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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문명의 경계에서 바라본 세계사
에발트 프리 지음, 소피아 마르티네크 그림, 손희주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9월
평점 :
야만과 문명의 경계에서 바라본 세계사 : 세계사를 열린 눈으로 바라보는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역사 들추기
세계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화되야 한다.
현재의 우리가 대한민국 정규과정에서 받아오던 세계사 교육은 아무래도 근현대사를 좌지우지했던 미국과 일본의 역사책들에 영향을 받다 보니 많은 부분 서구인들의 시각을 통해 그려진 내용들이 많다.
물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때로 등장하는 패자들의 모습은 승자의 위대한 승리를 장식하기 위한 보조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라져간 민족과 국가의 존재 의미가 같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었던 신대륙 원주민들의 역사가 기록의 부재와 파괴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들이 쌓았던 문화유산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치와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유럽의 역사에 대해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시대, 산업혁명, 그리고 1,2차 세계대전까지 많은 매체를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동남아시아나 인도, 그리고 중동이나 동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배울 기회조차 얻기 만만치 않다. 아프리카라면! 어떨까!
재미삼아 동유럽 지도를 그려보니 아프가니스탄 오른쪽부터 폴란드 사이에 있는 국가들의 정확한 위치와 모습, 그리고 넓이 등을 표현하기 힘들었다. 아프리카는 도전조차 할 수 없겠지.
인류의 시초가 아프리카 대륙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시작하여 역사라는 거대한 강줄기를 만든 만큼 우리는 도도한 시간의 일원으로 다양한 대륙의 많은 이들의 역사와 의미를 뒤돌아보며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세계사를 이해하고 더욱 강력한 나라를 만들며, 이웃 국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주는 임팩트는 크다.
그동안 서양인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역사의 시각을 많이 흔들어 새롭게 관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삽화나 사진 자료는 책 읽는 재미를 준다.
문장의 흐름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아쉽긴 하다. 가끔은 중간에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와 이거까지 내가 알아야 하는 애매한 디테일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펼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와 거대한 인류의 발자취를 즐거운 산보하듯 책장을 넘겨가는 셈이다.
처음 대하는 역사의 줄기에 당황스럽고 어색하지만 이제 우리는 폭넓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기 시작한 따름이다.
호모사피엔스가 4종의 인류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이유에 대한 공방은 오래 되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의 이유들 - 사회성이나 뇌의 발달 부위 등 - 에 대한 설명이 추가된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4종에서 일부 유전자가 섞인 증거도 남아있지만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그 중 우수한 1종이 생존한 것이 아니라, 피부색 다른 인종이 퍼져 있는 것처럼 4종의 인간조상들도 여러 지역에 아직도 혼재된 상태로 후예들이 살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이야 익수가지만, 호모 플로레시엔스와 데니소바인은 낯선 이름이라 외우기가 쉽지 않았다.
세상은 넓다 라는 증명을 하며 세상을 떠돈 많은 탐험가들 중에서 저자는 제임스 쿡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 3차례에 항해를 통해 그가 이루어 낸 업적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지도의 완성이나 천문학적 지식의 축척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당시 유럽인들 대다수가 생각해보지도 않던 항로를 개척해낸 부분이 가장 크지 않을까?
평생 자신이 항해한 도착지가 인도라고 생각했고, 신대륙이라는 발견의 도화선을 당긴 역할이었지만 콜럼버스가 가장 위대한 모험가로 자리매김했듯이 말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배신감이. -
문자의 발명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면 이 부분은 좀 집중적으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토큰이나 칼쿨리와 함께 시작된 기록에 대한 역사는 BC4000년 후반기에 부드러운 점토판에 글자를 새겨 넣거나 갈대줄기로 만든 석필로 글자를 새김으로써 본격적인 체계화와 소통가능한 도구로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이는 지식의 전달이나 기록이라는 고귀한 의미가 아니라 무역할 때 내가 건네받은 가축 수를 중계인이 떼먹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데서 시작한 지극히 상업적이고 인간적인 출발점이라는 부분이 유쾌하다.
