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종말 : 종말이라는 칼로 위협하며 과학 지식을 주입하는 나쁜 책
"멸종"이라는 소설이 있다.
(로버트 J. 소여) 타임슬립류 SF소설인데 과거로 돌아가 공룡이 왜 멸망했는가를 밝혀내는 모험 스토리. 결론에 이르면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종말의 이유가 실체를 드러내며 기발한 전개에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허탈감에도 빠지게 된다. "공룡과 춤을"이라는 다소 어이없는 제목을 바꾸어 재 출판되었기에 SF 소설 애호가라면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공룡이라는 존재의 발견은 종교인들에게는 재앙이었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지구의 역사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기회인 동시에 육지를 평정했던 그들의 갑작스러운 종말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대다수의 우리들은 운석이나 소행성의 충돌로 인한 지구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앞서 이야기한 소설처럼 전혀 뜻밖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공룡에 집착하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은 어쩌면 우리도 종말이라는 상황에 부딪힐지 모른다는 절박감이 무의식의 바다에서 떠다니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 가까이서 같이 호흡하고 같은 시간을 보내는 생명들의 존재를 다 알지도 못한 채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가이아라는 커다란 지구의 생명체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상호작용하며 목적은 다르지만 행동은 같은 공생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어떤 존재는 공생의 대가가 악몽으로 끝나는 악연이지만 뜻밖의 역할이 우리를 보호해주는 무엇인가도 존재한다. 같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것들이 종말을 맺게 될 때 혹시라도 내가 장난삼아 한 행동의 결과로 그들이 멸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닐까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두려움에 휩싸였다.
영화적 상상력에서 지구가 멸망하는 방법은 100개는 앉은 자리에서 족히 채울 수 있다.
외계인의 습격, 빙하시대의 도래, 태양의 흑점 폭발, 좀비 바이러스, 기상이변.
그런데 잠깐 들여다보니 과학적으로 가능성이 몇 %나 될까 고찰해 볼만한 이슈들이다. 충분히 과학적 검토가 가능하다.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할 상황이라면 우리의 표정은 좀 더 진지해지지 않을까?
"거의 모든 것의 종말"은 우주에서 일어났던 대격변들과 지구의 대격변, 그리고 미래의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다양한 원인으로 우리는 하루아침에 존재를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협박하며 과학적 지식을 차곡차곡 강제 주입하는 흐뭇한 책이다.
우주가 점점 팽창하고 있다는 허블의 이야기에 많은 과학자들이 비웃음을 던졌지만 지금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도입부에서 굉장히 와 닿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있는 모든 장소가 태초에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다. 바로 내가 숨쉬는 대한민국 서울이 빅뱅이 이루어진 바로 그 장소라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빅뱅은 최소한의 무엇인가가 폭발적인 공간확장을 이룬 것이며 사실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신에 의한 결정이든 알 수 없는 과학의 법칙이든 2020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근본이 빅뱅이며, 기적 같은 태초의 시작은 한순간의 종말로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한다. 다스베이더가 손가락 하나로 행성을 날리듯이.
1부에서는 우주의 대격변을 설명한다. 빅뱅부터 시작하여 은하계가 충돌할지 모른다는 걱정거리를 하나 보태 주고, 반물질과 이웃 은하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우주의 격변들은 사실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일지 모르겠지만 그 파급력은 인류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강한 파괴적인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 어려움에 봉착한 2020년의 지구인들에게는 그나마 작은 안도감이라도 될 수 있을 정도 아닐까?
2부는 좀 더 가까운 지구의 이야기다.
공룡이 멸망하고 코로나 이전 최악의 팬더믹이었던 스페인 독감 (왜 스페인 독감인지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됐다, 지역의 이름이 이토록 무서운 선입견을 남길 줄이야.), 그리고 코로나에서도 문제가 되는 사이토카인 폭풍이라는 극단적인 면역반응의 위험성도 엿볼 수 있었다. 상시 존재하는 군사적 위험인 동시에 태풍만 와도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생활형 위험이 되어버린 핵에 대한 내용, 하늘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재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부는 어쩌면 우리에게 최악의 종말을 가져올지 모르는 안드로메다와 은하의 충돌을 다르고 있는데 별이나 행성끼리 충돌할 가능성보다는 거대한 은하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놀라운 상황이다. 물론 미안하게 저자의 의도와 달리 먼 나라이 이야기로 느껴 지기도 한다. 40억년후면....(그때 그 광경을 볼 수 있더라면 종말해도 별로 억울하지는 않다.) 마지막 챕터에서 지구의 생명체는 태양이 모든 것을 쥐고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평상시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마무리 짓고 있다.
작년에 본 최고의 드라마였던 "체르노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간의 작은 실수가 커다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만들었고, 목숨을 받치는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차가운 물로 원자로 내부를 식히면 해결된다고 주장한 디아틀로프의 판단은 그 자신은 물론 수많은 죽음을 가져온 재앙이었고, 소련이라는 세계 초강대국이 사라지는데 기여할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은 앞으로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무서운 종말의 한토막이다.
우리가 이루어 놓은 놀라운 문명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수많은 생명체들의 삶의 본능을 거스르며 이룩했던 일들, 그리고 정의가 세상에 있다고 스스로 희생하며 지켜왔던 신념들. 이 모든 것들이 100km짜리 운석 하나로 인해 한순간에 멸종의 단계로 접어든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의 개체가 멸망한 후의 세상을 걱정하며 종교에 귀의하는 것일까?
미리 준비하고 노력해서 피할 수 있는 멸망의 솔루션이 있다면 어서 빨리 만들어 달라는 외침을 허공에 대고, 아니 과학자들에 대고 소리쳐야 하겠다.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