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브즈 - AI 시대,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는가
세스 고딘 지음, 송보라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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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즈 : 나만의 부족을 찾는 여정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Frankie Goes to Hollywood의 'Two Tribes(두 부족)'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묘한 기분이 생생하다. 이 노래는 밴드가 가진 악동 같은 이미지에 수위 높은 뮤직비디오, 그리고 너무 직설적인 가사 때문인지 이래저래 금지곡 취급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냉전 시대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거대한 두 이념의 충돌을 두 개의 '부족'에 빗댄 그 노래는, 어딘가 불온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을 뛰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이념이니 전쟁이니 하는 무거운 거죽을 벗겨내고 나면, '트라이브즈(부족)'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원초적인 욕망에 끌림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고, 나와 비슷한 주파수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패거리를 만들어 각자의세계에서 공동된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세스 고딘의 ‘트라이브즈’를 읽으면서, 오래전 CD에서 흘러나오던 그 단어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지 묘한 연관성에 흥미가 배가되었다.


책에도 록밴드가 등장한다, 밴드명만 들어보았지, 음악은 생소한 Grateful Dead가 그 주인공이다.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항상 고민하는게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노출할까?'

'어떻게 해야 보편적인 히트를 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밴드는 빌보드 탑 40에 드는 대중적인 앨범 단 한 장 없이도 무려 1,3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수익을 냈다. 그들의 비결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세상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려 쩔쩔매는 대신, 자신들의 철학에 열광하는 좁고 깊은 팬덤, 이른바 '데드헤드'라는 부족을 꽉 쥐고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2-14-70' 같은 자신들만의 암호를 주고받으며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끈끈함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K Pop이 대세가 된 지금과 유사한 트렌드를 이미 50년 전에 구축했다는 놀라운 사실과 만나게 된다. 티켓팅을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고, 라이브의 불법 음원 녹음을 오히려 장려하며 팬들이 다른 팬들에게 녹음한 음악을 즐기게 하여 더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이런 부족의 형태를 가진 집단은 동네 마을회관, 취미 모임, 혹은 한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처럼 지리적인 한계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 물리적인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금처럼 AI 기술이 발전하고 온갖 소통 도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이런 연결이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고, 멀리 퍼져나간다. 지역의 한계를 훌쩍 벗어나니,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독특하고 매력적인 크고 작은 부족들이 수없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는 빅뱅같은 더많은 가능성과 성공의 크기를 키우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저자는 부족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연결의 중요성과 리더의 덕목에 대해 평안한 챕터 형태의 글이지만, 현대사회를 꿰뚫는 통찰로 독자의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리더가 세상에 남기는 흔적에 대한 통찰이다. 보통 회사를 차리고 윗자리에 오르면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재활용도 안 되는 거대한 폐기물들을 남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니 그것이 대단한 업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스 고딘은 진짜 리더가 이끄는 부족은 물건이 아니라 연결을 남긴다고 말한다. 재클린 노보그라츠가 설립한 어큐먼펀드의 사례가 딱 그렇다. 그녀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돈 몇 푼 쥐어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현지의 기업가들이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전 세계의 헌신적인 후원자들을 자율과 존중이라는 가치로 묶어 동참의 일원으로 일구어냈다. 물건이 남긴 부산물은 언젠가 썩고 소멸되지만, 리더가 진심으로 엮어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촘촘해지고 거대해지며, 새로운 가치를 끝없이 생산해낼 수 있다.  연결 자체가 거대한 화학 작용이 되어, 혼자서는 절대 바라보지 못했을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위키피디아의 기적 같은 성공이나 스피나커라는 게임 회사에서 등장하는 리더십도 결국 본질은 같다. 위키피디아의 지미 웨일스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거나 근태를 관리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비전에 동참하고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판을 깔아주었을 뿐이다. 스피나커의 젊은 직원 역시, 팀원 하나 없는 척박한 상황에서 소식지라는 아주 소박한 도구를 무기로 삼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자신들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있고 어떤 벽에 부딪쳤는지 솔직하게 써서 직원들 우편함에 돌렸다. 그러자 각자 자기 일만 하던 엔지니어들이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위에 군림하면서 채찍질을 한 게 아니라, 같이 걸어나갈 목적지를 보여주고 함께 걷는게 어떠냐며 손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부족의 일원이 되었고, 힘찬 발걸음을 서로의 힘에 기대어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 아무리 기가 막힌 도구가 널려 있어도 앞장서겠다는 리더의 각오와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솔직히 우리 주변에는 안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매일 쏟아지는 업무에 치여 타협하고, 관료주의에 순응하며 튀는 못이 정맞는다며 복지부동이 최선의 방책으로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문화 처럼 수직적이고 정해진 틀을 중시하는 상황 속에서는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직장인들의 하루를 지배한다. 하지만 세상을 흔들고 변화를 만들어낸 위대한 부족은 늘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이단자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현실에 안주한 평범한 이가 될 것인가, 이단자라 낙인 찍힐 지언정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내가 될 것인가?


