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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 아트록의 선구자
성시완.지승호 지음 / 목선재 / 2022년 4월
평점 :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 한국 아트록 음반사를 이끌었던 선구자의 일대기
Three Fates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주자였던 Emerson, Lake & Palmer의 데뷔작 앨범 엄중한 오르간 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전율.
오랜 시간 프로그레시브 록 – 아트록이라는 장르에서 푹 빠져 지낼 수 있게 만들어준 장본인이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주류 음악 씬이지만, 한 번 빠져들면 꽤 오래 머무르게 되는 늪 같은 음악세계다.
불모지와 같던 한국 아트록 장르를 DJ 음반사 사장 잡지 제작자로 이끌어온 성시완씨의 인터뷰 집이 출판된다는 소식은 반가운 마음을 넘어 추억이 일시에 소환되는 짜릿함마저 가질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비록 전성기를 지났지만 음악적 감수성은 그대로인 이탈리아 밴드들의 한국 공연을 성시완씨가 어려움 속에서 관철시켰다는 뉴스는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얼마나 후회되던지.
그들을 유치하기 위한 과정도 책에 잘 녹아 있어 간절함은 더욱 배가된다.
덕분에 그 이후 방한했던Renaissance의 서울 공연은 꽤 좋은 좌석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음악 이외에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 음반을 구매하거나 플레이할 오디오가 없다면 유행에 따라 흘러나오는 플레이리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양한 해외의 경험이 음악의 시작점에 있었고 깊숙한 소리로의 여행에 동반되는 다양한 경험은 성시완씨의 여유 있던 형편이 뒷받침되었다. 이 점은 많은 음악 매니아들이 공감과 동시에 부러워하는 요소다.
예전 미도파 백화점 지하에 있던 음반전문점 “파워 스테이션”에서 고르고 골라 두세장을 카운터로 들고가면, 바구니에 CD를 쓸어 담아 오던 아저씨의 손이 왜 그렇게 커 보이던지.
나중에 취업이 되어 돈 벌면 나도 마음껏 음반을 장바구니에 집어넣는 날을 고대했다.
막상 돈이 있어도 음악 듣기에 올인할 수 없는 현실의 장벽은 여전히 이어질 운명이지만.
펜팔을 통해 아트록에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보며 어릴 적 해외 친구 만들기에 도전해보고 싶던 마음만 간절했던 기억이 난다. 잡지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전세계에 친구를 만들어보세요 광고가 채워졌다. 편지 한 편 주고받는 시간은 요즘 같은 세대는 상상도 못할 시간이 인내로 소진된다.
책을 읽다 30분에 달하는 대곡애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손가락을 튕겨 스포티파이에서 재생한다.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음악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손끝에서 노래를 재생할 수 있다는 편리함은 음반 하나 구하기 위해 해외출장 가는 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기다리는 인고의 벽을 넘어섰던 과거가 있었기에 더욱 값지다.
인터뷰어가 요즘 자주 듣는다고 했던 King Crimson의 걸작 “Red” 앨범을 구하려고 진땀 뺐던 기억이 난다. 신문로에 있던 수입 레코드 가게에 물어보니 서너 달 기다려야 LP를 구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듣고 가격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니 3만원 훌쩍 넘는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로서 꽤 높은 금액이지만 수입음반을 알음 사람을 통해 구하려면 평균적인 금액이기도 하다. 몇 년 지나 아마존에서 앨범을 저렴하게 구해서 들을 때의 두근거리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지금은 다 처분해버렸지만 성시완씨의 친구 미스터 닥터가 주도하던 Devil Doll 음반들을 꽤나 어렵게 구했던 기억도 슬쩍 지나간다.
아트록 지를 구매하면 샘플러 씨디가 제공되었다.
시완 레코드를 통해 판매하는 음반들 중에 인상적인 곡들을 모음집으로 엮어낸 편집 음반인데 사실 이게 대박이다. 모든 음반을 사 모을 능력이 된다며 모르지만 상당수의 콜렉터들에게는 진주 같은 노래를 모은 또다른 걸작이었고 그 중 특히 인상적인 곡들은 위시리스트에 올라가곤 했다.
홍대 입구 쪽에서 운영하던 레코드 샵 “마이도스”에서 CD를 고르면서도 커다랗고 아름다운 LP자킷을 흘깃 보던 추억도 기억난다.
요즘 LP전문샵들이 잔잔하게 운영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세상은 반복되는 게 분명하다.
한국 유일의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으로 평가되는 조윤의 “뫼비우스 스트립”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재킷에 쏟아부었다는 인터뷰를 들으며 음악 자체에 돈을 더 투자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아쉬움도 남고, 재킷이 가진 아트록 특유의 정서와 미학적 열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얼마전 이 음반 중고로 판매하다가 알맹이 씨디가 없어 못 팔았는데, 어딘가 처박히었을 음반을 찾아내 플레이어에 걸어야 겠다는 의욕이 귀차니즘을 거둔다.
한국적 정서가 조금 더 강했으면 어필할 수 있었을 거라는 성시완씨의 설명을 듣고 음악을 들어보니, 아쉬움이 더욱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녹음의 깊이감이 없다는 점이 제일 아쉽다. 드럼 소리하고.
* 유튜브에 음반이 통째로 올라와 있긴 하다. 필요악일까? 최근 그룹 Asia와 UK의 데모 음반들을 유튜브를 통해 찾았을 때는 신나기만 했는데 내가 가진 앨범이 통째로 공유된다는 점이 제작자도 아니지만 배가 아프다. 이중성. 어쩔 수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구자 역할을 했던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이 음반을 손에 들고 감동에 빠졌었는지 연결시키는 작업은 블루레이 감상후 코멘터리를 통해 영화 뒷이야기를 듣는 과정과는 또 다른 맛을 전해준다.
40년 이상의 시간이 그의 관록과 함께 팬들의 정서적 공감대와 음악을 통한 탐닉의 길을 걸었다는 어지러움이 손끝에 묻어나는 책 읽기.
어려움을 뚫고 음악적 호기심을 채워 주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과거와는 달라진 음악환경에서 새로운 무기로 들고 나올 수 없는 현실이 아쉽기도 하다.
마치 수해로 수많은 명반들을 폐기처분해야했던 에피소드의 가슴 아픔과 같다.
지난주 홍대에서 술 한잔 먹고 예전 마이도스 레코드 샵이 있던 앞거리를 지나며 후배에게 한 마디 던졌다. “여기에 아주 유명했던 레코드가 가게가 있었어. 성시완씨라고 알아? 킹 크림슨의 라이브 전집하고 클라투의 음반도 여기서 샀었는데…”
후배는 별 관심이 없이 흘려들은 소리지만 내게는 소중한 삶의 기록들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