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시간 1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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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시간 : 돌아온 존 그리샴, 법정 스릴러의 거장이 돌아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강렬한 주인공의 눈빛만큼이나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느끼는 충격은 드라마로서는 매력넘치지만, 우리 현실의 투영이라는 우울함도 동반한다.

13세 소년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믿을 수 없게,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되어 마치 현실을 목격하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각 에피소드가 끊김 없이 진행되며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며, 청소년 범죄의 복잡한 이면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 묵직한드라마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전설에서나 등장할 듯한 거장 존 그리샴의 신작 '자비의 시간'은 두 작품 모두 청소년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소년의 시간'이 영국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직면한 온라인 괴롭힘과 여성혐오 문화를 배경으로 한다면, '자비의 시간'은 과거로 훌쩍 넘어가 1990년대 미국 남부의 보수적 가치관 속에서 가정폭력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다룬다. 두 작품 모두 범죄 스토리를 넘어서 사회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드라마가 현실적이고 절망적인 톤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조명한다면, 그리샴은 법정 스릴러라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장르적 틀 안에서 정의와 자비의 경계를 탐색한다.

존 그리샴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것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그의 초기 걸작들이다. '타임 투 킬', '펠리컨 브리프', '사라진 배심원' 등 법정 스릴러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장르를 대중문학 주류로 끌어올렸다. 감사하게도 그의 소설들은 복잡한 법적 쟁점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영화로 제작된 작품들은 시간의 한계로 맥이 빠지는 부분도 있지만 작품 특성상 불가피한 아쉬움이다.

'자비의 시간'은 그리샴의 대표 시리즈인 제이크 브리건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여전히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법정 장면의 긴장감은 건재하다. 초기 작품들이 보여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예측 불가능한 전개는 이제 어느 정도 공식화된 느낌이다. 작가의 성숙함과 깊이가 느껴진다. 단순한 승부욕이나 스릴을 추구하기보다는, 인간의 도덕적 갈등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아내려는 거장의 의지가 보인다.

'자비의 시간'은 미국 앨라배마주의 작은 도시 클랜턴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제이크 브리건스가 휴일 이른 아침 동료의 전화를 받으며 시작된다. 이 지역의 보안관보 스튜어트 코퍼가 자기 집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으며, 동거하던 여자친구의 아들이 범인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열여섯 살 소년 드루 갬블은 어머니 조시와 함께 보안관보 스튜어트 코퍼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스튜어트는 평소 조시와 그녀의 자녀들인 드루와 딸 키이라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했다. 그날 밤도 예외가 아니었다. 잔뜩 술에 취한  스튜어트가 조시에게 폭력을 가해 그녀가 정신을 잃었다. 이때 드루는 자신과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스튜어트를 향해 권총을 쏘고 만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서 스튜어트는 보안관으로서 좋은 평판을 쌓아온 인물이다.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의붓아들에게 살해당하자, 자연스럽게 드루에게 불리한 여론이 형성된다. 검찰은 드루의 사형을 주장하지만, 이에 맞서 제이크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고 맞선다. 드루가 가정폭력에서 가족을 지키려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점을 입증하려 노력한다.


소설의 초반부는 이러한 사건의 발단, 그리고 제이크가 사건을 맡게 되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초반부터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심리를 세심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특히 드루의 복잡성을 부각시킨다.

권위적인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가정폭력이 은폐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은폐된 사회적 이슈이다. 드루는 단순히 피해자나 가해자로 규정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이고, 이는 현실의 복잡성을 잘 반영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법정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미 그의 작품을 접했다면 어색하지 않은 장면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배심원제도라는 우리와는 다른 형태의 재판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공방에 흥미를 돋군다. 법적 논리와 인간적 감정 사이의 긴장감은 법정을 가득 채우며,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은 동일하다는 묘한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다.

'자비의 시간'은 존 그리샴이라는 작가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초기 작품들이 보여준 그 압도적인 스릴과 몰입감은 약간 물러지 느낌도 들지만, 이런 세월의 흐름을 깊이 있는 인간 탐구와 사회적 성찰로 담아냈다. 단순한 장르 소설을 넘어서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을 위치를 넘어선 것이다.

'소년의 시간'과 비교해보면, 두 작품 모두 청소년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조명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 속에서도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자비의 시간'은 오락성과 문학성, 현실성과 이상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한 작품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성숙한 작가의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의미 있는 작품이기에 그를 잘알고 있던 팬이던, 처음 접하게 된 독자이던 꼭 한 번 선택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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