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걷는 이유 : 애증, 미래, 복잡한 셈법. 일본을 걷기로 사유하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한국인에게 일본은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수탈과 여전히 일본 서점가를 휩쓰는 혐한 서적들을 마주할 때면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일본을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로 꼽는다. 단순히 거리가 가까운 이유도 있겠지만, 일본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개성 넘치는 상점들을 구경하고, 골목 어귀에서 진한 돈코츠 라멘 한 그릇의 깊은 맛에 감탄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기도 한다.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선진화된 인프라나 장인 정신, 트렌드를 주도하는 문화적 역량을 동경하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적국'이라는 꼬리표를 달며 깎아내리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민낯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순은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오래된 적대적 역사, 지리적 인접성, 그리고 정치·사회적 유사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반일 감정이 강한 사람조차도 막상 일본에 가면 질서 정연한 거리에 감탄하게 된다. 국가를 미워하되 국민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감상적인 구호를 넘어, 그들의 장단점을 명확히 직시하고 다각도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시키는 현실적인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태풍을 대신 맞아 건뎌주는 고마운 점과 오염수를 방류한 증오도 머리 속에 꼭 챙겨주자.
언론인 출신 임병식 작가의 에세이 “일본을 걷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단순히 맛집이나 쇼핑 명소를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를 넘어, 일본 최남단 이부스키에서 최북단 왓카나이까지 일본 전역을 아우리는 과거사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일본이 지닌 두 얼굴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독자와 대화하고 있다.
여정의 초반부, 책이 우리를 안내하는 곳은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관광지 중 하나인 후쿠오카다. 하카타역의 번화함과 모모치 해변의 평화로운 풍경을 즐기던 발걸음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후쿠오카 형무소 터에 다다르면 순식간에 무거워진다. 그곳은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차가운 감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조선인 청년,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비극이 서려 있는 장소다.
특히 그들의 사인이 단순한 옥사가 아니라 일본군의 생체실험 때문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당시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장기를 적출하거나 바닷물을 수혈하는 등의 끔찍한 실험을 실제 자행했던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의 만행, 그리고 731부대 등이 벌인 반인륜적 행태를 감안할 때, 형무소에 갇힌 조선인 청년들이 생체실험의 희생양이었을 가능성은 가볍게 흘려버릴만한 무게는 아니다. 관광의 흥겨움에 취해 있던 한국인이라도 불과 몇 장의 역사적 진실 앞에서는 순식간에 차가운 반일 감정으로 돌아설 수밖에.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우리 선조들의 피와 고통이 묻혀 있다는 사실은, 한일 양국이 겉으로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근본적인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아직도 기나긴 치유의 시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발길은 사가현에 위치한 나고야성(名護屋城) 터를 향해서 이어진다.
대도시 아이치현의 유명한 나고야성과 이름이 같아 혼동하기 쉽지만, 사가현의 이곳은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축조했던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은 그의 사후, 사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새로운 정권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지금은 씁쓸한 성터만 남아 한 정권에 따라 지역의 위상과 쓸모가 바뀌는 역사의 덧없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마치 오래된 중세를 다룬 게임 배경에 등장할만한 비장한 서사다.
이곳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성터 인근에 세워진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의 전시 태도다. 과거의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한 일본 내 우익의 행보와 달리, 이 박물관은 임진왜란을 한일 교류사라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하며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오랜 감정의 골을 씻어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비전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이 대목에서는 선조 시절 당파 싸움에 매몰되어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지 못했던 조선의 무능함이 겹쳐 떠오른다. 만약 그때 파벌 정치에 빠지지 않고 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비했더라면 임진왜란의 참상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적 이해관계와 정쟁에 휘둘려 국민의 삶과 국가의 위상을 등한시 하는 정치인이 활개치고 있지는 않은지 예리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와는 반면, 가고시마현 지란에 위치한 '특공평화회관'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군국주의의 망령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기리는 이곳에는 전투기 제로센과 인간 어뢰 가이텐(참 대단한 발상 아닌다!)으로 대표되는 자살 병기들이 미화되어 전시되어 있다. 전쟁의 참상을 반성하기는커녕, 죽음을 강요당한 젊은이들을 흠모의 대상으로 둔갑시켜 맹목적인 애국심을 선동하는 전시는 일본 선동가들의 사악함에 놀라게 된다.
