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행
호시노 도모유키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인간은행 : 기묘한 이야기에 푹 빠졌는데 기분은 이상하게 별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Clockwork Orange"의 도입부는 다리 밑 으쓱한 공간에서 돈 몇 푼 적선을 부탁하는 나이많은 노숙자를 악동무리들이 놀려먹다가 잔인할 정도로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다. 헐리웃 영화만 감상하다가 동네 비디오샵에서는 큐브릭을 만날 수 없어 홍대 앞 시네테크라는 샵에서 조잡한 복사판 비디오로 빌려본 첫번째 문제작이었다. 그런만큼 이 장면이 준 충격적인 여운은 시간이 꽤나 흘렀음에도 강렬하다.
노부모를 산에 버리는 소위 "고려장"은 우리나라의 악습이 아니라 사실 일본인들이 강점시대에 퍼뜨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우바스테야마(姥捨て山)"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어이 없다. 
코로나가 확산되며 일부러 고령층을 방치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 펴졌던 사례를 봐도 그들이 늙어가는 일본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으며 과거의 잔인했던 풍습이 아직도 내면 속에 내재되어 있는 거 아니야?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부모는 버려도 아이는 버릴 수 없다는 통설을 보기좋게 깨버리는 "마비키(まびき)"를 봐도....

총 11편의 단편 모음집인 "인간은행"의 첫번째를 장식한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라는 단편은 고령층에 대한 일본이들의 고민이 묻어는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오랜 아버지 병치래에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변변한 직업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정부보조금으로 근근히 살아간다. 프리랜서 기자라는 타이틀이 달려있지만 그야말로 허울만 있는 직업이다. "오랜 간병에 효자없다"라는 말처럼, 주인공은 아버지가 빨리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군다나 심한 치매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자식을 괴롭히면서도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죽지못해 산다'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려있던 전단지에 눈길을 준다. 매력적인 제안이다. 단 돈 10만원만 초기에 납입하면 노인들을 돌보아준다는 서비스 업체의 광고였다. 면회가 제한되는 등 이상한 면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솔깃한 제안이다. 그래도 명색이 기자라고 여기에는 무슨 음모같은 것이 숨어있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이 정체불명의 서비스 회사에 잠입하기로 마음 먹는다. 제대로 잡입만 한다면 그들의 실체를 파악한 후 다시 모셔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럴 리 없겠지만 제대로 돌아가는 복지사업이라면 그대로 위탁해도 좋을 일이다.
물론 우리가 예상하 듯 주인공의 판단은 어리숙한 것이다. 잠입 초기부터 그들에게 꼬리가 밟혔고, 에코화라는 미명하에 노인들은 무기력하게 사료화되는 충격적인 사실이 큰 입을 벌린 채 진실을 드러낸다.
고령화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국가와 개인 모두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게 맞나?
예전에 일본을 가리켜 나라는 잘 살지만 국민들은 못사는 선진국이라고 비웃은 적이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임에도 국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한다는 아이러니가 가득찬 세상이었다. 거대했던 일본을 잘 하면 엎어치기로 누를 수 있다는 희망이 슬금 머리를 드는 요즘 우리는 어떠한가? 기업은 살찌고 노동자는 궁핍하고 나라는 세계 10위권에 육박했지만 자영업자가 가득 찬 국가가 되었다. 유래없는 급격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지만 사회적 안전망은 전무하여 OECD국가중 노인빈곤율 43.8%로  불명예스러운 1위에 랭크된 대한민국은 어떻게 그들을 보호하고 관리할 셈인지?  충격적인 내용의 소설이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지만 제발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에 반영되는 불상사가 없었으면 한다.
인간의 노동력이 무한하게 공급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마지막 한 즙까지 노동력을 뽑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회적인 시스템으로 구조화시킬 수 있을까? 일본사회의 무너지는 노동시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버린 "프리티 족"이 어떻게 악화되면서 사회구조를 흔들지에 대한 우려가 잘 나타내는 단편이 책 제목과 같은 "인간은행"이다. 노예처럼 사람이 화폐의 역할을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돈에 대한 걱정, 내일에 대한 걱정없이 하루를 근근히 먹고 사는데만 집중하게 되는 사회는 그야말로 국가의 재앙이다. 그러나 손쓰기 어려운 현재의 일본 상황을 보면 젊은이들에게 비전과 일자리, 그리고 이유를 제공하는 사회적인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한다는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도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노벨 문학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를 잇는 유망한 젊은 소설가로 평가받은 저자 호시노 도모유키는 "몽상"과 "상상력"을 적절하게 잘 섞는 작가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일본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예리하게 파고들며 과장된 언어로 풍자를 하면서도 문신 대신 몸에서 자라는 식물이라는 기묘하면서도 상상력 풍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다. 날카로움과 유머의 적재적소 배치라는 지혜로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모미 쵸아요"같은 소설에서는 한국에서의 경험담을 꺼내들며 우리나라와 우리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다루는 색다른 모습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두운 면들을 이야기거리로 잘 골라내고 예리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단편소설들은 미드 "환상특급"이나 일드 "기묘한 이야기"와 닮아있다. 단편이 주는 제한적인 무대 위에서 통렬한 한가지 주제에 대한 비판과 비꼼은 작가적인 완성도를 기반으로 가능한 일이다. 특히나 한 권에 묶인 단편들이 하나의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에 대한 증거일 수도 있다. 작가의 책이 3권 정도 국내에 소개된 거 같은데 의외로 신간도 없고 평가도 썩 좋지는 않다. (구매가능한 소설은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 한  권 뿐.) 이 역시 단편소설집에서 느낀 독자들의 흥분에 찬 물을 끼얹는 현실이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오레오레"와 "밤은 끝나지 않는다"가 번역되거나 재출간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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