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파단자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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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파단자 : 기억이 상실되는 자와 기억을 생성하는 자의 대결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노래는?
아침 자명종 음악.
예전에 내가 쓰던 기상나팔노래와 후배직원 벨소리 음악이 같은 적이 있다.
그 친구 전화 올 때 마다 자동으로 짜증이 머리에 훅 밀고 들어온다.
새로운 - 활기찬 - 아침은 사실 없는 거 아닌가?

문제는 "기억파단자" 주인공 니키치에게는 아침은 과거가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친구가 패거리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에 분개하다 머리에 큰 거 한 방 얻어맞은 기억이 주인공의 마지막 보전되는 기억.
단기기억 상실증. 책에서는 전향성 기억 상실증이란 의학용어가 사용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이용하는 뇌의 병은 삶의 하루를 어렵고 의미 없게 만드는 끔찍한 상황으로 몰고간다.
 
시간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떤 곳을 목적으로 흘러가는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형태 없는 시간은 우리 주변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숨쉬게 만든다.
그리고 차곡 쌓인 시간의 궤적들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남아 일부는 사라지고 어떤 사건들은 평생 좋은 의미 또는 나쁜 의미로 잠재의식까지 파고들어 행동과 생각을 지배한다.
기억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는 몇몇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신선한 관점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 놓는다.
 
-기억파단자
-분리된 기억의 세계
-미래로부터 탈출

작가는 각자 다른 형태의 스토리 라인으로 책 읽는 이에게 소설로서 재미를 제공해주지만 공통적인 기억의 본질, 그리고 우리는 과거에 쌓인 순간의 저장품들을 진짜 믿을 수 있을 까라는 의심도 하게 뒤에서 조종을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하게 만든다.
그만큼 짜임새 있고 긴박한 등장인물을 둘러싼 세상의 변화가 몰입을 만들어 준다.
기억을 다루는 많은 미디어들이 주목한 케이스는 헨리 구스타브 몰레이슨의 의학적 소견이다.
여기에는 특정 시점 이후의 과거를 기억 못하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몰레이슨이라는 사람은 뇌전증을 치료받기 위해 해마절제 수술을 받게 되는데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나 치료가 되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수술 전의 기억은 모두 정상적으로 하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단기적으로 생성되고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모든 일을 기억하지만 어제 일은 오늘 아침의 일은 전혀 기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해마는 장기 기억을 부호화 하여 저장하는데 이를 절제하여 나타난 후유증이다.
의학계가 주목한 두뇌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다.
기억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주변에 돌 봐주는 가족이나 연고자가 없다면 어떻게 자립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영화 "메멘토"에서는 주인공은 자신의 몸에 기록을 하여 과거를 유지한다. 그리고 역으로 재생되는 플롯의 끝에서 우리는 충격적인 반전을 만나게 된다.



소설 "기억파단자"는 노트를 활용한다.
노트에 중요한 내용들을 빼곡히 적어 내려가며 단절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낸다.
물론 이런 방식은 점차 두꺼워지는 페이지 수도 부담스럽고, 필기를 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인식을 하는 과정에도 시간이 소요된다.
매번 기억이 소실될 때 노트 전체를 다 읽어야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한계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가장 확실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억의 저장방법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 " "는 USB를 두뇌에 삽입하는 방식을 개발하는데, 이 경우는 전 세계 인류가 동시에 병에 걸렸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대처 방안이 나온 결과물이다.
이제 이야기를 어떻게 확대할 지 작가의 의도를 두근거리며 지켜보는데,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초능력자.
현실세계에 있을 법한 기억상실자와 의외의 조합은 둘의 운명적 만남으로 시작된다.
키라라는 인물은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대고 명령을 내리면 상대방의 기억을 원한대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길가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어깨를 툭 치면서 "넌 나의 약혼자이다."라고 중얼거리면 상대방은 혼란에 빠지지만 밑도 끝도 없는 주문이 자신의 기억 한자리에 삽입되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누군가를 조종하는 초능력인데, 실제적으로는 기억을 조작하는 수법이다.
키라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살인이나 폭력도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이다.
주인공 두 명은 결국 "기억"이라는 지점에서 교집합을 가진다.
이쯤 되면 소설의 얼개를 알아차릴 수 있다.
기억이 사라지는 자와 기억을 생성하는 자.
문제는 이 둘의 관계는 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우연히 키라와 사건으로 얽히게 된 니키치는 살인범을 잡겠다는 결심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던 중 우연히 작가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
그것도 2년 전에.
왕성한 활동을 하던 작가이기에 새로운 그의 작품 (미래로부터 탈출)이 출판된다는 소식에 즐겁게 안내 페이지를 읽다 깜짝 놀랐다.
"앨리스 죽이기" 부터 이어진 작가와 독자라는 관계는 다른 작가보다 확연히 다른 세계관을 그려내고 있어 팬덤이 자리잡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많이 많이 아쉬웠다.
 
"기억파단자"는 신작 소설은 아니다. 개정판으로 출간된 책이다.
만화 같던 표지가 소설다운 이미지의 표지로 바뀌었다. 다만 오탈자가 몇 군데 눈에 띄는 부분이 아쉽다.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억파단자"는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던 생각의 근원에 기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도 과연 우리는 과거가 투영되어 누적된 기억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킨다.
블레이드 러너의 "레이첼"이 회상하던 어린 시절은 자신의 것이 아니지만, 프로그래밍을 통해 자신이 인간이라는 실존적 증거로서 차용된다.
그리고, 진실을 깨달았을 때 흘리던 눈물은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했기 때문인 동시에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그리운 기억을 더이상 자신의 기억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없게 된 파괴의 아픔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 그것이 무엇이던 진짜일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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