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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다큐를 즐겨본다. 해외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아직 갈 여력도 안 되니 해외여행 다큐는 나에게 엄청난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EBS 세계테마기행은 그 중에서도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테이프를 끊은 이가 김영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그리고 라이카로 찍은 것들을 책에 담았다.
다큐는 "저는 지금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의 길 위에 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바로 그 길입니다"로 시작하고 책은 [나이 마흔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다]로 시작한다. 작가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다 가진 저자가 하나 하나 버려가면서 캐나다 벤쿠버로 떠날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고, 옷들을 정리하고 은행가서 자동이체 시켜 놓았던 요금들을 해지하고 정산한다. 이 많은 것들이 조금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을텐데 하나라도 계획에 맞지 않거나 부족하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우리들 모습이다.
캐나다 가기 전 석달간의 시간이 남았고, 이전에 EBS에서 연락받았던 것을 생각하고 아내와 시칠리아로 떠난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섬인 시칠리아로 간다. 이탈리아 본토가 끝나는 지점에서 2-3량씩 분리해서 기차보다 몇 배나 큰 페리에 싣고 다시 배가 시칠리아에 도착하면 다시 기차를 합체하는 형식이다.
시칠리아는 태양과 올리브의 섬, 아몬드의 향기로운 꽃이 피고 오렌지 열매가 열리는 섬이라는 찬사를 받는 아름다운 섬이다. 최초로 이 섬에 온 사람들은 도시국가 조성을 위해 그리스 본토에서 온 고대 그리스인이었다. 대그리스권(마냐 크레차)의 일부를 형성하는 도시국가가 시칠리아의 여러 곳에 세워졌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기원전 8세기 섬 남동쪽에 하나의 커다란 도시국가를 구축한 시라쿠사다. 시라쿠사는 세 개소에 식민지를 소유하여 그 세력이 아테네에 필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밖에 신전의 계곡에서 유명한 아그리젠토나 타오르미나에 고대 그리스의 일대 유적이 남아 있다. 그 뒤로는 카르타고인, 아랍인, 그리고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다. 그 후 프랑스 앙쥬가의 지배에 이어 13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는 스페인의 아라곤가家의 압정하에 놓이게 된다. 스페인 지배하에서는 일종의 식민지로서 재정적으로 수탈당했으며, 농민들의 반란과 봉기는 무력으로 억제되었다. 강권적인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지금의 마피아의 전통과 조직이 생겨나게 되었다.
저자는 이미 카메라 들고 여행 다니면서 책을 낸 적이 있다. 이번 책에서도 글로만 접하면 궁금할 시칠리아의 풍경과 풍경보다 더 의미있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친절함을 과시한다. 시칠리아는 고대 그리스의 유물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그리스인들이 정착했을 때 그들은 고향에서 그랬듯이 극장을 만들고 신전을 짓고 연극을 올렸다. 마치 우리 교포들이 해외에 가면 소나무가 둘러진 곳에 집을 구입하듯이. 우리 나라 아파트 단지 하나보다 못한 인구 1만 8천명 밖에 안되는 곳에서 작가가 느낀 그곳은 훨씬 복잡하고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는 여행지였다. 우리는 TV보고 컴퓨터 하느라 집에 쳐박혀 꼼짝 안 해 거리가 한산하지만 시칠리아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떠든다. 그것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며칠을 같이 얼굴트고 지낸다면 예외일수 없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다가 피곤하면 자고. 그래서 작가는 작은 마을을 떠나면서도 일일이 이별의 정을 나눈다.
책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곧잘 묻어난다. 아마 시골 깡촌 같은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정감어린 모습들이 비록 대도시에서 많이 자랐지만 오늘날 작가가 처한 환경의 이면에 있는 그리운 대상들을 불러들인게다. 큰 개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대대장이셨던 아버지 관사에서 키우던 깨돌이를 떠올린다. 원형경기장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운동장 근처에 살아 그곳이 낯설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시칠리아만이 줄 수 있는 추억도 묻어난다. 스페인의 압정에 저항하면서 자연스레 굳어진 그들의 모습은 마피아라는 조직을 만들게 했고 그것이 영화 [대부]의 무대가 되게했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사랑테마가 흐르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는 자신의 극장에서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 유명한 시네마천국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 시칠리아다. 대부나 시네마천국은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힘든 인연들이다. 작가의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추억했듯이 이 책은 시칠리아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더불어 시칠리아 사람들처럼 아무계획없이 그냥 닥치는대로 살아가는 것도, 맛있는 거 먹고 하루 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는 것을 반복하는 생활도 나쁘지는 않다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회사 지브리 스튜디오의 [지브리]의 의미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다.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리비아어이고 이탈리아어로는 시로코라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