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교양 : 야망은 큰데 왜 맨손인가 ㅣ 세계척학전집 5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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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교양 :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징징거리지 말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론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직장생활하다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열심히 했는데, 왜 결과는 늘 이쪽이 아닌 저쪽에서 나올까. 보고서도 내가 잘 쓰고, 마감도 내가 잘 지키고, 업무 난도도 내가 더 높은데. 그런데도 자신있어 하던 진급 명단에 내 이름은 없다. 그 자리에 앉은 건 찌질했던 그 놈이다.

처음엔 억울했다. 다음엔 '아부의 힘이지’, ‘정치질 지겨워’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냈다. 그 감정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 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문제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문제가 있다. 혼자 푸는 문제, 그리고 같이 푸는 문제. 교과서는 전자를 가르친다. 선택지를 나열하고 기대값을 계산하면 최적의 답이 나온다는 방식. 문제는 상대가 등장하는 순간 이 방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세상에 답이 정해져있지 않은 것은 물론 아예 없는 질문도 있다는 차가운 현실에 깜짝 놀란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릴 것이다. 실력을 쌓으면 승진할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면 사랑받을 것이다. 모두 의사결정의 논리다. 하지만 경쟁사가 더 좋은 제품을 내놓으면, 동료가 같은 실력으로 더 좋은 관계를 쌓으면, 상대가 좋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논리는 다 틀어진다. 답이 틀린 게 아니다. 문제를 잘못 읽은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승진을 의사결정 문제로 봤다. 내 성과를 높이면 되는 것. 혼자 잘하면 되는 것. 상대가 없는 문제. 하지만 승진은 처음부터 게임이었다. 인사권자가 있고, 경쟁자가 있고, 내 성과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결과를 결정했다. 같은 성과를 들고도 결과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제각기 내세우는 성과와 결과가 다른데 어찌 내가 제일 일등이라 확신해왔을까? 바보.


집합론, 양자역학, 논리학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현대 컴퓨터 구조를 설계하고, 맨해튼 프로젝트 핵심 계산을 수행했던 인물. 동시대 수학자들이 '인간의 두뇌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농담한 그 사람- 바로 존 폰 노이만이다. 그런 그가유독 한 가지에서 자주 졌다. 포커였다.

확률 계산은 그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졌다. 포커는 확률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패가 있어도 질 수 있고, 나쁜 패로도 이길 수 있다. 상대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계산해야 하는데, 상대도 내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계산하고 있다. 거울 두 개를 마주 세웠을 때의 무한 반사. 폰 노이만은 이 무한 반사를 수학으로 끊어내고 싶었다.

그 결과가 게임이론이다. 

미니맥스는 낙관의 수학이 아니다. 비관의 수학이다. 최악의 경우를 최소화하는 전략.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 크게 지지 않는 게 목표다. 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이 정확히 이 구조와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제1규칙, 돈을 잃지 마라. 제2규칙, 제1규칙을 잊지 마라. 뭐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성과를 한 번에 내려다 관계를 전부 날리는 것보다, 꾸준히 존재감을 쌓으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피하는 편이 길게 보면 더 유리하다. 살아남는 자만이 다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냉엄한 진실이다.

1944년 폰 노이만의 결론은 당시 상식을 뒤집었다. 항상 정직하게 베팅하는 사람은 진다. 좋은 패일 때만 강하게 베팅하면, 약한 베팅이 곧 약한 패라는 신호가 된다. 상대는 강한 베팅에는 접고, 약한 베팅에서 따간다. 장기적으로 반드시 진다.

그래서 가끔은 약한 패로도 강하게 베팅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당신의 강한 베팅을 단순히 믿지 못한다. 블러핑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정보 설계다. 상대가 당신에 대해 잘못된 그림을 그리도록,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당신이 이기는 방향으로, 행동을 섞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덕적으로 블러핑은 나쁜 것이라 생각하니 포커판에서도 도덕을 찾다가 탕진하게 된다.



인사 발표가 났다. 당신의 이름이 없다. 승진한 건 경쟁자, 그 사람이다. 당신 입에서 익숙한 말이 나온다. "정치질이네."

아니, 당신은 게임을 잘못 읽고 있다.

나도 그랬다. 대리 진급에서 떨어졌을 때, 옆 팀 여직원이 먼저 진급 명단에 올라갔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더 고도화되고 복잡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년 먼저 실패의 쓴맛을 봤던 그 동료를, 경쟁 상대라고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진급은 내 몫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동료는 다시 도전하면서 달라졌다. 윗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갔고, 다른 부서에 자신이 한 일의 업적을 꾸준히 알렸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이 증명되면 된다고 믿었으니까. 결국 나는 의사결정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 동료는 상대가 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치질이네'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게임을 거부한 것이다. 게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나만 게임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게임은 계속되었고,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을 뿐이다. 아팠던 추억이고 멍청했던 직장 풋내기 시절 이야기다.


