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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투자하다
원수섭 지음 / 빈티지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인문학으로 투자하다 : 투자에 대한 각 자의 시선
퇴직은 일찌감치 코 앞에 다가왔고, 언제든 결단의 시기가 되면 해야할 리스트를 뽑아두기는 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예요.
게시판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고 밖의 풍경은 이 표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성공담만 귀에 들리지 뼈아픈 실패기는 얻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고 마냥 미룰 수 없다면 무엇을 준비해야하고, 또 그때 필요한 투자 조달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체크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각 자 플레이어는 자신의 최대 이익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눈높이 맞춘 준비도 필수요소이다.
책 속에서 발견한 MIT 연구 결과는 연령이 40대를 넘어가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위안을 줄 수도 있다. 성공적인 상위 0.1% 기술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이 창업에 뛰어든 평균 나이는 44.3세라는 것이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 듦이 주는 원숙함이 창업에서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젊은 두뇌가 새로운 기술 습득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좋은 회사를 만드는 데는 축적된 경험과 원숙한 판단력, 장기적 시각이 더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고 많은 퇴직 준비생에게는 격려의 한 마디이다.

저자는 꽤 흥미로운 커리어를 가졌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이면서도 인문학적 사고를 투자에 접목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삼성전자와 KT를 거쳐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그 실패가 오히려 투자업계 진출의 계기가 되었다는 그의 여정은 인생의 우연과 필연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가 13개 기업에 투자하며 유니콘 기업과 상장 기업을 발굴해온 경험담을 읽으면서, 나는 마치 투자자의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특히 CEO의 인품과 성향을 중시한다는 대목에서는 저절로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IR 발표 자료에 대표 본인의 사진이 크게 실려 있는 경우를 자의식 과잉으로 판단한다는 그의 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투자자들의 세심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실제 나르시즘에 젖어있는 많은 초보 CEO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아니던가.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CEO는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고 충고를 공격으로 여기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분석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이런 성향이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자신감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경우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권능감의 함정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설명하는 멱법칙(Power Law)은 투자 세계의 잔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수의 투자가 전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이 법칙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6명이 전 세계 자산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창업자에게 "평범한 성공이 아닌 압도적인 성공"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투자자들은 10배, 100배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업을 찾고 있으며, 단순한 개선이 아닌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혁신을 원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과연 각자가 준비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이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터 틸이 "시장을 독점할 만한 아이템이 아니면 창업하지 말라"고 한 말의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시장의 벽은 두껍고 견고하다. 그 벽을 뚫고 나가려면 단순한 개선이 아닌 판을 뒤집어 흔드는 아이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영미 교수의 “디퍼런트”를 인용하며 저자가 강조하는 차별화 전략은 창업자들에게 영원한 숙제다. 단순한 기술적 차별화를 넘어 본질적인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의 차이에서 나온다. 더군다나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왜 당신의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고 설득력을 내재시켜야한다. 이 대목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얼마나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 갇혀 있었는지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본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창업의 핵심이 아닐까. 어쩌면 다니던 직장에서 이런 차이로 실패를 맛 본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 역시 꽤 멋진 아이디어를 녹아낸 아이템들이 시장에서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해 실망했던 케이스가 있는데 실제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했던가 어렴풋이 판단했던 당시의 분석이 실제로도 원인이 되었구나 아쉬움을 쓸어내려야 했다.
기획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사업을 이야기로 구성하는 것, 반대로 이야기로 사업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기획이다라는 강조가 특별한 울림을 남긴다. 떠올려보면 성공하는 스타트업들은 모두 강력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 스토리는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포장이 아니라, 사업의 본질을 관통하는 핵심 서사를 얼마자 표현하는지 흥미롭게 머리 속에 몇 개 떠올려보았다. 고객들이 제품을 사용하기 전과 후에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감동이나 만족이 충분히 강력한지가 중요하다. 고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지가 사업 성공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업은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여정이다.
성공에 대한 기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지속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저자가 조언한대로 확률적이고 독립적 사고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라이프 사이클 구축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극복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월급쟁이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이지만, 도전에 응하지 않고 창업은 불가능하다. 창업자는 모든 결정에 대한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부담감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과도한 자신감이나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면 리스크가 작아보이는 착시가 일어난다는 말도 중요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책을 덮으며 창업자의 길이 얼마나 외롭고 긴 싸움이 되는지 새삼 느끼개 된다. 다만 다행으로 여겨야할 원동력은 젊음이 주는 에너지와 추진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경험이 주는 지혜와 원숙함이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성공에 대한 간절함이 더 크다.
퇴로가 없다.
앞으로 몇년간의 준비 과정은 단순히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창업자로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