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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살인의 예술 : 범죄소설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멋들어진 고전 단편 모음집
책장이 노랗게 물든 추억 속 책들이 가끔 사진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장면을 보게 되면, 천정부지로 높아진 가격만큼 내 나이 숫자도 커졌다는 허탈한 웃음을 피식 내뱉는다.
가입조차 하기 어려운 “클로버문고 씨리즈”의 전문 네이버 카페도 개설되어 놀랐고, 한국 작가 김동명의 작품이라고 믿었지만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일본만화 불법복제판이라 실망을 금치 못했던 “바벨 2세”도 기억난다.
저작권 개념이 21세기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던 1980년대, 장르문학은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지는 못했지만, 셜록 홈즈나 뤼팡의 인기는 오히려 더 높지 않았을까 추억 보정을 해본다.
해적판 출판사의 보고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해문출판사에서 내놓은 책 두 권은 어린 시절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세계의 명탐정 44인”, “세계의 위인은 명탐정”
중고가가 25만원으로 책정되어 놀라움을 준다.
당시 일본 출판물에서 자주 마주치는 독특한 그림체가 삽화로 등장한 점도 흥미롭다.
복잡한 추리소설의 트릭을 풀어가는 명탐정들의 명석한 두뇌게임은 이후 개인적인 책읽기의 방향 중 하나가 추리/스릴러로 엮이는 계기가 되었다.
명성에 비해 교감의 기회가 적었던 작가 중 한 명은 오늘 소개하는 “살인의 예술”의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다.
국내에도 “안녕 내 사랑”, “빅 슬립”, “기나긴 이별”, “리틀 시스터” 등 작품이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e북으로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래저래 사 놓기만 하고 읽은 못하던 작품 중 “리틀 시스터”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감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뭔가 일에 쫓기던 시절이라 템포 느리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속도감이 추리소설을 통해 얻고자 했던 긴장감과 박진감을 제대로 느낄 수 없어서 그랬던 걸까? 그에 반해 필립 말로 탐정의 데뷔작인 “빅 슬립”은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는 기억을 비교해보면, 책 자체의 템포보다는 책 읽던 당시의 독자의 상태나 태도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살인의 예술”은 단편 5 작품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거친 밑바닥 생활에도 익숙하고, 땀냄새나는 육박전에 어울리는 탐정들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피터 스완슨이나 길리언 플린 같은 요즘 작가들에게 익숙해진 독자라면 앞서 내가 경험했던 챈들러의 소설들과 첫 만남처럼 느릿하게 걷는 탐정들의 발자취나 사건이 진행되는 약간은 허술하고 공감되지 않는 풀이 방식에 실망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100년전, 200년전 고전에서 찾는 가치가 현대생활의 부조리나 인간성의 상실 같은 현대문제작들의 단골 소재가 아닌 오래던 당시의 시대적 고민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면 된다.
피 비린내 나는 충격적인 장면이나 독자를 압도하는 충격적 반전이 없더라도, 한 세기 앞선 시대의 탐정들이 거친 사건들을 다루는 투박한 솜씨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디테일 하게 묘사되는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묘사나, 진하게 풍기는 담배 연기와 위스키 냄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시대적 체험을 느낀다면 천천히 움직이는 긴장감과 두뇌와 몸을 동시에 활용하는 인간적인 탐정의 활약상에 매료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없이도 해박한 지식과 두뇌회전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즈 시대 이후의 탐정들의 전형을 책을 통해 우리는 만날 수 있고, 이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경험만으로도 책 읽기의 또다른 맛을 얻을 수 있다.
사건 전개 과정 중 뜬금없이 비약적인 장면도 마찬가지다.
처음 등장하는 단편 "황금 옷을 입은 왕"을 보면, 야간경호를 맡던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탐정이라는 직업을 꺼내거나, 살인현장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앞뒤 관계없는 설정과 자연스럽지 못한 전개라는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어색함은 이어지는데, 치밀한 논리나 과학적 증명없이 사람과의 대화와 관계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작가가 살던 시대, 탐정들의 나름대로 멋이 배어 있는 장면들의 연속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고전의 반열로 넘어가는 작품들은 통과하는게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스마트폰 없는 시대, 전화도 쉽지 않은 시대상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불편함으로 계속 따라다닌다.
책을 읽다 보니, 글자체나 중간 그림양식도 꽤나 오래된 종이 곰팡이 냄새 나는 착각을 일으키는 듯하다. 출판사의 의도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와 연결되는 통로로서 지면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자책으로 읽을 때의 챈들러의 소설과 종이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도 들었다.
본격적인 장편이 등장하기 이전 단편에서 등장한 주인공들이기에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숨은 진주처럼 빛나고 있기를 기대해본다. 어쩌면 지금도 어둠 깔린 20세기 초 미국 뒷골목에서 범인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을지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