기존 세계사 책을 보면 그래도 동양의 가장 큰 축을 담당했던 중국에 대한 기술은 빠지지 않는 편이다. 일본도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사실 세계사에서 정말 작은 귀퉁이에 접혀 있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그동안 중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본은 우리가 우월했다고 믿어왔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그렇고 실질적인 경제/군사력 차이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균형은 깨져 있었다. 어쩌면 중국의 오랜 역사에 대한 학습은 오래전부터 이어졌지만 일본에 대한 기본적인 거부감으로 그들의 역사와 우리와의 관계 역시 너무 단소화한 것은 아닐까?
언제든 전쟁을 새로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는 이웃나라에 대해 너무 무지한 채 단순히 그들의 장점인 문화적인 면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가는 또다시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 있다 라는 걱정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일본 역시 국운이 많은 어려워지고 있다는 모습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무모한 도전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 역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인구수로는 압도적이다.
중구 산시성의 수도인 시안의 경우 1백만명이 넘는 인구를 자랑했는데, 그 당시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존재였다고한다. 이 책의 장점이 지도가 다수 삽입되어 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비교가 가능하다는 점인데 중국의 땅덩어리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참 크다.
-물론 지금 말썽 많은 지역은 중국의 것이 아니지만.
역사상 가장 큰 왕국은 13세기 몽골제국이다.
작은 말을 타고 재빠르게 이동하며 활을 쏘아 대는 전투전략은 중국인뿐 아니라 유럽인들도 경악에 빠뜨렸고, 심지어는 유럽 기사들의 쇠사슬 옷까지 뚫어버리는 화살의 강력한 역량은 그야말로 유럽을 휩쓸었다. 물론 요즘 들어 유럽지역의 경우 말그대로 휩쓸고 지나만 갔다는 우스개 소리도 한다. 지배를 원활히 하거나 역사적인 뿌리를 내리는 등의 실질적인 부분은 많이 약했기 때문이다.
몽골이 세계사에 획을 그은 두가지가 더 있다. 바로 교류의 확대로 무역로가 발달했다는 점과 중세의 어두움을 걷어낼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게 만든 흑사병이 그것이다.
항상 흥미를 끄는 전쟁의 역사는 영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미국독립전쟁과 미국의 남북전쟁이다. 두개의 커다란 전쟁의 궁극적인 이유는 결국 경제적인 문제가 사회적인 불만으로 확대되며 끝까지 해봐야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갈등으로 귀결된 케이스다. 모든 전쟁의 역사가 같은 이유의 반복이지만 이 두 전쟁에 관심이 가는 특별한 이유는 결국 내전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는 내전의 모습이 역사적 맥락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사건의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책에서 비중 있는 국가냐 아니냐의 문제이기에 좀 더 폭넓은 역사적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가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대륙은 사실 신대륙이 아니다.
그전부터 존재했던 공간이고 이미 아즈텍이나 마야 같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진 민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쌓아 놓은 화려한 유산들이 최신무기는 물론 처음 조우하게 된 전염병에 의해 산산조각나 역사의 흔적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일본의 경우도 내전은 아니지만 지금의 관점에서는 내전으로 복잡한 정치 형세를 만들어낸 바 있다.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몰아내면서 훗카이도를 1868년 귀속시키고 류 큐왕국도 1879년에 자국에 편입시키면서 아시아의 맹주임을 자신하게 된다.
무모한 자신감은 결국 자신들에게 커다란 재앙 두 방을 안겨주지만, 그 것만으로 그들이 행한 죄악을 면죄 받을 수는 없다.
종전기념일에 일본을 방문한 미국 퇴역군인에게 왜 당신들은 죄책감을 갖지 않느냐는 일본 할머니의 울부짖음은 왜곡된 역사 교육으로 또다시 자신들의 국민들을 비극으로 몰아넣는 정치인들의 악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에도의 인구수가 17세기말에 이미 1천 1백만명에 달해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오사카는 40만명, 교토가 35만명이라는 숫자는 놀라움을 넘어 그들이 세계전쟁을 치룰 수 있는 인구적인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지금 줄어만 가는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미래를 예견하는 숫자일 지도.
기분 좋게 두툼한 책은 세계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역사적 맥락을 다양하게 접근하는 일에 대한 중요성과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정규교육과정에서 모든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이런 출판물이 등장하면서 고정된 학습 커리큘럼을 벗어난 다양성에 대해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애독가라면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