저자가 지적하듯 일본의 전후 행태는 철저한 반성 위에서 역사 교육을 진행한 독일의 태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 범죄에 면죄부를 주며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이른바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떠오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과거 나치에 의해 끔찍한 학살을 당했던 유대인들에게 전 세계가 깊은 연민을 보냈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등지에서 벌이는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은 그들을 향했던 측은지심을 거센 분노로 뒤바꿔 놓았다.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자기 연민의 논리에만 갇힌 국가는 결국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게 된다는 뼈아픈 패착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얀 국물이 머리속에 연상되는 나가사키는 카스텔라와 짬뽕의 도시로 친숙하지만, 동시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 끔찍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쏟아진 원폭으로 인해 순식간에 스러져간 10만 명 이상의 인명,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의 희생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것이 군국주의로 폭주하던 국가의 잘못된 방향타와 오판에서 비롯된 불가피하거나 필연적인 결과였다 할지라도, 민간인들의 죽음 앞에서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나가사키가 집단의 기억을 정리하는 방식은 분열되어 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이 원폭 피해만을 부각하며 피해자 행세를 대놓고 하는 반면, 시민들의 자발적 힘으로 운영되는 나가사키 인권 평화자료관은 일본이 가해자로서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고발한다. 이들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조망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하나의 도시가 비극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는 셈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식마저 갈라져 있다는 점이다. 타국 땅에서 스러져간 동포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마저 남한과 북한의 이념에 따라 별도로 설치된 모습은, 가해국 일본의 무책임함 속에서 분단된 우리 민족의 비극적 현대사가 오버랩되는 비극의 현장이다.

시마네현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독도 영유권 주장의 핵심 당사자, 바로 그들이다.
시마네현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25~30%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곳 지방정부는 한국을 자극하는 독도 영유권 분쟁에 앞장서고 있다. 저자는 인구 65만 명 남짓한 이 작은 도시가 무리하게 독도 분쟁을 일으키는 이유를 중앙정부의 관심과 재정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얄팍한 정치적 계산으로 분석한다. 주민들의 실제적 관심은 덜한데도 불구하고, 극우 정치인들의 선동에 휘둘려 한국인 관광 유치를 놓치고 스스로 수익 사업을 걷어차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맛집으로 포장된 관광지로서의 일본을 넘어, 정치, 사회, 역사가 쌓인 진짜 일본의 속살을 드러내고 우리와의 관계와 미래를 위한 현재의 역할을 걸음과 사유의 과정으로 엮어내고 있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일 양국이 애증의 역사를 어떻게 공유해왔는지, 그리고 이 복잡한 갈등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묵직한 화두가 던져졌다는 사실과 마주친다.
물론 진정한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은 일본이 가해자로서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죄를 구하는 것이다. 여전히 극우 성향이 강한 일본 정치권에서 당장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는 김정은 위원장이 통일 제안을 해오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만난 수많은 양심적인 일본 시민단체들처럼, 과거사를 직시하고 연대의 손을 내미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틀에 갇혀 무조건적인 혐오를 쏟아내기보다는, 개인 차원의 여행과 문화 교류를 통해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과 접촉하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쇼핑이나 먹거리에만 치중한 소비적인 여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지역에 깃든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맹목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진정한 '일본을 걷는 이유'일 것이다.
또하나, 과거와 달리 성장한 한국을 바라보는 시샘의 눈길도 잊어서는 안된다. 아직 저력을 잃지 않는 강대국이지만 세계 넘버 2를 차지했던 위상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이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현실의 모습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듯하다. 어떻게 그들과 우리의 문화가 서로가 즐기는 공유의 가치로 확대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시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