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 읽기 - 무성 영화부터 디지털 기술까지
마크 커즌스 지음, 윤용아 옮김 / 북스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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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커즌스의 “세계 영화 읽기” : 스트리밍 시대의 영화에 대한 소고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마크 커즌스의 “세계 영화 읽기”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영화사를 포괄하는 거대한 여정을 그려낸 작품으로, 단순한 영화사 개론서를 넘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커즌스의 독특한 내레이션 스타일과 그의 열정적인 영화 사랑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끝에서 전달된다. 마치 내 옆에 앉아 귀에 속삭이는 친구같이 친근한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

 

이 책은 세계 영화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서구 중심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영화사를 다시 그려보자는 의도는 훌륭하다. 사실 미국 헐리우드 중심의 영화감상 포인트를 둔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매니아들에게 익숙치 않은 영화 소개는 불편한 좌석이 될 수도 있으나, 시도해보지 않고 폭넓은 세상으로의 발길을 막아서는 안될 일이다.

물론 저저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라는 느낌도 들고, 작위적인 성향은 아닐까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다는 점은 참고해야 겠다.

 

책에 소개되는 영화 선택이 지나치게 개인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을 영화의 일대기를 훑어보기 위해 선택했다면 다소 과녁이 벗어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마치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편람이라고 쏘아 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는 알지도 못하는 숨은 명작들을 만나게 되는 만큼, 뻔한 레퍼토리의 영화사 소개 도서보다는 실용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이 책을 통해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찬란함의 무덤”에 대한 소개였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태국 영화였지만, 커즌스는 이 작품을 "21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찬란함의 무덤”은 원인 모를 수면병에 걸린 군인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 젠지라의 이야기를 다룬다. 태국 동북부 콘깬 지역의 한 임시 병원을 배경으로,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낸다.

 

이 영화는 단순한 환상극이 아니라 태국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군인들이 꿈속에서 옛 왕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설정은 군부 독재 하에서 억압받는 개인의 무력감을 상징한다. 아피찻퐁 감독은 "꿈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지만 원하는 대로 꿀 수는 없다"며 예술가로서의 제약과 무력감을 표현했다.

영화는 느린 호흡과 명상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며, 형광등의 색깔 변화와 네온사인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젠지라와 켕이 함께 찾아간 왕궁의 폐허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자칫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던 끔찍한 현실이 오버랩되며 한 국가의 지도자가 가져야할 도덕성에 대한 의문과 이에 저항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력도 자연스럽게 연계되었다.

 


커즌스의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구로사와 아키라로 대변되는 일본 영화의 부흥기에 대한 서술이었다. 1950년대는 일본 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며, 구로사와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구로사와는 1951년 “라쇼몽”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를 세계 무대에 알렸다. 그는 서구 영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특한 일본적 미학을 구현했다.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프랭크 카프라 등 서구 감독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재건 과정에서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과 사회적 갈등을 깊이 있게 다뤘다. “이키루”에서는 죽음을 앞둔 관료의 실존적 각성을, “7인의 사무라이”에서는 계급 간의 갈등과 연대를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인상 좋아하는 것은 “란”이다.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일본 전국시대로 옮긴 작품으로, 권력과 배신, 혼돈을 다룬 장대한 서사시다.

영화의 절정인 제3성 공격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구로사와는 수백 명의 엑스트라와 말들을 동원해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주는 감동은 단순한 액션의 쾌감이 아니라 전쟁의 허무함과 인간의 탐욕이 초래하는 파멸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앞선 명작들과 결이 다른 작품이지만 어렵게 블루레이를 구해서 서가에 꽂아놓을 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책에 등장하는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반가웠다.

 

책은 스트리밍 시대 영화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영화관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는 영화관 산업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 미국의 경우 극장 관람객이 지난 5년간 27% 감소했고, 리갈 시네마는 39개 지점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했다. 국내에서도 2위인 롯데시네마와 3위인 메가박스가 합병을 발표했다. 코로나 이후 급격히 상승한 영화 관람료와 넷플릭스 구독료의 가격 차이를 따져보면 많은 영화 팬들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방 구석으로 옮기 이유가 설명된다. 한마디로 심각한 위기이다.

 


하지만 커즌스는 이러한 변화가 영화관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대신 극장은 "대형 스크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영화"에 특화될 것이며, 스트리밍은 다양한 독립 영화와 틈새 영화들을 위한 새로운 유통 채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인적으로 스트리밍과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은 분명히 다른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리밍은 편의성과 접근성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개인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택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매력이다. 하지만 극장에서의 체험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큰 스크린과 우수한 음향 시스템이 주는 몰입감은 집에서는 재현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란”의 제3성 공격 장면 같은 스펙터클은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볼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벤허”의 숨막히는 경주 장면, “반지의 제왕”의 전투 장면. 손바닥 화면으로 감상하기에는 제작진에게 미안하다.

 

또한 영화관은 사회적 체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다른 관객들과 함께 웃고, 놀라고, 감동하는 집단적 경험은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이는 개인적이고 파편화된 스트리밍 체험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을 준비하는 것은 상당한 번거로움이 따른다. 상영 시간을 맞춰야 하고, 교통편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긴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트리밍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작은 동네 극장이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창한 멀티플렉스가 아니라,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면, 영화 관람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극장에서 “찬란함의 무덤” 같은 명상적인 영화를 보거나, 다소 작은 스크린이지만 분명 영화관에 어울리는 “란”의 웅장한 서사에 몰입하는 경험은 분명히 특별할 것이다.

 

“세계 영화 읽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영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것이다. 스트리밍과 극장,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 서구 영화와 아시아 영화 모두 각각의 가치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영화 체험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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