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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에 담긴 세계사 - 나폴리에서 뉴욕과 할리우드까지, 한 조각의 피자가 바꾼 300년의 역사
루카 체사리 지음, 이현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10월
평점 :

피자에 담긴 세계사 - 우리의 또다른 소울 푸드 피자의 역사를 맛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늘날 피자는 전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피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그다지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루카 체사리가 들려주는 피자의 역사는 레시피의 변천사 뿐만 아니라 나폴리 길거리에서 탄생한 초라한 빵 한 조각이 어떻게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꽃을 피우고, 다시 전 세계의 음식으로 뻗어나갔는지 추적하는 흥미로운 여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피자의 탄생 배경을 18세기와 19세기 나폴리의 극심한 인구 밀집과 빈곤에서 찾는다. 당시 나폴리는 런던과 파리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대도시였으나, 하층민들은 집 안에 주방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길거리에서 값싸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고, 국가에서 가격을 통제하던 저렴한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빵에 기름이나 돼지비계(라드), 마늘 등을 얹어 구워 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피자의 시작이었다.
초창기 피자는 우아한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길거리 음식이었다. 당시 여행객들은 피자를 보며 일주일이나 지난 마른 빵을 먹는 빈민들의 음식이라며 경악하기도 했다고 하니 유튜브 동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요즘 인도의 길거리 음식이 연상된다.
서민들의 소울 푸드이자 가성비 최고의 음식이었다는 피자의 역사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식어가는 피자의 위상을 설명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피자헛, 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의 3파전이 치열했고 특별한 외식 메뉴로 대접받았지만, 지금은 도미노피자 정도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나조차도 나머지 브랜드에서 주문해 본 지 5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그 이유는 가성비가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냉동 피자와 대형마트의 대형 피자다. 냉동 피자는 퀄리티가 워낙 좋아져 대형 마트 냉동고를 가득 채우고 있고,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에서 파는 거대한 피자는 언제나 인기 만점이다. 아무리 프랜차이즈에서 1+1 행사를 한다고 해도, 대형 마트 푸드코트 피자의 압도적인 가성비를 이길 수는 없다. 책 속 19세기 나폴리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동전 몇 닢으로 가장 크고 배부른 피자를 찾았듯, 현대의 우리 역시 화려하고 비싼 프랜차이즈 피자를 외면하고 가장 저렴하면서도 확실하게 배를 채워주는 마트 피자와 냉동 피자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피자의 진정한 본질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든든하고 저렴한 식품이라는 사실이다.

책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초창기 나폴리 피자는 지금처럼 토마토소스와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올라간 형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주로 돼지비계와 치즈, 혹은 마늘과 소금, 작은 생선을 얹은 하얀 피자가 주류였다. 우리가 아는 토마토 베이스의 붉은 피자는 한참 뒤에야 주도권을 잡게 된다.
게다가 새로운 토핑이 올라갈 때마다 전통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기록도 흥미롭다. 1860년대에도 소시지나 버섯 같은 새로운 토핑을 얹은 피자가 등장하자, 당대의 미식가들이나 전통주의자들은 이건 피자가 아니라며 맹비난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헛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이 논쟁은 우리에게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흔히 아메리카노를 자기네들의 에스프레소 문화를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탈리아인들에게, 파인애플이 올라간 하와이안 피자는 분노의 대상이자 신성모독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저자는 피자의 강점이 어떤 재료를 올려도 피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포용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요즘 국내 프랜차이즈에 등장하는 신메뉴들을 보면 토핑이 정말 다채롭고 기상천외하다. 하지만 결국 오리지널 시리즈들이 여전히 굳건한 인기를 끌고 있고, 신메뉴가 끊임없이 계속 나온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 화려한 토핑들이 반짝 인기에 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나폴리에서도 온갖 기교를 부린 피자들이 등장했지만, 결국 가장 클래식한 조합만이 살아남아 전 세계로 퍼졌듯. 게다가 나폴리의 굶주린 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고칼로리가 축복이었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이 높은 열량과 듬뿍 들어간 지방은 다이어트 최대의 적으로 몰리고 있으니 시대의 아이러니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전 세계적인 피자는 나폴리가 아니라 미국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피자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인들의 대규모 미국 이민 물결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초창기 미국에 정착한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피자를 구워 먹었고, 이후 미국의 풍부한 식재료와 만나면서 나폴리의 빈약했던 피자는 치즈가 풍성하고 토핑이 가득한 미국 스타일로 진화했다. 아마도 피자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토대를 거치지 못했다면 그저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의 수많은 전통 음식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피자가 결코 변하지 않는 신성불가침의 종교같은 이탈리아의 전통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고 적응해 온 음식임을 깨닫게 한다. 미국에서 아메리칸 스타일로 진화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식으로 진화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앞으로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피자가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다시 얻기는 어려울 듯하다. 가격은 비싸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외면하고, 매출이 줄어드니 다시 가격을 올리거나 토핑의 질을 낮추거나 아니면 가격을 부풀리는 재료를 신메뉴로 출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자가 완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는 않는다.
값비싼 배달 피자는 멀어졌을지 몰라도, 가성비 좋은 대형마트 피자와 냉동 피자는 우리의 지갑 사정과 입맛에 맞게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살아남았다. 무엇보다, 가끔 결혼식장이나 뷔페에 가면 배가 부른 와중에도 꼭 피자 한 조각은 접시에 담아 오게 되는 나 자신이 그 증거이다.
특별히 대단한 맛이 아님에도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는 것을 보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는 피자는 어느새 한국인들 마음속의 새로운 소울푸드의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은 듯하다.
자, 이제 맥주 사러가는 김에 피자 한 판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