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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정일의 공부.
먼저 자신이 보수라고 생각이 된다면 절대 이 책을 들추지 마라. 피곤해진다. 진보가 뉴라이트 진영의 책을 들추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열불나잖아. 분명 중도를 걷는 책은 아니다. 장정일은 모범생이 아니잖아. 다행히 나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왼쪽 구석에 쳐 박힌 사람은 아닌지라 책 읽는 내내 적잖이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장정일에 대한 기억은 그가 막 유명해질 때, 당시 젊은 작가로는 보기 드물게 가방끈이 무척 짧다는거, 부인은 가방끈이 많이 길다는거, 어릴 때 꿈은 9급 동사무소 공무원이었다는거. 그 이유는 5시 땡 하고 마치면 집에가서 나머지 시간을 다 책 보면서 보내고 싶어서. 책에 관한 지극한 사랑이 보이는 부분이다. 작가라고 모두가 책을 끔찍히 좋아하겠는가? 이런 장정일의 책에 대한 애정이 '독서일기'나 '장정일의 공부'를 써내는 바탕이라 생각한다.
몇가지만 살펴보자.
시작하자마자 뜨거운 감자를 던진다. 양심적 병역거부. 장정일이 '여호와의 증인'인걸 처음 알았다. 종교에 대한 큰 편견이 없는 나에게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짧는 기억은... 어릴 때 집에 형과 친구랑 셋이서 집에 있을 때 초인종이 울리고 할머니 한 분이 책을 소개한다. '파수대' 30분간 설교를 지겨운 설교를 듣고 '다음에는 문 열어주지 말아야지'라는 굳은 다짐. 장정일의 학력이 종교적 신념때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집총거부. 헌혈도 안 한다는데..난 헌혈 60번이나 했는데..나하고 많이 다른 사람인가보다 ^^ .
원래 소속 없는 사람이 겁이 없다. 초장부터 '군대'라는 뜨거운 감자를 던지고. 내가 생각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그것을 인정하되 악용되지 않도록, 신념없는 사람이 군대를 피할 목적으로 선택하기 쉽지 않을만큼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군대 가기 싫으니 나 봉사활동 할래 라고 하면 미친놈 사서 고생한다 라는 말이 나올정도의 무게감. 제대로 된 봉사라는게 결코 군대보다 쉽지는 않을거다. 이동이나 활동의 통제도 있어야 할거고.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송시열이 걸핏하면 빌려오는 신민神民이니 천민天民이니 하는 것이 만백성을 뜻하는 게 아니라 그것도 자신이 속한 서인을 의미한다 라는 대목은 이 나라 유교쟁이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애초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과 크고 높은 것에 대한 숭배였으니. 역사 공부하면서 너무 지겹게 나오는 말. [왕권강화]. 왕과 조정이 펼치는 모든 정책의 근본 목적은 백성들의 안민과 번영이 아니라 '왕권강화'인것처럼.
다치바다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일본 문부성의 느슨한 입시 정책으로 기본적인 수학능력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대학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재교육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일본이나 우리나 비슷하다. 다치바다 다카시는 왜 도쿄대생이 바보가 되었다고 말하는가? 일단 일본 대학의 태생적 한계를 이유로 들고 있다. 서양의 대학은 기원부터 하나의 자치도시로 여겨졌고 권력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일본의 대학은 근대화의 필요성에 의해 수입되어 사명과 교육이념이 국가주의에 의해 주도된다. 올바른 정부가 들어서지 않는다면 그런 대학이 어떻게 대학 고유의 기능을 다 하겠는가? 또, 프랑스 철학자 콩도르세는 [교육의 목적은 현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프랑스 학자의 정의에 맞는 교육을 어느 위정자가 자신들의 안위를 위험에 맡겨가면서 지원하겠는가?
[장정일의 공부]는 여러 책의 서평을 모은 책으로 한 주제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작가의 끈기가 돋보이는 책이다. 소개된 내용 이외에도 조봉암을 소개한 한국의 현대사, 미국 극우파에 대한 고찰, 소수의 힘있는 자들의 세계 과두정, 이승만과 레드컴플렉스, 촘스키와 미국의 모순, 2차 세계대전과 바그너 히틀러 그리고 마르크 블로크 등 깊이 있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 내뱉은 거침없는 글질(?)이 돋보이는 재미있는 책이다.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라는 가제는 너무 거창하다. 한 10권쯤 시리즈로 나온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