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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천년, 탄금 60년 -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황병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오동 천년 탄금 60년
나에게 가야금에 대한 기억이 있던가? 다행이 있다. 고등학교 때 재수생 형이 한 명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 형도 재수를 하고 나도 재수를 할 때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 창원에 케이블티비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나는 마산학원 재수생 반을 일주일만에 접고 케이블티비의 교육채널 3개로 공부를 했다. 케이블의 교육채널을 믿고 학원을 그만 둔 것은 아니었고, 학원을 그만두고 나서 차선책으로 찾은 것이 케이블티비의 교육방송 채널들이었다. 그 이전에는 교육방송이 EBS밖에 없던 시절이었는데 교육방송이 한꺼번에 3개나 늘어난 것은 학원도 안 다니는 백수같은 재수생에게는 거의 축복이었다. 대부분 본방사수보다는 녹화를 해서 여러번 봤는데 이것이 당시 학원강의보다 훨씬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들을 그 형한테 권했고 그 집을 놀러 갈 일이 있었다. 부모님이 상당히 호탕한 분이셨는데 집에서 소주도 한잔 했었다. 술잔 기울이고 있는데 가야금 소리가 나는게 아닌가? 웬 가야금 소리냐고 물어보니 여동생이 가야금을 배우고 입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한참 우리 것에 관심 기울이며 재수 공부보다는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많던 시절이라 그 소리가 그렇게 운치가 있을수가 없었다. 술 배운지 1년 남짓이었지만 술맛이 절도 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95년도 재수생 시절 이야기다.
94년은 '국악의 해'였다. 당시 집에서 받아보던 신문에 '국악의 해'에 관한 기획기사가 실렸는데 국악의 해 준비위원장을 소개한 기사도 크게 실렸다. 그 때 준비위원장이 '황병기' 교수님이었다. 학력을 보니 서울대 법대다. 당시 국악계의 원로들은 가방끈이 긴 사람이 거의 없었다. 큰 스승 밑에 문하생으로 들어가 사사받는 경우가 많았고 '소리'나 '국악연주'가 아주 대접 받던 시절은 아니었다. 가야금 연주에 관한 한 최고요, 학벌도 최고요 그러니 관에서는 황병기 교수님을 위원장으로 앉힌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동 천년, 탄금 60년. 이 책은 중앙일보에서 기획한 사회 명사들의 이야기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88회분의 연재물을 손봐서 나온 책이다. 연대 순으로 배열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생활이 오롯이 담겨 있어 '황병기'교수님의 자서전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대가의 70년 인생이 녹아 있는 책이다. 46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음악 친구'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말한 첼리스트 장한나의 소개글이 머리말보다 더 앞에 있다.
공부라는 것을 가르쳐 준 외당숙 김소열과 함께
황병기 교수님은 '국악의 해' 준비위원장을 하시면서 그 해 간간히 티비에 모습을 보여주셨다. 김동건이 사회를 보는 프로그램에도 나왔고 다른 문화프로그램이나 국악을 다룬 프로그램이면 출연하셨다.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예의 질문은 가야금을 하시면서 학벌에 대한 것으로 모아졌다. 어릴 때 세상이 알아주는 개구장이였는데 집안 어른이 선생의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준 가르침을 빼 놓지 않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는 외당숙 김소열 아저씨로 소개되었는데 저자에게 공부라는 것을 가르쳐 준 평생의 은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음악 인생과 함께 우리 국악계와 예술계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개인의 자화상이지만 그 개인이 범인凡人이 아니여서 독백의 범위가 넓다. 국악계는 물론이요, 방송이나 문학, 서양음악, 미술, 무용등을 아우른다. 가야금을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30대 후반까지도 가야금을 천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특이했고, 국악에만 몸 담았는 줄 알았는데 출판사도 경영하고, 영화사도 경영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렇지만 그는 천상 악인樂人이였다. 1974년 이화여대 교수로 발령나면서 그는 죽을 때까지 음악만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그 이후의 업적은 우리가 주지하는 바이다.
뒤쪽 오른편의 남자가 장남 황준묵이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수학자중 한 사람이다.
김훈의 [바다의 기별],[현의 노래]
김훈의 [바다의 기별]의 '말과 사물'에 있는 내용을 옮깁니다.
내가 쓴 [현의 노래]는 가야금을 만든 우륵이라는 예술가에 대한 소설입니다. 우윽의 시대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준비하면서 고구려와 백제를 부수기 이전에 신라 주변에 있던 가야의 여러 부족국가를 쳐부수던 때입니다. 우륵의 조국은 작은 부족국가였습니다. 대가야, 신라의 군사력에 비하면 약소한 나라였지요. 대가야에서 우륵은 지위가 매우 높았어요. 궁중악사였다고 하니까. 예술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벼슬에 도달한 것이죠. 그런데 신라가 자기 조국 대가야를 쳐들어오니까 우륵은 악기를 들고 신라에 투항을 했지요. 진흥왕의 포로가 되어서 진흥왕을 위해 음악을 연주합니다. 진흥왕은 하림궁이라는 궁궐을 지어놓고 그곳에 우륵을 데여와 가야금을 연주하게 하지요. 나는 우륵이 조국을 배반하는 대목이 아주 맘에 들었어요. 악기를 들고 조국을 배반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륵의 악기에는 그 당시 가야금이라는 이름이 없고 그냥 금이었는데, 그 악기에 자기 조국의 이름을 붙여서 가야금이라는 이름으로 천년만년 전한 것이죠. 우륵은 사실 진흥왕을 이긴 사람일 수도 있어요. 가야금은 신라 최고의 악기, 최고의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가야금으로, 자기가 배반해버린 조국의 이름을 거기다 붙여 천년만년 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승부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