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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 부인 ㅣ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봉지 옮김 / 펭귄클래식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보바리 부인 : 19세기 프랑스 황홀한 사랑을 갈구하던 여인의 비극적 종말
고전을 읽는 일은 최근에 서점에 나온 신작 소설 읽기보다는 자세를 조금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작가들처럼 머리를 쥐어짜내며 한 줄 한 줄 읽어가거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같은 살인무기로도 쓰일 법한 거대한 책 크기인 경우도 있지만, 일단 오래된 고전적 말투와 시대상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독자들을 확보하고 다양한 번역과 에디션으로 등장하는 것은 읽을 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감동이 있고, 시대를 뛰어넘는 정신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페이퍼백을 연상시키는 가벼운 책 제본과 딱 봐도 펭귄이네!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 고전 소설의 풍미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레드 에디션의 맛이다. 외설과 예술을 넘나드는 당시의 쇼킹 작 6편을 7권에 담아낸 빨간 책 시리즈다.
서평단 모집에 응모를 하면서 여러 소설 중 2권을 고를 수 있었는데 영화로 본 적이 있던 "헨리와 준"과 "보바리 부인"을 선택했다.
워낙 유명한 소설들이지만 사실 한 번도 책장을 넘겨본 적이 없던 지라 겨울 밤 살짝 에로티시즘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랑스의 독특한 국가적 문화와 배경, 그리고 사상은 영미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교과과정 탓에 항상 이질감과 동시에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
보바리 부인 역시 19세기 프랑스의 모습과 가치관, 그리고 애정이라는 흥미로운 배경을 책장을 넘겨가며 즐길 수 있었다.
지금과 비교했을 때 과거의 욕망이 작았을까?
어쩌면 유교사상에 꽁꽁 숨겨져 있던 한국의 성의식이 21세기 접어들며 개방적이고 적극적이 된 지금의 수준이라면, 19세기의 프랑스도 은밀하지만 비슷한 발랄함을 가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유럽 쪽의 성의식은 과거부터 워낙 화려했으니 말이다.
작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출간할 당시 외설죄로 기소되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실존인물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고 있고, 간통을 미화 한 부분으로 불과 수십년전 대한민국 남성들의 시선과 비슷한 수준의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주인공인 엠마는 매력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사랑을 늘 갈망하는 여인이다. 답답한 시골 농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샤를 보바리와의 결혼을 선택하였고,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책에서 보던 황홀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결혼식 날부터 그녀가 원하던 모습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생활은 그녀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심심하고 우울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도가 지나쳐지며 남편을 원망하고 욕하던 엠마는 결국 정신질환까지 얻게 될 정도로 환상과 현실 사이의 먼 벽 속에 갇혀버렸고, 큰 병원이 있는 루앙으로 이사가게 된다.
그런데 운명은 그런 것이다. 저잣거리 여인들에게 싫증을 내던 로돌프를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도 엠마에게 매력을 느끼고 열렬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에게 더욱 집착하게 되고 부담스러워지자 어느 날 불쑥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나 버린다.
엠마의 절망감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영원히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 답게 과거의 인물인 레옹이 나타났다. 하지만 결과는 계속 파국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도대체 그녀는 왜 이렇게 황홀하고 환상적인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을까?
어려서 읽었던 로맨틱 소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어 행복한 사랑에 빠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서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과거의 바램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고 결국은 남자에 집착하며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되고 만다.
그녀는 단순히 사랑이라는 광기에 사로잡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여인이었을까?
남편 샤를이 상대 남자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는 과정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엠마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자,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부분은 그렇다면 엠마는 그저 성적인 욕망에 쌓인 여인이었을 뿐인가? 시대적으로 19세기 프랑스와 21세기 대한민국의 사이에는 어떤 성적인 욕망을 가로막는 벽이 사회에 존재하고, 구성원들은 어떻게 극복하려 할까? 본인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보바리 부인은 저속하고 음란하다고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 성에 대한 관념과 절제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옳은 일인가?
시대를 앞서갔던 작가의 잔인한 질문이 세월을 훌쩍 넘어 현재의 우리에게도 공감을 받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