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최인호(유림)를 보다가 약간 지루해 질 즈음에 다른 최인호(산중일기)를 만났다. 좋아하는 작가지만 이야기가 길어져 살짝 미워질 때 같은 작가의 다른 책으로 갈아탄 것이다. 최인호의 선답 에세이 [산중일기]

 

책 이야기 전에 아쉬운 부분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다. 어쩌면 나의 착각이 불러 온 오해일수도 있다.
매사에 꼼꼼하지 않아서일까? 책 표지에 분명 최인호의 <선답> 에세이라고 나와있는데 <선답>이라는 글귀는 빼버리고  최인호의 에세이라고만 생각하고 읽었다. 앞 부분이 일상적인 내용이어서 더 그랬다. 더군다나 1부는 (일상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작품 너머 작가의 생활이 궁금해진다. 문학 전집을 사더라도 작가의 사진이나 출생, 가족,성장등을 설명하는 별책 부록이 있으면 그게 그리 고마울 수가 없고, 작가의 작품 한 두편 더 읽은 거 이상으로 작가에게 다가간 느낌이다.  자주 가는 목욕탕 이야기에 실제 가는 목욕탕 사진이 있었으면 했고, 어머니 이야기 하실 때 어머니 사진 한 두장 있었으면 했다. <가족> 연재물 이야기 할 때 샘터의 빛바랜 모습도 보고 싶었다. 무법 스님이 들고온 들고온 족자와 나무현판, 해인당(海印堂)이라는 옥호의 나무현판도 궁금하다.
<선답>에세이에서 <선답>을 빼고 생각한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욕심일까?

 

수십년만에 목욕탕에서 만난 어릴 적 친구가, 밤새 술잔을 기울인 오늘의 지인보다 더 선명한 것은 마음의 깊이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해 관계에 얽혀 밤새 술을 마신 사람과, 어릴 때 이해타산이나 선입견 없이 천진한 동심으로 만난 친구의 교분이 같지 않다. 그런 친구보다 더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가족이다. 산중일기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작가의 가족 일기다. 목욕탕이야기, 방생 이야기에 어머니가 나오고, 연재물 <가족> 이야기에 아내와 아들 도단이, 딸 다혜도 나온다. 작품이 만들어준 인연에서 대우자동차 사장으로 있던 형 최정호도 나오고,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에서 손녀딸 정원이도 나온다.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밖에서의 존경 이전에 가족으로부터의 존경을, 밖에서의 인정 이전에 아내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작가의 모습은, 이제 결혼한지 6개월 된 나에게 가족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산중일기]는 또 다른 '길없는 길'이다.
고등학교 때 자주 가던 전통찻집의 누나가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기념 선물로 사준 책이 '길없는 길' 2권이었다. 덕분에 나는 2권을 읽기 위해 1권도 사야했고 1,2권 읽다보다 여기까지 읽은게 아까워 3,4권까지 마무리 지었던 소설이다. 그 누나의 지혜에 고마움을 표한다 벌써 15년도 더 된 이야기다. 구한말 한국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와 만공 선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많은선문답과 불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은 가르침을 배웠다는 증거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불교에 이해가 밝은 작가답게 겸손한 마음으로 선인들의 가르침을 되세긴다.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병상에서 보낸 시간에 순응하면서 주위를 둘러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당뇨 환자가 되었지만 설탕과의 독립을 선언하며 모범적인 생활로 정상적인 혈당수치를 유지하는 절제. 이런 감사하는 마음과 절제가 가르침을 배웠다는 증거다.

 

작가는 마지막 글을 조주선사의 끽다거(喫茶去)로 풀고 있다. 내 몸안에 부처가 있고, 내 마음안에 깨달음이 있으니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노력하고 생활하라는 작가의 당부인거 같다.
그 글 마지막 "나는 요즈음 그만 놀고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내가 살아온 담장 너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거기 지난 삶의 마당에 한 잔의 찻잔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얼마 남지 않은 찻물이 햇살에 반짝이며 한 점의 눈부신 빛을 반사하고 있다" - ' - 얼마남지 않은 찻물-'이라는 대목에서는 울컥한다. 그래도 눈부신 빛을 반사한다. 얼마남지 않은 찻물이지만 빛을 반사하는 찻물은 의미잇고 행복한 찻물이다.


덧글 : 어머니가 아들 인호의 학력을 속이고 여탕으로 데려 간 것이 목욕비 아까워서, 제대로 씻지 않을거 염려해서가 아니고 항상 어린 아들을 곁에 두고 싶은 애정때문이었다고 서술한 대목은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넘겨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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