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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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스 페르민의 소설 <눈>을 읽고 한편의 '하이쿠'를 읽은 것 같았다. '하이쿠'는 3행 17음절로 구성되는 일본의 정형시를 의미한다. 이 짧은 시로 시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또한, 움직임 없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이쿠'를 통해 비로소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하이쿠'와 같은 삶의 내재적 속성이 응축되어 있다. 또한, 찰나의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우리 곁에 다가와 흔적없이 사라지는 '눈'은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덧없음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삶에서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연대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사진이 아닌 그림을 지향하면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질서 너머의 미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혼돈과 질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라면,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더 나은 삶으로 진화할 수 있는 건 '나' 보다는 '우리'의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의미 있는 인생의 길, 질서와 혼돈의 경계에 해당하는 좁고 험한 길이다. 그 길을 끝까지 종주할 때 비로소 질서와 혼돈이 균형을 이룬다. 진실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고 상대방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연대'가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반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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