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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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살의 : 기억이 사라지는 살인자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소설은 좀 끊자고 다짐한 적이 몇 번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위는 항상 높아져만 가고,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지금부터 내가 읽는 이야기는 나중에 반전을 위한 떡밥이니 믿지 말자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해서 결심을 하고자 했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너 지금부터 고생 제대로 할 텐데 막판에 반전이 일어나서 다른 삶을 살게 될 꺼야라고 누가 이야기해준다면 인생 살아가는 묘미가 사라져버릴 테니까.
그럼에도 서점에 들르면 기웃거리는 코너는 미스터리 코너, 서평이나 책 광고 섹션도 동일한 도서들. 맨날 속으면서도 속는 재미로 보게 되는 소설이다.
“유리의 살의”는 그에 반해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게 시작하고 평이하게 흘러간다.
다만 단기 기억 상실이라는 의외의 변수가 들어간 스토리이지만, 이런 주제는 과거에도 자주 쓰이던 소재이다.
놀란 감독의 대단한 영화 “메멘토”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단기 기억상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요한 컨셉으로 처음 만난 영화였다. 많이들 보셨으리라. 시간이 조금만 지나가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기에 몸에 문신을 새겨 넣어 기억을 저장한다. 영화의 시간적 흐름을 Backward시켜 과거로 진행시키는 구성이다 보니 두가지의 조화는 복잡하지만 관람객의 두뇌 회전을 두배 빨기 감게 만드는 처음 경험하는 희열을 만들어 냈다.
헨리 구스타브 몰레이슨의 유명한 의학적 사례를 참고하여 제작했으리라. 몰레이슨이라는 사람은 뇌전증을 치료받기 위해 해마 절제 수술을 받게 되는데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나 치료가 되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수술 전의 기억은 모두 정상적으로 하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단기적으로 생성되고 사라지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기억하지만 특정 시간 대 이후에는 계속 오늘 했던 일을 망각하는 일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고바야시 야스미는 “분리된 기억의 세계”라는 소설에서 전 인류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닥칠 재앙을 외부 메모리 카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적 파국을 써 내려갔다.  



오늘 소개하는 야키요시 리카코의 “유리의 살의”는 같은 주제의 배경을 극히 한정된 공간으로 이동시키고 뻔한 주제이지만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사건을 끌어간다.
주인공 마유코도 앞서 이야기한 단기 기억상실의 덫에 빠진 환자다.
그녀는 스무 살 무렵부터 이 병을 앓기 시작했는데 끔찍하게도 동행하던 부모님이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던 미치광이에게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본인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가다 교통사고로 정신이 끊기며 비극이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끔찍한 살인의 현장이 서술된다. 대담하게도 피가 낭자한 현장에서 경찰에 신고하여 살인사건을 알리는 사람은 살인자 자신이다. 물론 예상하 듯 주인공인 마유코다. 그런데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신고를 하는 이유는 또한 자신이 저지른 일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면이 바뀌면 마유코는 지금 내가 누워있는 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갑자기 왜 이 자리에 와있는지 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누구인지 의심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등학생 신분의 그녀의 거울 모습은 40세를 넘긴 중년 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는 마유코의 질문에 정체 모를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응대한다. 그녀의 기억은 교통사고를 넘어 더 어린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물론 이 상태도 오래가지 않고 다시 기억은 리셋 된다. 어 여기는 병원, 앞의 사람들은 누구? 무한 반복이다.



정황상 살인자가 마유코라는 사실은 확실하다고 생각되고, 살해당한 사람이 바로 마유코의 부모님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동기도 분명하다. 문제는 기억이 자꾸 리셋 되다 보니 수사를 어떻게 해야할지 자백은 받아낼 수 있을지 곤란한 상황이다. 마유코의 가족을 찾았더니 놀랍게도 남편은 마유코가 도망가다 교통사고를 나게 만난 장본인인 운전자다. 기자였던 남편 미츠하루는 기자출신인데, 취재하던 정치인의 뒤를 급하게 밟다 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 꽤나 강직한 기자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는 피해자에 대한 연민인지 죄책감인지 그녀와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 기억을 잊고 기본적인 생활도 도와줘야 하는 환자인 아내를 보호하고 가족이 된다. 꽤나 잘나가던 기자라는 직업 캐리어도 풍지박산. 헌신이라고 하기에도 죄책감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다.
매번 현재의 상황에 대해 알려줘야 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는 어려움은 누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노트나 이메일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부부는 현재 상황을 다시 돌아온 기억의 주인공이 인지할 수 있게 활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마유코는 살인자에 대한 복수심을 어떻게 자제하거나 기억하거나 용서하거나 복수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독자는 이 대목에서 여러가지 가설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작가라면 반전의 트릭을 어느 시점에 심어 놓을까?
평이한 작가의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따라갈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 팬들은 순수하지 못하다. 여기에는 나중에 우리를 골려 먹을 복선이 몇 개씩 깔려 있을 꺼야. 복잡한 생각을 해보지만 쉬운 문체와 스토리 전개로 페이지는 자알~ 넘어간다.

물론 반전은 미스터리의 기본, 당신은 어떤 트릭을 예상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독자들끼리 키득거리며 책을 넘겨가는 묘미가 미스터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구나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었다. 매력적인 주인공의 커버가 책을 읽는 내내 상상력을 배가 시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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