애플과 스티브 잡스,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을 보라. 

잡스는 금전적인 보상을 주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던져주며 부족원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논쟁하며 뭉치게 만들었다.

물론 잡스가 등장하면 다들 핑계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잡스처럼 타고난 카리스마도 없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끔찍이 두려운데 내가 무슨 리더가 되겠어.”

하지만 세스 고딘은 이 변명을 박살낸다

카리스마가 넘쳐서 리더가 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무릅쓰고 리더의 길을 걷기로 선택하는 순간부터 카리스마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돈이 없건, 직급이 낮건, 매력이 부족하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묵묵히 그 길을 향해 첫발을 떼는 용기라고 말한다.


의기양양한 패기가 유일한 무기라면 어때, 한 번 도전해볼 만 하잖은가?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웬만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완벽하게 해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고 또 어떤 자리에 서야 할까? 단순히 정해진 일을 착실히 해내는 안주하는 사람들의 시대는 저물어간다.

이제는 룰을 깨고,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며, 공통의 비전으로 점과 점을 연결하는 리더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생각해보자.

‘당신의 개인적인 흥미, 당신의 마니아적인 취미, 당신이 유독 잘하는 그 고유한 영역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게 만들 것인가?’

내 경우, 록 밴드들의 음악과 그 복잡다단한 역사를 파고드는 일에 꽤나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 전설적인 밴드들의 앨범을 모으고, 그들의 라인업 변화가 음악에 미친 영향을 파헤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나의 여가시간만의 즐거움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퇴근 후 방구석에서 낡은 CD나 뒤적거리는, 나 혼자만의 유별나고 고독한 취미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또다른 기회가 있다고 속삭인다. 마니아적인 취향과 남다른 열정을 그냥 방 안에 가둬두지 말라고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적 서사와 철학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나와 비슷한 향수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연결해보라고. 진심이 누군가와 맞닿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나만의 작지만 단단한 '부족'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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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걷는 이유 - 이부스키에서 왓카나이까지, 기억과 성찰의 2,600km
임병식 지음 / 디오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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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걷는 이유 : 애증, 미래, 복잡한 셈법. 일본을 걷기로 사유하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한국인에게 일본은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수탈과 여전히 일본 서점가를 휩쓰는 혐한 서적들을 마주할 때면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일본을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로 꼽는다. 단순히 거리가 가까운 이유도 있겠지만, 일본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개성 넘치는 상점들을 구경하고, 골목 어귀에서 진한 돈코츠 라멘 한 그릇의 깊은 맛에 감탄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기도 한다.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선진화된 인프라나 장인 정신, 트렌드를 주도하는 문화적 역량을 동경하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적국'이라는 꼬리표를 달며 깎아내리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민낯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순은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오래된 적대적 역사, 지리적 인접성, 그리고 정치·사회적 유사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반일 감정이 강한 사람조차도 막상 일본에 가면 질서 정연한 거리에 감탄하게 된다. 국가를 미워하되 국민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감상적인 구호를 넘어, 그들의 장단점을 명확히 직시하고 다각도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시키는 현실적인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태풍을 대신 맞아 건뎌주는 고마운 점과 오염수를 방류한 증오도 머리 속에 꼭 챙겨주자.


언론인 출신 임병식 작가의 에세이 “일본을 걷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단순히 맛집이나 쇼핑 명소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를 넘어, 일본 최남단 이부스키에서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일본 전역을 아우리는 과거사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일본이 지닌 두 얼굴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독자와 대화하고 있다.


여정의 초반부, 책이 우리를 안내하는 곳은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지 중 하나인 후쿠오카다. 하카타역의 번화함과 모모치 해변의 평화로운 풍경을 즐기던 발걸음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후쿠오카 형무소 터에 다다르면 순식간에 무거워진다. 그곳은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차가운 감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조선인 청년,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비극이 서려 있는 장소다.

