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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와 함께 걷는 달콤한 유럽여행
홍지윤.홍수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인상파와 함께 걷는 달콤한 유럽여행
여행과 미술관 관람을 한꺼번에 - 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미술 여행기
미술 여행기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이 분야는 스테디셀러가 존재한다. 이주헌의 책들이 그것이다. 선인세를 땡겨서 다녀왔다는 그 미술 여행기는 미술에 무지몽매한 나에게 눈을 뜨게 해주었다. 조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어린 자녀까지 데리고 다녀왔을 그 여행과는 사뭇다른 느낌의 책이 나에게 왔다. [인상파와 함께 걷는 달콤한 유럽여행].
드림팀의 구성이라 할까? 저자 홍지윤은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관련 책의 저자면서 미술 관련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전문가다. 홍수연은 낯선 이름이 아니다. 같은 출판사의 [유럽100배 즐기기]의 저자로 여행에 관한 전문가다. 미술관 기행을 꿈꾸고 실행에 옮길 때 돈이 넘쳐나서 주체하지 못해 이 두 자매를 가이드로 세운다면 이 보다 더한 호사가 있을까 싶다.
언니는 미술전문가, 동생은 여행전문가. 그네들이 부럽다. 아니 그네들의 토양이 부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자매의 어머니는 화가이지 교사이셨고 그림을 아주 사랑하는 분이셨다. 언제나 자녀들을 데리고 갤러리가 흔치 않은 시절에도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구경을 다녔다고 한다. 남들 36색 크레파스 사용할 때 24색을 벗어나지 못해, 미술시간에 주눅듬이 나를 여전히 그림 그리는 것이라면 발가벗겨 놓는 것보다 더 싫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한 원흉이라고 농반 진반으로 변명해야 하는 나의 우울한 환경을 생각하면 그냥 부럽다 라는 말 밖에는.
환경은 극복하라고 있는거다. 그렇다고 내 그림 그리는 실력이 나아진건 아니다. 그런데 뭔 극복이냐고? 그리는 미술은 싫지만 읽는 미술, 보는 미술은 싫어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내 서재에 꽂혀 있는 백여권의 미술관련 책은 그리는 미술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를 묻어둔 곳이다.
책도 저자를 따라 가는 것 같다. 이주헌의 책이 주인장의 수더분하면서 조금 촌스러운 인상을 닮아 진득한 느낌이 있다면 이 책은 시대가 지나 편집의 기술이 발전한 탓도 무시못하겠지만 저자의 생김따라 산뜻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본 어느 미술책 보다 더한 깊이가 느껴진다. 그 깊이라는 것이 그림의 이해에 대한 깊이는 아니고 미술전반에 대한 것과 미술사, 그리고 작가의 전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깊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다루었으니 일부러 피해 간 느낌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 대신 그 곳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저자들이 느끼는 점과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에 대한 느낌을 많이 다루었다.
너무 많은 것을 다루지도 그렇다고 너무 깊이 다루지도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백은하는 그의 책 [안녕 뉴욕]에서 "자신의 영화사적 지식을 주석하나 붙이지 않고 끊임없이 늘어놓은 다음, '이 말을 이해 못하는 네가 무식한 거야!'라고 쏘아붙이는 고매하신 평론가들보다 나의 눈높이나 영화적 식견에 딱 반 발자국만 앞서서 조용이 '이 길이야'라고 손을 내밀어주는 '친절한 평론가'를 더 선호....." 라고 적었다. 나의 눈높이나 미술적 식견에서 딱 반 발자국만 앞서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이 책이 친절한 평론가 [로저 에버트]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를 만족시켜주기에는 충분하다.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리면 읽다가 던저버린다. 내 식견에 비해 책의 벽이 턱없이 높아 내공을 더 쌓아 몇 년 후에나 읽어야 나에게 다가오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이 너무 가벼우면 읽는 내내 후회를 하게 된다. 이 걸 돈주고 사다니,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닌데. 둘 다 그렇게 반가운 경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면 전자다. 가벼움은 참을 수 없다.
상당수의 독자들이 미술에 대해 반 전문가가 되어버린 현실에 다른 유파도 아닌 너무도 익숙한 인상파에 대한 책을 낸다는 건 딜레마다. 다른 어느 유파보다 독자층이 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미 많은 부분 익숙해져 있는 것도 인상파다. 그 곳에 대한 세세한 지리적 설명을 제외하면 내가 이 책을 읽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 하나가 [크롤레 뮐러 미술관] 이야기다.
한 미술 애호가 부부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남아 있는 크롤레 뮐러 미술관이다. 이곳은 암스테르담의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호헤 벨루베 공원에는 '고흐의 숲'이라는 아름다운 별칭이 붙어 있다.
암스테르담의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귀가 번쩍 뜨이게 했다. 혹시나 싶어 책장에서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 예담]와 [후기 인상주의의 역사, 존 리월드 저, 까치]를 뒤적거렸다. 아뿔사 헛공부했구나. 심심찮게 '[크롤레 뮐러 미술관] 소장> 이라는 글귀를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그림의 배경을 꼼꼼하게 찾아다니면서 그림과 비교할 수 있게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친절함이다. 풍경화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던 것이 화가가 어떤 배경을 저렇게 표현했을까, 지금 그 곳은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더 변했을까? 혹 사라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들이었다. 까마귀가 날던 밀밭의 사진도 있고, 오베르 교회의 모습도, 만종의 배경이 된 들판도 찍어 보여준다. 마네의 수련이 떠 있는 물의 정원을 소개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르네상스 이후 최초의 총체적 미술의 혁신'이라 불리는 인상주의를 너무 깊게도 너무 가벼이도 다루지 않은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만큼의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 미술에 관한, 여행에 관한 전문가인 자매가 드림팀을 이루어 만들어 낸 역작이다. 자매들을 가이드로 부릴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여유가 없더라도(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을거다) 이 책을 안내자 삼아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