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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파바로티 - 신화가 된 마에스트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삶과 열정
알베르토 마티올리 지음, 윤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세계 3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이 세명이 1990년 7월 7일 로마 카라칼라에서 벌어진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에서 만났다. 음악사상 가장 유명하고도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또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무대. 음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없었던 나는 당시 우리 나라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최고의 테너 3명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사실에만 고무되어 있었다. 그것이 성악이라는 예술장르를 얼마나 상업적으로 버무려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밖이었다. 아니 내 깜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그 상업성이 한쪽으로 덜 치우친 것은 자선 모금.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모두 자선을 위해 쓰였다.
1982년 1월 24일, 뉴욕의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프랑크시나트라와 자선콘서트를 열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다. 이 날의 공연은 그 후의 그가 벌이는 크로스오버적인 쇼 비즈니스의 시초가 된다. 그와의 라이벌 플라시도 도밍고도 존덴버와 같이 음반을 내거나 모린 맥거번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도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정지용의 시 '향수'를 같이 불렀따.
빅파바로티. "내 어린 시절은 아주 행복했습니다"로 시작하는 파바로티의 자서전, 빅파바로티. 태어날 때부터 목소리가 우렁찬 아이. 빵을 굽지만 항상 성악을 하고 남을 위해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 페르난도의 피를 물려 받았다. 유년기에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성악가였던 질리를 만나게 된다. 질리의 항상 노력하는 모습과 그의 격려가 파바로티에게 커다란 교훈이 되었다. 질리의 현명한 가르침을 충고로 제대로 받아들였기에 우리가 파바로티를 최고의 테너로 기억한다.
덥수룩한 수염, 엄청난 체구,화려한 넥타이와 에르메스 스카프, 무대 위에서 사용하는 흰색 손수건도 파바로티를 특징짓는 요소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모든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찍힌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파바로티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사람이다. 파스타를 즐겨먹고 피자를 즐기고 이탈리아 축구팀 유벤투스의 열렬한 팬이었고, 젊었을 때에는 이탈리아 모데나 지방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와인 람부르스코를 하루에 100리터씩 마셨다. 열정적인 이탈리아인으로 항상 주위에 여자들이 끊이지 않은 걸로도 유명하다(모든 열정적인 이탈리아인이 바람둥이라는 건 아니다)
세계 최고를 잃는다는 건 그 분야의 상당 부분의 손실을 이야기한다. 그의 죽음을 전세계가 애도를 표했다.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두었으며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리릭 오페라를 해석한 대중 문화의 타이탄. 그의 관이 고향 모데나로 오자 3일동안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소프라노 라이나 카바이반스카, 안드레아 보첼리, 그리고 파바로티와 뗄 수 없는 관계였던 로시니 합창단이 그가 가는 마지막 길에서 그를 기리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는 부모님과 태어나서 몇 분 밖에 살지 못한 아들 옆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