특히 그들의 사인이 단순한 옥사가 아니라 일본군의 생체실험 때문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당시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장기를 적출하거나 바닷물을 수혈하는 등의 끔찍한 실험을 실제 자행했던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의 만행, 그리고 731부대 등이 벌인 반인륜적 행태를 감안할 때, 형무소에 갇힌 조선인 청년들이 생체실험의 희생양이었을 가능성은 가볍게 흘려버릴만한 무게는 아니다. 관광의 흥겨움에 취해 있던 한국인이라도 불과 몇 장의 역사적 진실 앞에서는 순식간에 차가운 반일 감정으로 돌아설 수밖에.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우리 선조들의 피와 고통이 묻혀 있다는 사실은, 한일 양국이 겉으로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근본적인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아직도 기나긴 치유의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발길은 사가현에 위치한 나고야성(名護屋城) 터를 향해서 이어진다. 

대도시 아이치현의 유명한 나고야성과 이름이 같아 혼동하기 쉽지만, 사가현의 이곳은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축조했던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은 그의 사후, 사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새로운 정권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지금은 씁쓸한 성터만 남아 한 정권에 따라 지역의 위상과 쓸모가 바뀌는 역사의 덧없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마치 오래된 중세를 다룬 게임 배경에 등장할만한 비장한 서사다.

이곳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성터 인근에 세워진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의 전시 태도다. 과거의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한 일본 내 우익의 행보와 달리, 이 박물관은 임진왜란을 한일 교류사라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하며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오랜 감정의 골을 씻어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비전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이 대목에서는 선조 시절 당파 싸움에 매몰되어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지 못했던 조선의 무능함이 겹쳐 떠오른다. 만약 그때 파벌 정치에 빠지지 않고 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비했더라면 임진왜란의 참상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적 이해관계와 정쟁에 휘둘려 국민의 삶과 국가의 위상을 등한시 하는 정치인이 활개치고 있지는 않은지 예리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와는 반면, 가고시마현 지란에 위치한 '특공평화회관'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군국주의의 망령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기리는 이곳에는 전투기 제로센과  인간 어뢰 가이텐(참 대단한 발상 아닌다!)으로 대표되는 자살 병기들이 미화되어 전시되어 있다. 전쟁의 참상을 반성하기는커녕, 죽음을 강요당한 젊은이들을 흠모의 대상으로 둔갑시켜 맹목적인 애국심을 선동하는 전시는 일본 선동가들의 사악함에 놀라게 된다.

저자가 지적하듯 일본의 전후 행태는 철저한 반성 위에서 역사 교육을 진행한 독일의 태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 범죄에 면죄부를 주며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이른바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떠오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과거 나치에 의해 끔찍한 학살을 당했던 유대인들에게 전 세계가 깊은 연민을 보냈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등지에서 벌이는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은 그들을 향했던 측은지심을 거센 분노로 뒤바꿔 놓았다.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자기 연민의 논리에만 갇힌 국가는 결국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게 된다는 뼈아픈 패착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얀 국물이 머리속에 연상되는 나가사키는 카스텔라와 짬뽕의 도시로 친숙하지만, 동시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끔찍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쏟아진 원폭으로 인해 순식간에 스러져간 10만 명 이상의 인명,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의 희생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것이 군국주의로 폭주하던 국가의 잘못된 방향타와 오판에서 비롯된 불가피하거나 필연적인 결과였다 할지라도, 민간인들의 죽음 앞에서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나가사키가 집단의 기억을 정리하는 방식은 분열되어 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이 원폭 피해만을 부각하며 피해자 행세를 대놓고 하는 반면, 시민들의 자발적 힘으로 운영되는 나가사키 인권 평화자료관은 일본이 가해자로서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고발한다. 이들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조망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하나의 도시가 비극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는 셈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식마저 갈라져 있다는 점이다. 타국 땅에서 스러져간 동포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마저 남한과 북한의 이념에 따라 별도로 설치된 모습은, 가해국 일본의 무책임함 속에서 분단된 우리 민족의 비극적 현대사가 오버랩되는 비극의 현장이다.



시마네현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독도 영유권 주장의 핵심 당사자, 바로 그들이다.

