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 읽다 보니 통쾌한데 뭔가 찜찜함
 
일탈하고 싶을 때가 있어.
나이 먹고 뭔 헛소리냐고 누군가와 술 한잔 기울이며 꺼냈다가는 바로 날라올 말.
요즘 회사에서 무척 안 좋은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몇주째 순간 순간 뇌를 정적 속을 감아버리는 스트레스가 있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고 그냥 사고가 나고 책임자라는 이유로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 있다. 위법한 일은 아니니 법적인 책임을 지거나 경제적인 손실이 나지도 않고 회사에서도 딱히 욕먹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 이전에 한 개인으로는 부담되는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하고 조금 꼬이면 일을 해결하는데 3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
2021년이 되야 해결되는 일.
몇 년 전 더 안 좋았던 일로 1년간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 젠장.
그때는 회사 사택 뒷 베란다에서 한숨을 쉬며 담배를 벅벅 피워 댔고, 나이가 먹고 또 같은 상황인데, 담배는 끊었다. 술도 끊었는데 뭘로 버틸 수 있지?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혈압계의 숫자판이 날뛰는 날이 있다. 회사에서 지나가는 누구가를 붙잡고 쌍욕 짓거리를 해서 스트레스를 풀 수만 있다면 그래 볼까? 돈을 주고서라도 난폭한 섹스라도 즐긴다면 3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쏜 살처럼 지나버릴까
 
두통이 심각해지면 상상력은 과대해져서 기괴한 모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천사가 지상으로 내려와서 야구단에 입단한다는 생각같이 말이다. 게다가 이 바보같은 천사는 재미 한 번 보려다 날개를 잘려 버린다. 천사를 믿고 누군가가 내기를 걸었다면 참 낭패였을 거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가 꾸며낸다면 지독한 삶의 무게에 지쳐 무기력증에 걸렸거나 술주정뱅이 아니 마약중독자일지도 모른다. 말도 안되는 스토리를 신문사나 잡지사 아니 출판사에 들이민다면 문전 박대를 당하고 말겠지.
그리고 누가 누더기 같은 상상력의 결과물을 돈 내고 읽고 싶겠는가? 차라리 구걸을 솔직하게 원했다면 적선이라도 했겠다.
소심한 성격은 글을 쓰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 더러운 욕설과 난교가 난무하는 장면을 고귀한 원고지에 옮겨 적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눈 앞에 여자가 있고 눈 뒤에 동성애자가 눈을 희번덕거리는 모습을 글로 표현한다면 독자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난 고귀한 작가이고 싶고 고귀한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
 
찰스 부코스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바로 주먹을 들었을 텐데, 찰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작가 지망생을 두들겨 패다 지쳐 술이나 먹고 여관방을 뒹굴고 있다면 장면을 목격한 누군가가 이걸 또 글이라고 싸대겠지. 그래도 기분은 째지겠다.
 
제발 글을 쓸 때는 약 취한 사람처럼 쓰지 말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란 말이다. 아니면 달나라 여행에 대한 SF를 자세를 잡고서 써보던가.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통쾌해지는 이유는 모르겠다. 자신의 마음 속에 쌓여 있는 배설물을 독자들에게 강제로 먹이는 쾌감은 작가만이 느낄 수 있는 사실을 인정하자니 뭔가 독자로서는 억울하지만.
그러다 보면 다시 욕설과 폭력과 음란과 상상이 뒤섞여 감기약 먹고 침대에서 헤롱댈 때처럼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고 머리는 뱅뱅 돌아간다.
시인이라면서 왜 이런 단어를 써대는거야. 그런데 말야, 그게 이 양반의 극단적인 장점이라니까.
어린 시절의 우울함이 인생을 이렇게 망칠 수 있다고 귀 띰을 해준다. -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선생님.
세상이 이렇게 혼돈스러운 미국이야. 거침없이 세상을 표현하고 내 꿈 속의 이야기와 마음 속에 있는 울분을 토해내는 거니 나는 기분 좋아. - 진짜 뽕가시겠네요.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이 들려주는 불합리한 일들은 요즘도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찰이 무고한 흑인을 죽음으로 모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
, 모르겠다. 책을 읽어가며 낄낄거리고는 있는데 Beatles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배경음악으로 필요하다고 씨디랙을 뒤지고 있는 나 자신이 발견된다. 책 리뷰를 이렇게 써도 되는 이 놈의 비망록은 매끈한 책표지의 보드랍고 야릇한 촉감처럼 신난다.
 
호밀빵 햄 샌드위치의 표지를 보면 야생의 말이 제멋대로 들판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미지 검색으로 작가를 뒤져보면 진짜 혼자 신나서 세상 사는 사람 같다
우리는 알고 있다.
저런 웃음 짓는 사람 치고 과거에 행복한 기억이 없었다는 사실을. 술과 쾌락과 혼동의 생각들은 자신을 위한 치료제임을
사랑에 대햐여, 고양이에 대하여. 이번 달 구매할 책 목록에 두 권이 슬금슬금 목록을 차지하려고 고개를 내민다.
시작 페이지의 불편함이 마지막 페이지의 시원함으로 변하는 경험 = 요즘 스트레스 정도는 현란한 상상의 나래로 털어낼 수도 있다는 즐거움을 가져보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열심히 읽고 써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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