진영읍 전체가 상가喪家분위기입니다.

몇십미터 간격으로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검은색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봉하마을까지 가는 길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가장 우울한 시골마을입니다.

그냥 촌구석이 아니고 구석구석 공장이 들어서서 시골의 정체성이 상실된 그런 동네입니다.

양쪽으로 공장이 즐비한 길을 벗어나야 봉하마을이 나옵니다.

봉하마을까지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구요.

진영운동장에 마을 입구까지 왕복하는 셔틀 버스가 있는데

셔틀 버스가 정차하는 곳까지가 일반인들의 차가 다닐 수 있는 경계입니다.

차를 한 쪽에 세우고 1.2km 정도를 걸어가면 봉하마을이 나옵니다.

 

새벽 5시쯤 마을 입구에 왔는데 마을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 길이 1km가 넘는걸 생각하면 적은 수도 아닙니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 들어가는 사람보다 나오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언론이나 방송에서 보지 못한 만장들이 길 양쪽에 수백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슬퍼하여 지은 글이 만장이라 하지만 구절 하나 하나가 슬픔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노무현 한 사람을 넘어 한국의 민주주의와 미래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자원봉사자들의 쉼터로 사용되는 기념관 앞에서 방명록을 쓰고 - "편히 쉬십시오" 라고 짤막하게 적었습니다.

조문을 하러 갔습니다.

아침에 음식과 꽃을 교체하는 시간이라 단에 꽃을 올리지는 못하고

7명씩 줄을 서서 단 앞의 상에  헌화를 하고 절을 하고 상주와 인사를 했습니다.

막상 봉하마을에 오면 슬픔을 주체하기 힘들거 같았는데 오히려 차분해졌습니다.

단상위에서 옅은 미소를 띄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모습은 맘 편해 보였습니다.

염을 하고 비서관들이 이야기 한 '편하게 주무시는 모습' 같은 것이 내가 받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문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사저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사저는 공사관계로 시설물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사저 뒷산의 부엉이 바위는 어디에서도 잘 보입니다.

103호 할매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넋두리를 뱉습니다.

경기도 분당에서 밤새 내려오신 아주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103호 할매노무현의 대변인인양 그 아주머니께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그러면서 진영이야기, 자신이 지인들께 들어온 노무현 이야기, 봉하마을 이야기도 다시 반복합니다.

이런저런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다시 1km 남짓 걸어나왔습니다.

걸어나오는 길에 추곡선생님 내외를 뵈었습니다.

나보고 일찍도 왔다면서 선생님도 조문하러 왔다고.

추곡선생님 내외와 울 엄마, 아버지를 인사 시켜드리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그 때가 6시쯤 되었을겁니다.

 

라디오를 틀자 봉하마을을 생중계하는 뉴스가 나옵니다.

뉴스의 현장을 살짝 비껴 나온게 신기합니다.

 

===================================================

 

103호 할매의 이야기 중에 누구집에서 노무현이 밥도 먹고 그랬다더라는 이야기에 민감하신분 없으셨으면 합니다.

촌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냥 노무현이는 정말 가난했다 정도로만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존심이 세서 다른 집에서는 밥을 절대 안 먹었다 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서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