시마네현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25~30%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곳 지방정부는 한국을 자극하는 독도 영유권 분쟁에 앞장서고 있다. 저자는 인구 65만 명 남짓한 이 작은 도시가 무리하게 독도 분쟁을 일으키는 이유를 중앙정부의 관심과 재정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얄팍한 정치적 계산으로 분석한다. 주민들의 실제적 관심은 덜한데도 불구하고, 극우 정치인들의 선동에 휘둘려 한국인 관광 유치를 놓치고 스스로 수익 사업을 걷어차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맛집으로 포장된 관광지로서의 일본을 넘어, 정치, 사회, 역사가 쌓인 진짜 일본의 속살을 드러내고 우리와의 관계와 미래를 위한 현재의 역할을 걸음과 사유의 과정으로 엮어내고 있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일 양국이 애증의 역사를 어떻게 공유해왔는지, 그리고 이 복잡한 갈등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묵직한 화두가 던져졌다는 사실과 마주친다.

물론 진정한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은 일본이 가해자로서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죄를 구하는 것이다. 여전히 극우 성향이 강한 일본 정치권에서 당장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는 김정은 위원장이 통일 제안을 해오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만난 수많은 양심적인 일본 시민단체들처럼, 과거사를 직시하고 연대의 손을 내미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틀에 갇혀 무조건적인 혐오를 쏟아내기보다는, 개인 차원의 여행과 문화 교류를 통해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과 접촉하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쇼핑이나 먹거리에만 치중한 소비적인 여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지역에 깃든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맹목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진정한 '일본을 걷는 이유'일 것이다.

또하나, 과거와 달리 성장한 한국을 바라보는 시샘의 눈길도 잊어서는 안된다. 아직 저력을 잃지 않는 강대국이지만 세계 넘버 2를 차지했던 위상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이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현실의 모습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듯하다. 어떻게 그들과 우리의 문화가 서로가 즐기는 공유의 가치로 확대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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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클래식 클라우드 39
김석.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 arte(아르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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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떠나는 프로이트의 발자취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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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 arte(아르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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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039 지그문트 프로이트 : 도시로 떠나는 프로이트의 발자취 탐방기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낯선 골목, 낯선 풍경을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처음 보는 건축물과 이국적인 풍경을 눈에 담는 일은 현장에서도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난 휴대폰의 갤러리를 하나씩 되돌려보는 시간여행도 지루할 틈이 없다.

하지만 그저 남들이 다 가는 유명한 명소를 눈도장 찍듯 돌아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평범한 일정에 무료함을 느끼지는 않는지? 단순한 소비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하나의 확고한 테마를 가지고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여행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르테 출판사에서 선보이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이런 질문에 딱 맞는 대답을 준다. 누군가의 인생역로를 뒤집어보며 관광지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역사 이정표를 만들어낸 공간에 대한 묘한 공감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심리학의 시조새, 지그문트 프로이트.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최초의 심리학자인 그가 실제로 머물며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뇌했던 장소들을 직접 찾아가 공간의 맥락 속에서 사상을 읽어내는 여정은 너무 현학적이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은 적절한 눈높이로 독자에게 말을 건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누구나 한 천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인간 정신의 심연을 탐구하는 일에 동참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이 여느 심리학 개론서나 평전과 구분되는 가장 흥미로운 점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그저 딱딱한 활자와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프로이트가 네 살 때부터 노년기까지 평생을 보낸 오스트리아 빈을 시작으로 파리, 로마, 그리고 마지막 안식처였던 런던까지 공간과 사상의 연결고리를 엮어낸다.



19세기 말 빈의 풍경 묘사는 꽤나 인상적이다. 

프로이트가 머물렀던 베르크가세 19번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빈의 모습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우아한 문화 제국의 중심지였지만, 속으로는 엄격한 부르주아적 도덕관념과 가부장제, 그리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던 모순의 공간이었다. 그 숨 막히는 억압 속에서 사람들은 욕망을 감추어야만 했고, 억눌린 욕망은 결국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마비나 발작, 즉 우리가 히스테리라고 부르는 마음의 병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프로이트가 하필 그곳에서 수많은 히스테리 환자들을 만나고 무의식이라는 깊은 우물을 파내려 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책 속에 담긴 진료실 풍경, 그가 단골로 찾았던 카페에 대한 저자의 설명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위대한 사상이 어떻게 그가 숨 쉬던 도시와 교감하고 영감을 주고받으며 탄생하는지 목도할 수 있다. 사상은 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그리고 시대정신이 공명을 통해 탄생한다는 좋은 사례이다.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프로이트가 어떻게 딱딱한 신경학자에서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정신분석학자로 변모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발상을 어떻게 실제 연구와 치료로 발전시켰는지 드라마틱한 여정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프로이트가 국비 장학생으로 머물렀던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은 그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신경학자 샤르코가 최면을 통해 히스테리 환자들의 증상을 유발하고 없애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전까지 의학계는 히스테리를 여성의 자궁 문제나 꾀병으로 치부했지만, 프로이트는 파리에서의 경험을 통해 신체적 증상의 원인이 보이지 않는 마음에 있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프로이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샤르코의 족적을 병원에서도 존경의 의미로 명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유서 깊은 건물들을 임의로 훼손할 수 없게 만드는 법도 여행자에게는 고마운 부분이다. 


