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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2020년부터 현재까지를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고른 다면 단연 ‘코로나19’일 것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감염병이 불러온 위기 속 대혼란에 빠졌다. 많은 것들이 멈췄고 평범한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감염병의 등장으로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맞닥뜨린 신종 전염병에 각국은 국경 문을 걸어 잠궜고 자국민의 이동을 제한하기도 했다.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방법으로 봉쇄의 카드까지 꺼내든 것이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작이었다. 코로나 사태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엄중한 시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희망을 잃기에는 이르다. 고통과 역경의 순간 속에서도 인류는 고비를 넘기고 위기를 극복해온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속에서도 개개인의 삶은 진행중이고, 여전히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파도가 해변의 모래를 한 번 두 번 덮치듯 닿으려고 계속해서 두드려보라. 다 지우고 또 썼다 지웠던 시간은 어쩌면 내 생의 마디를 단단한 매듭으로 만드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수연 작가의 산문집 <나는 바다를 닮아서>는 다정하고 소소한 일상의 파편들, 그 시시콜콜하고 무의미한것 같은 일들이 어떻게 우리 삶을 빛나게 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면서 일상의 소중함은 더 간절해졌다.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졌던 일상의 복귀가 절실한 요즘, 누구나 과거의 애틋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거나 미소를 지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만 펼쳐지는 것만 같은 평범한 일상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라는 걸 느끼는 날이 올 줄 누군가는 예견했을까? 집을 나설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나날들…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의 중단 여파는 생각 보다 큰 피로감을 가져왔다.
"수많은 곡절을 함께 헤쳐 나온 동지와 지난 시간을 축하하고 축복해야 하는 시간에 나는 뜻밖의 번뇌에 휩싸여 수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영화 속의 조커처럼 점점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갔다." ( p. 48)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에서 작가가 공개하고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처럼 우리는 가정 안에서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에세이를 읽으며 나도 가족과 공유했던 추억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 아이와 쌓아나갈 추억에 대해도 생각해보았다. 내가 내 아이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또, 내 아이는 나에 대해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삼십 년은 긴 세월이었다. 그 동안 나를 매료하던 장점은 나에게 고난을 주는 단점이 되었고, 이젠 그 단점이 다시 연민이 되고 있다. 가끔은 연민이 사랑보다 더 힘이 세다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 함께 세월을 지나간다." (p. 51)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가게 될 세상은 분명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세상에도 내가 살아온 세상이 그랬듯이 그 시대만의 일렁임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아이의 꿈은 거친 삶의 파도 앞에 좌초되거나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현실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이라는 존재 아닐까? 작가도 언급하고 있듯이 사고방식과 세계를 보는 시각은 달라도, 우리 사이를 잇는 연 같은 것이 우리 안에서 하나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 내야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즉,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삶은 '질서'와 '혼돈'이라는 애증의 관계인 한 쌍의 연인이 추는 춤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이 춤은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고, 어느 일방의 리드만으로 지속될 수도 없다. 또한 두 주체가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상대와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연인들의 인생의 주어는 ‘나’에서 ‘우리’로 변한다. 저자의 말처럼 자립이란 결코 혼자 사는 것, 자신의 일을 자기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내’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달성한다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바로 자립이다.
인생이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누구나 고통스럽고 불온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떠올리기 조차 힘겨운 그 순간을 겪어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고통스럽고 불온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자신이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그 순간들에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키기 때문이다. 상실’과 ‘결핍’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삶 자체에 내재된 모순과 부조리에서 기인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삶 그 자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기 보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적절히 응답하면서 대처해나가는 것에 더 가깝지않을까? 이러한 개별적인 삶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인생의 법칙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일반화된 행복의 공식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정답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저마다의 인생의 답을 정의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순간 단위로 미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특정 시점에서 각자의 태도와 신념, 성향 등이 고려된 개인 마다 최적화된 행복의 공식은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정 시점으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수많은 특수한 상황과 변수들을 만족시키는 일반화된 행복의 공식은 존재할 수 없다. 더더군다나 미세한 순간적인 변화들이 누적된 삶의 적분값을 고려할 경우 즉, 순간순간의 경험들과 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삶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는 변곡점들을 모두 고려할 경우에는 일반화된 행복의 공식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저마다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과 지향점이 다르고, 또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선택도 다르기 때문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과 지향점, 선택도 상수가 아닌 변수로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행복에 대한 지향점을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삶에는 빛과 온기만이 아닌 불안과 균열도 함께 공존한다는 작가의 고백은 우리에게 진솔한 위안이 된다. 보여주기 위한 표면적인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이 가진 실체적 진실이 그렇다고 한다면 빛 뿐만 아니라 너울져 있는 그림자와 어둠도 우리 삶의 조각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2022년을 마무리하는 이 때, 다정한 위로와 소소한 삶의 기쁨을 깨닫게 해주는 반수연 작가의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