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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평점 :

“소설로 들어선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자면 호흡법을 배우고, 행보를 익혀야 한다.” - 움베르토 에코 -
편집자가 ‘장미의 이름’의 도입부 100 페이지를 줄일 수 없겠냐고 물었을 때 움베르토 에코는 도입부는 고행 혹은 입문의례와 같은 것이며, 그런 수고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소설을 끝까지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행보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이는 비단 소설을 읽거나 산에 오르는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삶 속에서 매번 얼굴을 달리하고 찾아오는 삶의 순간 순간들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저마다 호흡을 달리하고, 자신만의 행보를 익히며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세상에 공개되는 소설은 아니지만 제임스 설터의 소설이 한국어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무엇보다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신작의 제목이 <고독한 얼굴>이라는 '고산 등반'이라는 소재를 다룬 소설이라는 걸 듣고, 인간의 삶 깊숙히 침잠하여 ‘잎맥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그에게 너무나 적합한 주제가 아닌가 생각했다. 인간의 미지의 세계에의 동경과 삶의 냉혹함을 표현하는데, 또한 삶은 고난과 시련이라는 작가의 아포리즘을 구현해내는 데 있어 '고산 등반' 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문득 '빛 (light)'과 같은 밝고, 화려해보이는 삶도, 가까이 다가가 면밀히 뜯어보면 허무하고 무의미한 '가벼운 (light)' 삶일 수 있다는 그의 전작 <가벼운 나날 (light years)>이 떠올랐다.
움베르토 에코의 조언대로 소설에 대한 기대를 한아름 안고 거장이 만든 '고봉(高捧)'을 오르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에코는 소설에 들어서는 것을 산에 오르는 과정에 비유했지만, 설터의 <고독한 얼굴>은 소설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산에 오르는 체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부지런히 호흡법을 배우고, 행보를 익혀야 했다. 호흡법과 행보를 언급한 건 솔직히 약간의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임스 설터의 애독자이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Solo faces>란 이름으로 1979년 미국에서 발표되었던 소설이 40여년이 넘는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넘어 <고독한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반향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공간을 건너 그의 소설 속 세계에 들어서고 적응하기 위해서 나도 나름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당신은 산을 사랑하는군요.”
“산이 아닙니다. 산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p. 195)
하지만 서서히 오래전 그가 구축한 세계에 들어서고, 그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고 호흡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구축한 세계에서 40여년이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저마다 직면한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산 등반'이라는 소재가 이를 더 가능하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산에 오르는가 하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Because it’s there.)'라고 답한 조지 말로리의 명언처럼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을 바라보고, 등반을 선택하고 수많은 위험과 고난, 두려움을 겪으면서 우리 내부에서는 수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 안에 있는 약함과 무기력, 절망감을 몰아내고, 자신의 고독한 얼굴을 마주하면서 내면을 성찰하고 삶의 시련을 견딜 의지를 끌어올리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고산 등반'은 변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시련을 겪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끝내 견뎌내고 극복하는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나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그걸 되살려내는 데 기쁨이 있다고 생각해요. 거기엔 전반적인 진실의 문제가 있어요. 우리에겐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충분히 있어요." - 제임스 설터 파리 리뷰 인터뷰 中 -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남아 우리의 의식속에 누적된다. 그러한 기억의 원형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되살려낼 때 우리 삶과 진실의 의미가 재구성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His own historian)라고 할수 있다. 제임스 설터는 <고독한 얼굴>에서 '버넌 랜드'라는 한 등반가의 성공과 몰락의 과정을 조명하며, 우리 삶에 대한 본질적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에서 랜드는 사회부적응자다. 대학과 군대생활 모두 적응하지 못하고, 교회 지붕을 청소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삶에 대한 특별한 목표와 의지도 없이 여성들을 만나고, 관계 형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과거 등반을 함께 했던 친구 캐벗을 만나 등반에 열정을 다시 불태운다. 샤모니로 가서 여러 등반에 성공하고, 드뤼에서 조난자들을 구하며 랜드는 등반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지만, 등반에의 순수한 열정을 일상의 삶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채 욕망과 유혹, 좌절과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깊은 고독의 심연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독한 얼굴>은 고산 등반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우리는 왜 삶을 살아가는가?
"내가 등반에 대해 배운 한 가지가 뭔 줄 알아? 단 한 가지 교훈 말이야."
"뭐지?"
"등반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거." "진짜 투쟁은 그 후에 온다는 걸." - p. 256 -
사실 앞서 언급한 조지 말로리의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Because it’s there.)'라는 말보다도 등반에 관한 진정한 명언은 ‘정상은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 전에는 진정 오른 것이 아니다. (It’s not until the summit comes down that it’s mine. Before that, it wasn’t really a climb.' 라고 생각한다. 그가 어떤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이같은 발언을 하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등반을 삶의 메타포로 바라볼 때, 우리는 등반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종국적으로 산에서 내려와야 하고, 다시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말로리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정상에 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반과정에서 겪는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내면 깊숙히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 소설 속 랜드의 말처럼 진정한 투쟁이며 삶에 대한 교훈이 아닐까?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정복은 의미가 없다. 등반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이고 자신을 탐구하고 내면을 탐험하기 위한 것이다.“ - 라인홀트 메스너 -
전설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8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고 세계최초 7대륙 최고봉 무산소 완등, 남극 및 북극 탐험, 고비 사막 횡단, 그리고 히말라야 8천미터 14좌를 모두 알파인 스타일 (안내인이나 지원인력의 도움 없이 고정캠프나 고정 로프를 사용하지 않고, 또한 산소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자력으로 정상까지 등반하는 방식)로 오른 기록을 세웠다. 그가 남긴 기록만으로도 그는 이미 산악 등반의 전설이지만 메스너의 위대함은 기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불가능에 끊임 없이 도전한 이유는 고난과 시련을 딛고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대중들은 라인홀트 메스너의 위대한 기록에만 주목하지만 그도 17번이나 정상 등반에 실패하였고, 등반 파트너였던 자신의 친동생도 잃었다. 그의 빛나는 성공 뒤에 고독과 두려움, 실패가 있었기에 그가 등반가로서, 또 한명의 인간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투쟁은 등반 이후에 온다.'는 랜드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랜드는 산에서 등반 이후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답을 찾으려 했던게 아닐까? 소설 속 랜드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진 등반가 게리 헤밍의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다만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는 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