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전략이다 - 당신의 브랜드를 담아낼 8가지 키워드
이승윤 지음 / 북스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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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전략이다 : 공간이 조근 조근 들려주는 이야기에 숨은 치밀함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냉정하며  가끔은 유혹과 배신도 가득하다.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물리적 교차점이 아닌, 사람이라는 제3의 존재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오늘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미래를 약속받기도 한다.

우울했던 기분이 시장에 가면 활기를 되찾고, 학교라는 교정에 발걸음을 내딛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의욕이 솟는 화학적 반응은 공간이 단순히 위치를 점유하지 않고 스스로 빛이 나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긴자에 위치한 무인양품 플래그 스토어와 맞붙어는 호텔 공간을 걸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일상에 깊숙히 존재하고픈 욕심에 대한 표현방식에 놀랐었다. 다른 호텔을 예약했어 머무를 수 없었지만 다음 여행에는 꼭 한 번 묵어 보고픈 욕망이 저 깊은 곳에서 재차 유혹한다.

문득 지난 겨울 새벽 3시에 편의점을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단순히 라면을 사러 간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그 환하게 켜진 불빛 속에서 위안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인양품은 24시간을 지키며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나 여유롭게 고객을 유혹하는가.

당신의 일상이 무인양품이 제안하는 제품들만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오히려 더 효과적이고 안락한 하루를 보장할 수 있다는 체험과 상품의 다양성에 대한 호감도를 자연스럽게 상승시킬 수 있다.

처음 애플스토어에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나는 맥북을 사러 간 것이 아니었다. 그냥 구경하러 간 것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그곳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시간 동안 나는 마치 미래를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애플스토어의 천재성은 그들이 매장을 '판매 공간'이 아닌 '체험 공간'으로 설계했다는 데 있다. 모든 제품이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고, 모든 기능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다. 직원들은 판매원이 아니라 가이드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무엇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준다. 마치 친구에게 자기 물건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열띤 톤의 목소리로.

국내 기업들도 이런 애플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삼성 갤럭시 스튜디오나 KT 스마트모빌리티 체험존이 그 예다. 하지만 아직 애플스토어만큼의 완성도는 보여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아직 '체험'보다는 '판매'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산 부서에서 효율성을 재촉하는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따라하기의 그림자 속에서 혼자 빈 공간에 잽만 날릴 뿐이다


LG전자의 “홈브루 하우스”는 컨셉부터 세부전략까지 정교한 설계를 뽐내고 있다.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먹는다는 발상은 분명 애주가들에게는 매력 넘치는 제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내 숙성의 시간은 자신의 조금함이 기다려주지 않다는 절망감에 쌓여, 빛좋은 개살구 발명품이라고 머리속에서 이내 지워버린다.

이 부분이 마케터들은 티핑포인트의 순간으로 본 것 같다. 기다림조차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접근. 체험장을 통해 맥주 익는 기다림은 갈증을 이겨내고 한차원 높은 취향의 만족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마케팅 도구와 코스별 전략을 통해 설득하고 체득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입소문을 통해 어쩌면 미래 우리의 집술 방식을 뒤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이런 정교한 마케팅은 오감을 느끼게 하는 사례들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똘똘한 접근법이다. 매장의 음향 전략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공간의 영향을 받고 있었는지 깨닫게 만들어준다. 카페에서 일할 때 특정 음악이 나오면 집중이 더 잘 되고,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 배경음악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더 치밀하게 만들어나갈지 생각해보는 일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꿈틀댄다.

음향을 통한 공간 전략은 가장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마케팅 도구다. 사람들은 시각적 자극에는 어느 정도 방어막을 가지고 있지만, 청각적 자극에는 상대적으로 무방비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영리한 마케터들이 공략한다.

매장에서 배경음악의 템포를 조절해서 고객의 동선을 유도하고, 특정 시간대에 특정 음악을 틀어서 체류 시간을 조절하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방법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음악이 브랜드의 정체성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완벽한 음향 전략이라도, 브랜드와 맞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최근 국내 카페나 레스토랑 업계에서 'BGM 큐레이션 플랫폼'이 유료 서비스로 도입되고 있는 것은 이런 음향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음향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음향은 공간 전략의 한 요소일 뿐이고,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인센스 스틱이나 다양한 향기제품이 선보이는  감각적 마케팅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와인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지만, 그 맛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향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마케터들의 전략이 시작된다. 노즈캐칭(Nose-catching)이라는 용어 자체가 흥미롭다. 눈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코를 사로잡는다는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은 와인이라는 제품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다. 와인은 시각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제품이다. 병의 디자인이나 라벨로는 그 와인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다. 결국 직접 맛보고 향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시음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다. 와인의 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향과 어울리는 안주를 페어링해서 제공하는 것. 그리고 고객이 '작은 실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최근 서울 시내 주요 호텔 라운지나 백화점 주류 매장에서 시음 존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런 후각 전략의 효과를 인정한 결과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단순히 시음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제공하는 경험의 품질이다.



책에 소개된 다채로운 케이스 스터디를 하나씩 정복해 나가며 현대의 공간 전략이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한지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만들어내는 감정적 체험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지에 대해서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치밀한 전략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과연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진짜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경험이라고 해서 그것이 가짜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전략이 고객의 진정한 니즈를 파악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애플스토어에서 내가 느꼈던 설렘은 진짜였다. 그들이 치밀한 전략을 통해 그 설렘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그것이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나는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였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완벽한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계산되고 치밀하게 설계된 공간에서는 오히려 부담감을 느낀다. 대신 약간의 불완전함이 있는, 그래서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

미래의 공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람들의 기대치도 계속 높아질 것이고, 그에 따라 공간 전략도 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다. 사람들은 언제나 연결을 원하고, 의미를 찾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런 욕구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공간 전략도 결국은 이런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기술은 그 욕구를 더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 공간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물리적 공간의 고유한 가치가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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