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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브즈 - AI 시대,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는가
세스 고딘 지음, 송보라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3월
평점 :

트라이브즈 : 나만의 부족을 찾는 여정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Frankie Goes to Hollywood의 'Two Tribes(두 부족)'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묘한 기분이 생생하다. 이 노래는 밴드가 가진 악동 같은 이미지에 수위 높은 뮤직비디오, 그리고 너무 직설적인 가사 때문인지 이래저래 금지곡 취급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냉전 시대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거대한 두 이념의 충돌을 두 개의 '부족'에 빗댄 그 노래는, 어딘가 불온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을 뛰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이념이니 전쟁이니 하는 무거운 거죽을 벗겨내고 나면, '트라이브즈(부족)'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원초적인 욕망에 끌림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고, 나와 비슷한 주파수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패거리를 만들어 각자의세계에서 공동된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세스 고딘의 ‘트라이브즈’를 읽으면서, 오래전 CD에서 흘러나오던 그 단어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지 묘한 연관성에 흥미가 배가되었다.
책에도 록밴드가 등장한다, 밴드명만 들어보았지, 음악은 생소한 Grateful Dead가 그 주인공이다.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항상 고민하는게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노출할까?'
'어떻게 해야 보편적인 히트를 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밴드는 빌보드 탑 40에 드는 대중적인 앨범 단 한 장 없이도 무려 1,3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수익을 냈다. 그들의 비결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세상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려 쩔쩔매는 대신, 자신들의 철학에 열광하는 좁고 깊은 팬덤, 이른바 '데드헤드'라는 부족을 꽉 쥐고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2-14-70' 같은 자신들만의 암호를 주고받으며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끈끈함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K Pop이 대세가 된 지금과 유사한 트렌드를 이미 50년 전에 구축했다는 놀라운 사실과 만나게 된다. 티켓팅을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고, 라이브의 불법 음원 녹음을 오히려 장려하며 팬들이 다른 팬들에게 녹음한 음악을 즐기게 하여 더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이런 부족의 형태를 가진 집단은 동네 마을회관, 취미 모임, 혹은 한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처럼 지리적인 한계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 물리적인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금처럼 AI 기술이 발전하고 온갖 소통 도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이런 연결이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고, 멀리 퍼져나간다. 지역의 한계를 훌쩍 벗어나니,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독특하고 매력적인 크고 작은 부족들이 수없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는 빅뱅같은 더많은 가능성과 성공의 크기를 키우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저자는 부족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연결의 중요성과 리더의 덕목에 대해 평안한 챕터 형태의 글이지만, 현대사회를 꿰뚫는 통찰로 독자의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리더가 세상에 남기는 흔적에 대한 통찰이다. 보통 회사를 차리고 윗자리에 오르면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재활용도 안 되는 거대한 폐기물들을 남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니 그것이 대단한 업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스 고딘은 진짜 리더가 이끄는 부족은 물건이 아니라 연결을 남긴다고 말한다. 재클린 노보그라츠가 설립한 어큐먼펀드의 사례가 딱 그렇다. 그녀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저 돈 몇 푼 쥐어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현지의 기업가들이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전 세계의 헌신적인 후원자들을 자율과 존중이라는 가치로 묶어 동참의 일원으로 일구어냈다. 물건이 남긴 부산물은 언젠가 썩고 소멸되지만, 리더가 진심으로 엮어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촘촘해지고 거대해지며, 새로운 가치를 끝없이 생산해낼 수 있다. 연결 자체가 거대한 화학 작용이 되어, 혼자서는 절대 바라보지 못했을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위키피디아의 기적 같은 성공이나 스피나커라는 게임 회사에서 등장하는 리더십도 결국 본질은 같다. 위키피디아의 지미 웨일스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거나 근태를 관리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비전에 동참하고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판을 깔아주었을 뿐이다. 스피나커의 젊은 직원 역시, 팀원 하나 없는 척박한 상황에서 소식지라는 아주 소박한 도구를 무기로 삼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자신들이 어떤 게임을 만들고 있고 어떤 벽에 부딪쳤는지 솔직하게 써서 직원들 우편함에 돌렸다. 그러자 각자 자기 일만 하던 엔지니어들이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위에 군림하면서 채찍질을 한 게 아니라, 같이 걸어나갈 목적지를 보여주고 함께 걷는게 어떠냐며 손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부족의 일원이 되었고, 힘찬 발걸음을 서로의 힘에 기대어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세상에 아무리 기가 막힌 도구가 널려 있어도 앞장서겠다는 리더의 각오와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솔직히 우리 주변에는 안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매일 쏟아지는 업무에 치여 타협하고, 관료주의에 순응하며 튀는 못이 정맞는다며 복지부동이 최선의 방책으로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문화 처럼 수직적이고 정해진 틀을 중시하는 상황 속에서는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직장인들의 하루를 지배한다. 하지만 세상을 흔들고 변화를 만들어낸 위대한 부족은 늘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이단자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현실에 안주한 평범한 이가 될 것인가, 이단자라 낙인 찍힐 지언정 세상을 바꾸는 대단한 내가 될 것인가?

애플과 스티브 잡스, 그를 따르는 광신도들을 보라.
잡스는 금전적인 보상을 주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던져주며 부족원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논쟁하며 뭉치게 만들었다.
물론 잡스가 등장하면 다들 핑계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잡스처럼 타고난 카리스마도 없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끔찍이 두려운데 내가 무슨 리더가 되겠어.”
하지만 세스 고딘은 이 변명을 박살낸다
카리스마가 넘쳐서 리더가 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무릅쓰고 리더의 길을 걷기로 선택하는 순간부터 카리스마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돈이 없건, 직급이 낮건, 매력이 부족하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묵묵히 그 길을 향해 첫발을 떼는 용기라고 말한다.
의기양양한 패기가 유일한 무기라면 어때, 한 번 도전해볼 만 하잖은가?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웬만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완벽하게 해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일해야 하고 또 어떤 자리에 서야 할까? 단순히 정해진 일을 착실히 해내는 안주하는 사람들의 시대는 저물어간다.
이제는 룰을 깨고,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며, 공통의 비전으로 점과 점을 연결하는 리더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생각해보자.
‘당신의 개인적인 흥미, 당신의 마니아적인 취미, 당신이 유독 잘하는 그 고유한 영역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게 만들 것인가?’
내 경우, 록 밴드들의 음악과 그 복잡다단한 역사를 파고드는 일에 꽤나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 전설적인 밴드들의 앨범을 모으고, 그들의 라인업 변화가 음악에 미친 영향을 파헤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나의 여가시간만의 즐거움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퇴근 후 방구석에서 낡은 CD나 뒤적거리는, 나 혼자만의 유별나고 고독한 취미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또다른 기회가 있다고 속삭인다. 마니아적인 취향과 남다른 열정을 그냥 방 안에 가둬두지 말라고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적 서사와 철학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나와 비슷한 향수와 열망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연결해보라고. 진심이 누군가와 맞닿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나만의 작지만 단단한 '부족'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