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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쇼펜하우어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무엇보다도 허영심으로 가득 찬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상대방과의 정신적인 대결에서 패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한다.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여기서 비롯한다고 하겠다. 그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진실 쪽에 있든 아니면 거짓 쪽에 있든, 정당한 수단을 사용하든 아니면 잔꾀를 쓰든 상관없이 논쟁에서 일단 승리하는 데에다 쇼펜하우어는 ‘토론술’의 궁극적 목표를 둔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는 왜 이와 같은 목표를 세웠는가? 그것은 그가 바라본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태생적인 사악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성향, 부정직함, 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보려는 의지 같은 것이 인간의 속성이 되어 있는 한 인간들 사이의 모든 논쟁은 승리를 목표로 하게 된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남의 말의 정당성에 귀를 기울이는 천성을 소유하고 있다면 이러한 논쟁은 우리 곁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논쟁에서 상대방을 꺾기 위해서 사용하는 술책과 간계들은 쓰는 사람마다 그리고 논제의 경우마다 무척 다양하고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지만, 그 술책과 간계의 기본적인 틀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생각을 쇼펜하우어는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에 대해 체계적인 정리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그러한 논쟁술에서 개별적인 논쟁의 소재나 내용적인 측면을 제거하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순수한 틀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인간은 대개 자신이 주장하는 견해의 정당성에 대해 뚜렷한 확신을 갖고 있지 않을 때에도 논쟁에서 절대 남에게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상대방의 주장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믿을 수 없다는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때 인간은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여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38가지 요령으로 나누어 기술해놓았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의도가 상대방을 속여서 논쟁에서 승리하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의도는 우리가 순수한 뜻을 가지고 논쟁의 진위를 판단하려 할 때 상대방이 사용할 수 있는 술책에 대해 미리 대비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올바르게 펼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진리가 분명히 자기 쪽에 있는데 상대방이 술책을 써서 자신을 꺾으려 할 때 이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토론술은 논쟁에서 진리가 자기 쪽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옹호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터득하여 사용하는 요령들을 체계화하여 일목요연하게 서술한 것이다. 그 때문에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이 토론술에서 객관적 진리와 이것을 드러내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은 원래의 목표에서 매우 벗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은 우리가 보통 볼 수 있는 토론술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며, 토론술의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 학문적인 토론술은 “논쟁 시의 부정직한 요령들을 설정하여 그것들을 분석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실제의 논쟁에서 그러한 부정직한 요령들을 금방 알아채고 그것들을 물리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토론술을 서술함에 있어서 보편적인 진리 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논쟁에서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법을 최종목적으로 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