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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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대량살상무기 수치심에서 나를 찾아가는 방법
 
 
 
 
 
대량살상 수학무기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한동안 서점에 방문할 때 눈길을 끌던 책이 있다.
수학이라는 과목에 트라우마가 있어 수학책 근처에는 웬만하면 접근할 엄두를 멋내지만 무기라는 제목이 끄는 힘은 강렬했다.
물론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위시리스트에 책 이름이 올라가는 일을 막지는 못했다.
 
수치심을 산업계가 어떻게 악용해 먹는지 적나라한 이면을 보여준다는 책의 저자 이름이 묘하게 익숙했더니 바로 수학무기를 저술했던 바로 그 수학자였다.
 
연관성이 없는 제목이고 내용이지만, 순서와는 반대로 셰임 머신을 읽어 나가며 평상시에 느끼지 못했던 여러 측면의 생각들이 교차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됐다.
 
어떤 상황에서 든 수치심을 느끼고 싶어할 사람은 없다.
무리를 꾸리고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비난받고 소외되는 추방의 길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강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아양을 떨다 가도 기회가 된다면 가차없이 적의 목을 따러 덤벼드는 밀림의 법칙이 인간세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정신에 집단의 규율과 금기는 DNA 위에 문신처럼 보존된다.
개인의 생존뿐 아니라 집단의 생존에도 정해진 테두리를 지키고 그 안에서 복종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일은 필수과제가 된다.
 
거대한 자연에서 한낱 몸짓 작은 포유류에 불과했던 인류가 집단의 힘을 과시하며 위협성을 키우고 지역을 장악하는데 수치심과 소속감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수만 년 유전자에 새겨진 집단역학은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특정상태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갖게 만들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건강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도 걸어야 될 정도로 소속 안에서 인정받기 위한 인간의 투쟁은 처절하다.
낙인 찍히지 않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에는 힘든 조건을 지켜야할 사람들조차 마다할 수 없게 되었고, 충분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자들은 끝없는 불안과 조바심에 생명을 단축시키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다.
 
더욱이 원시시대의 종족 보호를 위한 행동들이 사회와 과학의 발전으로 복지 차원의 테두리 정도로 위협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도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이들에게는 일상은 죄악을 짊어진 죄수의 심정이 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심리상태에 극복하기 위해 지나친 고통과 비용의 수반을 원하는 자들은 바로 기업이라는 점이다.
사회구성원으로 부족한 부분을 대체할 수도 있고, 사실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의 상태를 마케팅을 통해 불안감을 키워 극복하지 않으면 영원한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 있다는 허상의 공포를 심어 놓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철저한 전략과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노화된 몸을 놀리는 박쥐날개라는 용어를 이 책에서 처음 만나게 되지만, 아직 생소한 비아냥이 한국 사회에 유행하게 되리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동질 집단에 속하지 못했을 때 유달리 불안해하고 체면에 목숨을 거는 한국인들에게 노화의 징표가 놀림거리의 대상이 된다면 성형산업은 노다지의 땅을 발견한 것 아니겠는가?
 
저자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비만에 대한 업계의 실체는 충격을 가져다준다.
숫자와 통계에 장난질을 쳐 대고, 상당수의 고객들이 요요 현상을 오히려 체중이 늘어나버리는 프로그램 이후의 삶을 난도질하고 숨긴다.
돈벌이에 활용하 선별된 데이터와 예쁘게 변모한 모델 같은 고객이 화면에 등장하여 몸집이 크다는 일은 죄악이라며 손가락질하며 수치심을 극대화하고 공포감을 유발시킨다.
 
건강상의 문제는 유발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음에도 바비 인형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잘못된 사회인식을 퍼뜨리고 수익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소비자의 두려움을 흡수해 버린다.
 
TV프로그램은 물론 제약, 에어로빅 등 다수의 업체들이 카르텔을 결성하며 비만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고객들을 후킹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성형중독도 예외는 아니지 않은가?
강남 곳곳에 비슷한 모습의 미인들이 일반인들의 못생김을 비난하고 죄악시한다.
그리고 수술을 강권한다.
수치심을 증폭한다.
 
10대 초반 소년소녀까지 다이어트의 대상으로 삼는 기업들이 성황을 이룬다는 미국 사례는 수치심을 이용한 악행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의심하게 만드는 수준이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나 자신 스스로  지나친 자기 비난과 위축된 일들은 없었는가 점검하게 된다. 열등감이나 모자람을 탓하는 몇 가지 상황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점은 이 역시 나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와 기업의 마케팅에 오염되어 버린 정도가 심하다는 자각이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미에 대한 기준, 부에 대한 기준, 올바른 삶과 성공한 인생의 기준을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주관적으로 설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는 누군가 주입하는 정보와 인지에 복종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저자가 어렸을 때부터 콤플렉스로 여겼다는 과체중이 궁금해 사진을 찾아보았다.
분명 슬림 한 몸매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학을 무기로 만드는 명석함은 그녀의 몸짐과는 상관없이 아우라를 뽐내고 있었다.
사회의 다양성, 각자의 고유성을 지키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 이제는 DNA에 각인된 수치심을 벗어 던질 때가 됐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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