2,300년 전 그 유명한 한비자는 말을 더듬었다. 변론이 필수인 시대에 치명적 약점이었다. 입으로 설득할 수 없으니 글로 설득해야 했고, 덕분에 글이 날카로워졌다. 그 글이 진나라에 전해져 훗날의 진시황이 읽었고, "이 사람을 만나 함께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한비자의 핵심은 사람에 기대지 말라는 것이다. 선의에 의존한 제도는 한 명의 이기주의자가 전체를 무너뜨린다. 상대적 박탈감처럼 나혼자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일종의 박탈이고 손해이다 보니 전체가 잘 하다 한 명만 놀아버리면 선의의 시스템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한비자의 설득 이론도 깊숙한 공명을 던져준다.

설득의 어려움은 내가 아는 것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데 있지 않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어, 내 말을 거기에 맞추는 데 있다. 상대가 명예를 중시하는데 이익을 말하면 비천한 사람으로 여겨 멀리한다. 상대가 이익을 원하는데 명예를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버린다.

내 진급 실패를 다시 들여다보면, 인사권자는 공식적으로 부장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큰 입김을 넣는 건 그 위의 임원이었다. 나는 부장과 더 오래 근무할 것이고, 부장의 판단이 회사의 방향성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장 편을 더 들었다. 회의에서도, 토론에서도. 하지만 실제 진급의 키는 누구였을까? 임원은 두 사람 중 누구를 진급시킬지 선택할 때, 나보다 그 여직원을 골랐다. 임원이 무능하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해도, 진급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그가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 나는 그걸 몰랐거나, 알면서도 무시했다. 어떤 사람을 추종할 것인가는 정직성이나 성실성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책의 내용에 정확히 배치되는 의사결정이었고 실제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지금에서 이런 후회가 뭔 소용이겠느냐만.

리더가 먼저 말하면 팀원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맞추거나, 반대하거나. 리더가 마지막에 말하면 팀원들은 자기 생각을 말한다. 정보의 다양성이 달라진다. 한비자가 속마음을 보이지 말라고 경고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리더의 말이 조직의 거울을 왜곡한다. 리더가 먼저 말하면 팀은 리더의 메아리가 된다. 리더가 나중에 말하면 팀은 리더의 눈이 된다. 훗날 팀장이 되었을 때도 딱 이런 가르침과 반대되는 행동을 여러번 했다. 내가 정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오만함이 오히려 성과를 깍아먹었던 몇가지 케이스가 떠올랐다. 어떻게 이끌림을 당할 것인지, 어떻게 이끌림을 주도할 것인지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책은 강조한다.


존 보이드는 미 공군 전투기 조종사였다.어떤 상황에서든 40초 안에 상대의 뒤를 잡아낸다는 의미다. 그가 얻은 결론은 단순했다. 공중전에서 이기는 건 비행기의 속도가 아니라 조종사의 적응 속도에 달려 있다.

그가 만든 개념이 OODA 루프다. 

관찰(Observe) → 방향 설정(Orient) → 결정(Decide) → 행동(Act), 그리고 다시 관찰로. 

핵심은 이 루프 자체가 아니라 루프의 속도에 있다. 상대가 한 번 판단하는 사이에 내가 두 세 번 판단하고 행동한다. 상대는 항상 한 박자 늦다. 내 과거를 쫓고 있다. 이 시간차가 쌓이면 상대는 혼란에 빠진다.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아도 의사결정이 마비되면 싸울 수 없다.

회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때, 먼저 말하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같은 내용이어도 먼저 말한 사람이 리더가 되고, 나중에 같은 말을 한 사람은 동조자가 된다. 아무리 내 생각이 더 정교했어도, 두 번째로 말하면 추종자일 뿐이다. 시간이 중요하고, 빠른 기동이 중요하다. 이것은 비행기 조종뿐 아니라 기업 간 경쟁에서도,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상대할 때도, 조직 안의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이론가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론을 아는 것과 실제로 써먹는 것 사이의 거리는 멀다.

내가 이 책에서 건진 것은 이론이 아니다. 내 실패를 새로운 언어로 다시 설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왜 그 진급에서 졌는가. 혼자 푸는 문제와 같이 푸는 문제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임원의 눈 밖에 났는가. 세(勢), 즉 실질적인 권력의 흐름을 읽지 않고, 논리적으로 옳은 사람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정치질이네'라는 말로 끝냈는가. 그 말이 게임을 거부하는 편한 출구였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착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이긴다는 믿음은 아름답다, 아니 사실 편하다. 그런데 그것은 상대가 없는 세계에서의 이야기다. 상대가 등장하는 순간,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무기가 달라진다. 같은 패를 들어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승부가 달라진다.


싸움은 남을 짓밟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구조를 이해하고, 적절한 무기를 골라 쓰는 것이다. 혼자 푸는 문제에는 실력으로, 상대가 있는 게임에는 전략으로.

벽에 부딪혔을 때 먼저 물어야 한다. 이건 내가 혼자 푸는 문제인가, 상대가 있는 게임인가. 문제를 착각하면 매번 엉뚱한 무기를 꺼낸다. 결정을 앞두고 "잘되면 어떻게 될까"부터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최악으로 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상대가 한 번 기동할 때 세 번 기동하는 사람이 흐름을 가져간다.

이론은 암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전략은 나만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직장 생활에서, 사회생활에서,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빈손으로 살아온 사람이 가득 찬 손으로 돌아서는 것. 그 전환의 자세를 저자가 회초리로 때려가며 교정시켜 주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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