빈으로 돌아온 그는 당시만 해도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주로 쓰이던 최면이나 전기 충격 요법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리고 선배 의사인 브로이어와 함께 새로운 길을 찾는다. 책의 제1장에 등장하는 안나 O의 에피소드는 정신분석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다. 물을 마시지 못하고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등 심각한 증상을 앓던 안나 O가,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불쾌한 기억과 감정을 말로 쏟아내고 난 뒤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는 요법을 발견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사례를 발전시켜 환자가 편안한 카우치에 누워 자신의 상처와 꿈, 머릿속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검열 없이 털어놓게 만드는 자유 연상 기법, 즉 요즘 우리에게는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의사와 대화 치료라는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거대한 학문으로 정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혹독한 분석이다. 그는 겉보기엔 멀쩡한 엘리트 의사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찾아온 심각한 신경증, 대인관계의 짙은 그림자, 그리고 기차 여행을 두려워하는 공포증 등 숱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빈 외곽의 벨뷔에 머물며 자신의 꿈을 집요하게 분석했다. 남의 마음을 치료하기 전에, 자신이 감추고 싶었던 부끄러운 근친상간적 욕망과 유년기의 상처를 똑바로 마주한 그 뼈아픈 용기가 바로 위대한 학문의 출발점이 되었다.


여정의 끝자락은 그가 나치의 핍박을 피해 노구를 이끌고 망명했던 장소는 런던이다. 메어스필드 가든 20번지, 현재 프로이트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이곳에서 끔찍한 육체적 고통과 싸우면서도 펜을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광기를 목격한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살려고 하는 본뿐 아니라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의 세계로 되돌리려는 죽음의 본능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도출한다. 런던의 차분하면서도 우울한 공기는, 인간 문명의 미래를 비관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성찰했던그의 마지막 고뇌를 담아내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보여준다.




책의 읽어가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질까 생각해본다.

끊임없이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지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과 선택마저 나 대신 결정해 주는 요즘,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자기 자신을 낯설게 느끼고,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항상 이럴 때 많은 책에서는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과연 비판적 사고의 실체는 무엇인가 갸우뚱하다. 이것도 AI에게 물어봐야 하나?


AI시대에 심리학은 과연 어떤 길을 걷게 될까.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한 메커니즘은 인간의 오류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무심코 튀어나온 말실수,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엉뚱하고 기괴한 꿈, 앞뒤가 맞지 않는 비이성적인 행동, 강박. 즉, 가장 합리적이지 않고 찌질해 보이는 인간의 틈새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무의식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AI는 철저한 논리와 데이터, 완벽한 패턴과 효율성의 결정체다. 그들은 오류를 배제하고 가장 매끄러운 정답만을 도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물론 거짓말도 잘 친다.) 

웨어러블 기기가 사람의 심박수나 뇌파, 표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스트레스 수치를 관리하고, 그에 맞는 명상 음악이나 뻔하지만 효과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하는 초급 심리 상담은 AI가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것이다. 인간 상담사가 놓칠 수 있는 미세한 생체 데이터까지 읽어내어 완벽한 솔루션을 제공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심리학은 프로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AI가 결코 계산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듯하다.

데이터나 패턴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모순된 감정, 효율성은 바닥을 치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짙은 상처와 콤플렉스, 파괴적인 줄 알면서도 끌리는 충동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문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물론 앞으로는 AI가 이 영역까지 넘볼 수 있겠지만 항상 엉뚱한 선택을 하는 인간 각 개인의 엉뚱함은 그래도 우리 몫이지 않을까 싶다.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주저없이 전공과목을 “심리학”을 선택하고 싶은 나의 이룰 수 없는 작은 바램이 이루어지는 작은 독서의 장점도 이 책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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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역사 - 마음과 행동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다
니키 헤이즈 지음, 최호영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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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마음을 열어보고, 나의 마음도 열어보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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