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대중의 영역이고, 꿈은 개인의 신화이다.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의 저자인 조지프 캠벨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다.
대중은 현세의 희망을 찾기 위해 또는 미래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신화를 또다른 세계로 연결하고 후대에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 각자 오늘의 불안을 잠재우고 미래의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신화로서 자아를 만들어 낸다.
잡스나 게이츠는 개인적인 신화를 현실화시킨 대표적인 자타공인 오늘날의 영웅 아닌가? 21세기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신화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책은 놀랍게도 1958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에서 개최되었던 쿠퍼유니언 포럼이라는 강연 내용을 엮었다. 무려 50년된 책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저자인 조지프 캠벨 역시 한 세대 앞선 사람으로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의 가면 1~4권"이 그의 저서이다.
어린 시절 인디언의 민담을 좋아했던 그는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많은 주제가 인디언 민담의 기본 주제와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양한 나라의 신화들의 원전에 대해 연구하며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알려지며 그야말로 "신화적"인 존재가 된 인물이다.
신화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의 출판계를 보면 지금까지 신화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만화책으로 읽게 되어 다양한 신들의 역할과 그들의 역사를 알게 된다는 사실은 인문적 교양을 쌓는다는 면에서 중요한 동시에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공부할 때 그들의 근간을 이루는 사고의 원천을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과학을 신봉하는 서구인들의 모든 인간적인 활동에 기독교에 뿌리를 둔 사고방식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과 경쟁하고 협력하기 위해서 우리와는 다른 신화적 이해와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 서와 같이 본격적으로 신화들의 원형을 살펴보며, 각 나라별 특징과 공통점들을 큰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도서가 오랜 세월이 흐른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인다는 점은 복잡한 현대세상에서 과거의 지혜를 빌려 미래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서두, 즉 첫번째 강연 이야기에서 저자는 과학의 시대에 있어 신화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음식점에서 과학을 옹호하는 아이와 신화(또는 종교)를 옹호하는 엄마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신화의 해석이 필요한 과학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뼈가 발견되었다. 과학적 증명으로 신화와 종교는 허구라고 단언할 수 있는 시대에 어쩌면 과학과 신화의 공통점과 긍정적 상호작용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전파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런 작동을 위해 심리학을 끌어들여 집단의 꿈으로서 신화를 해석하고자 한다.
신화 자체만 놓고 보면 허구의 사실이지만 보편적 인간이 상상하는 결과물로 신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학이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보이는 것만 믿겠다는 사상들이 힘을 얻더라도 우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미래에서 다가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고 신화를 통해 새롭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기댈 만한 어떤 존재를 이미자 화하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을 깨닫는 유일한 동물이기에 희망의 끈이라도 없다면 매일 불면증의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 모든 인종이나 종교에서 공통된 양식과 사건들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인간의 상상력의 범위와 그 안에서 파생되는 불안을 극복하는 방식, 그리고 내가 아닌 남의 것이라도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토대로 보다 견고해지는 믿음을 갖고 싶은 욕망이 나타난다.
기독교에서 에덴동산에 등장하는 선악과 나무와 뱀이 불교에서는 세계수 나무와 뱀으로 나타나는 사례와 같이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닌 정신의 사실을 표현하는 신화의 상상력과 전파력은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연관을 맺고 때로는 가지치기하며 풍성한 신화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다만 신화의 탄생과 발전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동서양은 다른 길을 걷는 점은 피할 수 없다. 거리적 차이라기 보다는 사고방식의 차이인 동시에 생활과 신앙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오랜 시간과 무력 충돌 같은 분리제가 작용하였다. 사회구성원의 생각과 이념, 그리고 행동양식이 커다란 차이로 갈라진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알 듯 개인의 자아실현과 자기만의 개성을 중심으로 성장한 서양과 국가라는 전제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제어되고 충과 효라는 이념같이 욕망을 자제하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동양의 신화 세계는 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직접 나서서 인간에게 벌을 내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서양인의 신은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고 해탈을 권하는 동양의 선인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자는 이런 측면을 고려하여 신화가 갖는 의미를 찾고자 한다. 신화의 차이가 어떻게 문화의 차이로 이어지고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들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삶의 녹이는가에 대한 본질에 대해 살피고 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의 발달이 세대를 거치며 어떻게 신화와 함께 성장해왔는가를 강조하며 물질주의 속에 피폐해지는 현대인이 추구해야할 정신적 방향성을 독자와 나누려 하고 있다.
신화나 종교는 세상이 혼란스럽고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더욱 활성화되며 동시에 개인의 사익이 결합된 유사종교까지 유행하게 된다. 팬데믹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고통과 걱정 속에 2020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일부 종교의 부적절한 행위가 바이러스를 오히려 확산시키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현실에서 종교와 정치를 혼돈하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의 일탈이 왜 혼돈 속에 더 악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는지 신화가 우리에게 주었던 교훈들 중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망원경으로 바라본 달을 보고 “신이 만든 달”이 더 좋다는 노부인의 말처럼 세상이 흘러가는 바를 부정하며 종교라는 아집에 갇혀 혹세무민을 시도하는 이가 있다면 뜻을 같이하고 대중의 꿈으로서 신화가 되리라고 공감할 사람들은 몇 몇에 불과할 수 밖에. 아니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거짓과 위선의 발견이야 말로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신화를 후세에 전달하고자 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