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저택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육식저택 : 작가와의 마지막 만남, 4편의 단편으로 만나는 스토리 대가의 기괴함



작가의 죽음은 공유했던 상상과 감정 공유의 공간이 소멸됨과 동시에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정지했다는 의미다.

학창 시절 등교길을 무지개빛으로 채워주던 음악적 교감이 더이상 불가능하게 만든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이 그러했으며, 고전 비틀기의 “앨리스 죽이기”로 시작해 시간과 기억에 대한 사고의 새로운 틀을 제시했던 “기억파단자”, “분리된 기억의 세계”까지 일본소설의 파격적인 설정을 즐기게 만든 고바야시 야스미 작가의 뜻밖의 부고가 그랬다.


유고작이 되어 버린 “미래로부터의 탈출”에서 설파하던 인간 이후의 세계 - 기계가 지배하던 세상 속 매트릭스의 끔찍한 악몽을 끝으로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침묵 속에 갇히고 말았다.


“육식저택”은 작가가 잡지 등에 기고했던 미출간 단편 4개를 한데 묶어 펴낸 모음집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묘하게 뒤틀리고 독자의 심리를 스토리에 홀리게 한 후, 마지막 반전으로 모든 가정들을 허물어뜨리는 쾌감을 주는 그만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여전하다.


육식저택

정크

아내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

짐승의 기억


약간씩 장르의 각도는 다르지만 전체를 휘감는 감성은 우리 주변에 불가사의한 현상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삐뚤어진 모습들을 흥미롭게 그려가고 있다.

“ㅇㅇㅇ죽이기” 시리즈가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의 비틀기가 감상 포인트였고, “기억파단자”같은 소설은 미스테리의 잘 짜맞춰진 사건의 조각맞추기가 흥미를 끌어낸다고 생각하면, 오늘 소개하는 단편들은 기괴함과 교묘한 힌트 찾아내기 게임이 전체적인 톤을 지배한다. 예상치 못한 판타지 장르를 선보여 당황 시킨 “인외 서커스”의 잔인하며 핏빛 가득한 작품의 선명한 핏빛 느낌도 잘 버무려져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런 단편을 통해서 장편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만들어냈을 지도 모르겠다.


“아내에게…”에서 평상시에 가능성을 떠올려보던 시간의 흐름에 대해 술회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20년전, 10년전, 지금의 내가 과연 같은 인간일까?

육체는 하나였지만 7년에 한번씩 모든 세포가 재생산된다고 하니 육체도 어쩌면 과거의 내가 아니다.

생각의 개념에서 볼 때는 더욱 확연한 변화의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도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뀐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열렬한 감정도 수그러들기도 하고 비정상적인 확대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분명 이름으로, 주민번호 상 한 사람이지만 다중인격같은 변화를 꿰뚫어주는 것은 기억이라는 눈에 보이지않는 현상에 의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기억의 의도적인 조작과 변경은 완전히 다른 사람의 자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감각마저 바꿀 수 있는 가공할만한 내면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


소설 읽을 때 만약 이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장면구성이나 사건 전개를 효과적으로 나타낼 방법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육식저택 “의 경우는 일단 감독선정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로테스크한 색채를 가득 담아내려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적합하다. 작품 전체를 유머 스러운 분위기를 집어넣어 흥겹게 만들고 싶다면 팀 버튼 감독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악취와 끔찍한 장면 연출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애니 “메모리즈”의 에피소드 최취병기(最臭兵器)처럼 철모르는 주인공을 코믹하게 연출하는 방식도 결말을 위한 비틀기의 장난을 칠 수도 있다.


“아내에게..”는 영화화 하는게 거의 불가능하거나 시나리오에 왜곡을 너무 심하게 가해야 하므로 활자로서 만족하는게 나을 듯하고, “짐승의 기억”은 주인공의 심리 표현을 잘 엮어간다면 의외의 스릴러 형식으로 수작이 한 편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 아직 못 본 작가의 작품이 남아있지만 - 더 이상 “고바야시 야스미 표”라는 타이틀이 붙은 작품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낯설다.

억지스러운 극 전개나 과도한 설정같은 못마땅한 부분도 있지만, 근 2-3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찾았던 작가이니 아쉬움은 배가된다.

유작인 “미래로부터의 탈출”과 연이어 읽게 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영면하시길.@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