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신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대학교 1학년 때. 96년 여름 친구들과 제주도를 배타고 아주 궁하게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제주도 이곳 저곳 둘러보면서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머물면서 구경다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TV에서 보고 말로만 듣던 제주도보다 내가 가서 본 제주도가 더 내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신정일은 부석사를 '마음속으로 그리는 부석사와 가서 눈으로 보는 수석사, 그리고 오래 머물면서 보는 부석사는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부석사 인근에 집 한 채 장만하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부석사를 오르내린다면 얼마나 가슴이 청량해질까' 라고 이야기한다. 애절하다. 사랑하는 깊이가 나의제주도와는 다른게다.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작가 신정일을 조용헌의 [방외지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방외지사 - 예전에는 산속에 숨어 사는 도인들을 방외지사라 했지만, 현대에는 고정관념과 경계선 너머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방외지사다' 라고 조용헌은 설명한다. 그러면서 방외지사의 자격으로 첫째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가보아야 한다. 세째 되도록 많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산청은 두발로 딛고 걸어 다녀야만 스파크가 튀고 그래야 깊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방외지사의 세가지 조건을 골고루 갖춘 인물로 신정일을 꼽느다. 신정일은 일생의 목표가 천산천사(天山天寺)를 둘러보는 것이라 한다. 공사장에서 막노동으로 번 돈으로 전북대 앞에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그리고 전북대 가정학과에 다니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 반대가 심하던 결혼을 하고 교사가 된 아내는 지금 작가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풍수에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신정일이다.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장돌뱅이나 매한가지겠지만 2만권이 넘는 독서량은 그의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니체의 <자유분방한 자연>을 시작으로 해서, 알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나오고, 다비드 르 드브통의 <걷기예찬>, 바바라 워드의 <인간의 집>, 최창조의 <한국의 자생풍수> <한국의 풍수지리>, 허균의 <한정록>, 홍명회의 <임꺽정>, 소동파의 <소문공충공집>,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다신계안>, 최순우의 <부석사와 무량수전>, 중국 북송 곽희의<임천고치> 등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책들이 그의 답사와 함께 글 속에 들어 있다. 물론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이중환의 <택리지>다. 작가는 <다시쓰는 택리지>를 무려 5권이 냈다.

 

 

이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 - 시선이 멈추는 곳, 마음이 머무는 자리.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곳, 그래서 눈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있는 곳을 소개하고 있다. 2부 - 천하의 기운을 품은 길지. 그 기운이 대단하여 인물이 나고 부가 만들어지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서린 곳이다. 3부 - 마음과 몸이 살아나는 땅. 답사를 떠나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고 더 머물고 싶은 곳을 소개한다. 4부 - 완벽한 휴식을 주는 마을. 가기 전의 설레임과 가서 보는 느낌이 다른, 후자가 더 좋은 , 그래서 마음 편한 곳을 소개하고 있다. 4부로 나누었지만 그 경계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곳은 우리 나라 구석구석을 발로 디디고, 사람을 만나고, 인물과 역사를 되새기면서 작가에게 휴식과 안정과 힘을 주는 곳들이다. 그래서 더 머물고 싶고 정착하고 싶은 곳들이다. 어느 곳이 더 낫다 라는 경계가 없는 곳들이다. 풍수와 역사와 유래는 다르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든 곳들이다.

 

 

항상 자가용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빠른 길을 찾아다닌다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국도를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느긋하게 국토를 감상하면서 다니는 즐거움이 크다. 봄이면 새잎과 새싹이 돋아날 때의 그 연한 연두색이 좋고, 꽃이 좋았다. 여름이면 시리도록 푸른 들판과 산의 초록이 좋고, 가을이면 들에 노랗게 익어가는 벼의 색깔도 풍성함을 줬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중간 중간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 버릇이 추가되었다. 다녀와서 내가 다닌 길을 지도에 손으로 선을 그어 가면서 복기(?)하는 버릇도 생겼다. 다녀와서 그 곳을 자료를 찾아 공부를 하고 추가해서 미리 가기전에 예습도 한다.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이 깊이를 더해서 갖춰진 게 이 책이다. 이 책은 지리서 + 역사서 + 위인전 + 문학 + 향토사가 믹서된 작가의 스키마가 곳곳에 녹아 있는 책이다. 작가를 닮고 싶어하는 나는 아직 걷기의 즐거움을 익히지 못했다. 몸이 무거운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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