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하는 마음 - 제7회 스토리공모전 대상 수상작
전우진 지음 / 마카롱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관통하는 마음 : 명랑만화같은 이야기 + 따뜻한 시선 + 생활형 환타지
 
근 6개월 정도 휴일 날 빈둥거릴 때 자주 하는 짓이 유튜브로 영화 리뷰보기이다.
영화보기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좋아하지만, 한동안 극장도 못 가고 집에서 블루레이를 보기 어려운 상황 되다 보니 유튜브에서 리뷰들을 보기 시작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결말까지 보여주는 동영상은 패스해야하지만, 덜 알려진, 돈 내고 구해서 볼 생각 없는, 인지도 없는 - 이런 영화들을 결말까지 끝내자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중독.
영화로 보면 지루할 지도 모르는 작품의 감상을 10~20분내로 끝내는 장점이 있다 보니 자꾸 채널을 뒤지게 된다. 물론 "트라이앵글" 같은 영화는 리뷰가 너무 좋아 본편을 구해 보았는데 그냥 리뷰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기분좋은건 영화도 참 많이 세상에 선을 보이지만 하나같이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의 놀라움이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평범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엮어내다니, 조용하지만 생각을 던져 주는 이야기야...
하루키 소설을 처음 접할 때 평상시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어 현란한 이야기꾼의 포장을 보고 놀라는 느낌 비슷하다.
"관통하는 마음"이란 소설도 괘를 같이 하는 소설이다.
평범함 일상을 인상깊은 관찰력과 경험없이는 빼낼 수 없는 에피소드까지 버무려 꽤나 근사한 한 끼의 식사를 만들어낸 느낌이랄까.
50살이 넘어간 중년여성의 추억과 현실의 경계선,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과 이웃과의 관계들... 물론 작가들이야 글을 써가기 위해 가상의 주인공들과 유사한 인물들과 인터뷰를 하고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겠지만 너무 리얼한 묘사에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곤 했다.
가볍지만 배꼽을 잡는 상황을 연출시키고 묘사하는 필체 역시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교보문고의 스토리공모전 대상이라는 꽤 근사한 타이틀이 어울린다.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한 명이 그러했듯, 영화산업에 몸 담다 경제사정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이 때의 경험이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든다면 일상 속에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화와 그 안에 숨어있는 생활형 환타지가 잘 버무려 질 것으로 기대된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가 오버랩된다.

주인공 정숙씨는 안성의 한적한 동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장님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비밀이 하나 있다. 이 비밀은 오로지 그녀의 딸 주영만 알고 있다. 손바닥을 송곳같은 날카로운 물체로 관통시키면 15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초능력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가는 설정이 아니라 아예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다. 따라서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15분 전의 세계로 돌아가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빙고! 15분이면 충분하다. 바로 로또방을 가게 되면 일생을 평온하게 살 수 있을지니! 정숙씨도 같은 생각을 했다. 아아아.......
가끔 안좋은 일이 있을 때 과거의 한순간 어떤 행동만 내가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결과는 달라졌을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제 그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면 오늘 스마트폰을 깨먹는 일은 없었을거야...이런 식으로. 하지만 정숙씨라면 15분 내에 과거로 돌아가기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니 부럽기 짝이 없는 능력이다. 다만 통증을 피할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서 손바닥이 멀쩡해지더라도 송곳으로 찔린 통증은 끔찍 할 정도로 남아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통증은 딸에게도 전달되어 남아있다. 주영도 예외적으로 과거를 거슬러가는 기억까지도 가지고 있다. 엄마와 딸이라서 그런걸까.
하지만, 이 능력을 가지고 정숙씨는 크게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온 삶이 특별히 복잡하게 꼬이거나 절망에 빠질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조력자인 남편은 무난하고 무던하고 조용한 타입의 남자라 지루하지만 걱정거리를 몰고 다니거나 사고를 치지는 않는 점이 정숙씨에게는 소소한 행복의 근원이다. (삐졌다가도 술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해맑아지는 근배씨는 어쩌면 세상 남자들의 공통분모일 지도.)
하지만 이 정도 초능력을 그냥 놔둔다면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사심이 듬뿍 들은 아르바이트 면접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재미있는 반전을 이끌어낸다. 나이 차가 30년이 훌쩍 넘는 박보검의 이미지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 떠다닌 성재라는 친구가 등장한다.

스토리가 가지는 힘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동안 그 많은 타임슬립물들을 영화나 소설을 통해 접했지만 이토록 유쾌한 소설은 처음이었다. 의외로 빠르게 책장을 넘겨도 페이지가 늦게 줄어드는 약간은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잔잔한 에피소드들과 곳곳에 묻어나는 생활의 웃음들은 책 읽기의 묘미를 더해준다. 대사를 다닥 다닥 붙여 쓰는 형식이 누가 이야기하는거지? 약간 애매하게 만드는 단점도 있지만 이야기가 벌어지는 안성이라는 -외딴 시골이라는 설정의 -장소의 촌스러운 요소들이 강조되며 생활 속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 쓴 느낌도 살려주는 독특함이 있다. 

특수요원이나 경제전문가도 아닌 동네 아줌마의 15분 타임슬립에서 무슨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막상 생각해보면 쉽지 않다. 그만큼 한정된 모험이 될 수 밖에 없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작가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공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박연선 작가의 유쾌한 호러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을 읽고 느꼈던 재미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