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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스파이 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평점 :
완벽한 스파이 : 한 사람의 인간으로의 고뇌를 스파이 소설에 담다
007은 본의 아니게 스파이의 세계를 왜곡시킨 장본인이다.
매 편마다 등장하는 기상천외하고 특출 난 무기, 잘 빠진 신형 자동차.
그 뿐인가? 화려한 액션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스파이란 직업의 노스탤지어를 꿈꾸고, 멋진 본드걸과의 로맨스는 동경의 정점이다.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무시무시한 냉전시대에는 직접적인 대결을 차마 감행할 용기가 없다보니, 국지전과 더불어 치열한 정보전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경쟁을 한다.
지금이야 다 지난 일이지만, 아직 러시아가 많은 음모론을 생산해내고 있는 여러가지 정황들을 볼 때 스파이들의 활약과 암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은 기업 스파이들이 또다른 전장에서 피 말리는 첩보전을 감행하기도 한다.
007 영화에서 등장하는 화려한 생활이 실제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비참한 삶으로 굴곡지고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어제의 동지와 오늘의 정보원은 내일 나를 죽음으로 에워싸는 배신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해보라. 불안은 스파이를 잠식할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전직 스파이였던 저자는 이런 심리와 인간사 답게 엉뚱하게 꼬여버리는 사건들의 주마등을 글로 잘 표현해냈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리얼한 스파이물로 지지를 받고 있다.
1986년. 출간한지 16년이나 지난 존 르 카레의 "완벽한 스파이"가 그의 사후에 우리나라에 출판하게 된 사실은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즉각적이고 실제 현실에 기반을 둔 최근 장르소설에 비해 사골에서 우려 나오는 깊은 맛은 있겠지만 여러가지 사회의 환경과 모습이 많이 다르다 보니 제한적인 독자층에게만 어필할 수 있지 않을 까라는 우려도 든다.
두툼한 2권의 책으로 등장한 표지만으로도 존 르 카레의 팬들은 가슴 설레겠지만 말이다.
영국정보부 비밀요원인 매그너스 핌은 아버지 핌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런던에 간 후 사라져 버린다.
상사인 잭 브라더후드는 그를 찾지 위해 조사를 하던 중 매그너스가 체코 정보부의 이중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핌의 행방을 찾기 위해 브러더후드의 추적은 전처의 집을 뒤지고 아들의 학교를 찾아가는 등 집요했다.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가 들고나간 지부 번박스와 외교문서 전달카드 때문일까?
이 난리통에 감쪽같이 숨어버린 매그너스는 자신의 일을 글로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회고록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희대의 사기꾼 아버지, 사랑 없는 위장 결혼, 친구와의 재회와 죽음, 스파이라는 직업에 대한 먹먹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간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아들들은 어느덧 나이가 먹으면 자신의 거울에 비친 모습이 그와 많이 닮았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매그너스도 마찬가지였다. 왜 같은 길을 같은 모습으로 걷고 있는 걸까?
자유와 평화를 지킨다는 자부심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스파이기도 하지만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고뇌와 외로움. 그리고 막막함이 덮쳐오는 느낌일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오래된 배경이지만 생생한 현장감이 있는 소설이었다.
서술 시점이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들다 보니 중간 헷갈리게 만드는 부분이 읽기에 거슬리는 부분이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복잡한 설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는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긴장과 불안, 때로는 절망감에 의지할 곳 없는 스파이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는 모습에서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국가의 안전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살아있던 시대라 스파이의 자부심은 지금보다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흐르고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겉으로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지 언정, 어둠의 뒷면에서 치열한 정보전쟁을 치르고 있기에 스파이들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 필요악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정의로운 일이기를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