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숨어 있는 생명의 기원
엘리자베스 M. 토마스 지음, 정진관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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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숨어 있는 생명의 기원 :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축복받는 자연사와 만나는 시간


당신의 고양이는 "그"입니까, "그녀"입니까.
관점을 바꾼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자만 조금만 신경 쓰거나 확신의 계기가 있을 경우에는 쉽게 변할 수도 있다. 우리는 동물들을 부를 때 보통 "그것(it)"이란 표현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것은 무생물에 쓰는 말이다. 우리가 집에서 식구처럼 기르는 애완동물이나 바다나 육지를 활보하는 수많은 동물들도 자신들의 세계에서는 진화의 정점에 오르는 "위대한 창조물"인 동시에 존중받을 권리도 있다. 그런데 무생물에나 붙이는 대명사 그것(it)"을 붙인다는 사실은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저자의 지적은 어색하지만 수긍이 된다. 옆집 고양이 낸시, 그녀는.... 옆집 고양이, 그건. 뉘앙스가 분명 다르다. (팔에 붙어있는 그녀는 내 피를 쪽 쪽 빨아먹고 있어 한 방에 찰싹하고 죽였다. 라는 문장은 그래도 어색하긴 하다, 곤충은 제외하자.)
인간은 진화의 사다리 최상층에 놓여있다고 거들먹거리지만, 그 사다리를 세운 건 누구인가? 바로 우리 자신 아닌가? 가이아 - 대 지구 -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그들 사다리에서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쬐거나 물 밑에 살 수 없고, 빙하나 다른 생명체 안에서도 살아갈 수 없다. 거미줄을 만들거나 적을 향해 내뿜을 수 있는 독소를 만들지도 못한다. 뜀박질을 잘하는가, 멀리 볼 수 있는가, 하늘을 나를 수 있는가?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몇 가지 흉내는 내겠지.
첫번째 챕터부터 저자는 개인적으로는 꽤나 묵직하게 생각할 단초를 던져준 셈이다. 그리고 책장을 넘겨가며 가이아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이 저마다의 존엄과 생존의 이유를 갖고 살아가고 있으며 작은 개체수의 인간은 더이상 자뻑하지 말고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당연한 압박감에 -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재활용 쓰레기라도 잘 구분해야 한다는 자잘한 능력에 실망하게 되리라.
가이아 이론은 영국과학자인 제임스 러브룩(James Lovelock)의 이론으로 지구는 물리적인 행성이기도 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에게 의존하고 진화하는 살아있는 지구라는 이론이다. 과학적 명제라기 보다는 생태학, 지질학 등 여러가지 과학적 학문들이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지구 생태계를 묶어서 볼 수 있는 컨셉 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그 안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가는 인간은 자만하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목적의식도 내포되어 있다. 이 책은 이런 가이아 이론의 관점에서 지구의 생명체들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과학적 이론들을 서술해나간 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해 미생물, 원생생물, 진균류로 진행되고, 바다의 생명체에서 진화하여 민물에 익숙해지며 뭍으로 올라오고 척추동물이 등장하는 다른 지구의 역사책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내용이지만 생명체의 신비로운 진화과정과 적응과정이 조금은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다는 느낌이다. 앞서 이야기한 호칭 문제 하나만으로도 생태학자인 저자의 선한 눈길을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섞는 조크도 마음에 드는데, 말뚝 망둥어가 우리 조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작가는 너무 아쉬워하는데 부분에서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안타까운지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후반부는 우리가 부시 맨이라 불렀던 산족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남서부 아프리카에서 개척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현대인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누가 더 좋은 또는 우월한 생활을 하는지 비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였고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세가지 가이아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서술하는데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생명체의 생존법칙이라 할 수 있다.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한 규칙 – 에너지원을 찾아라, 자신을 보호하라, 번식하라. 식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한 명만 키우고 5~6년 동안의 양육기간을 가진다는 사실은 출산율의 한계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망률은 적기에 부족이 유지될 수 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이가 있을 때 임신하게 된다면 뱃 속의 아이는 죽은 목숨이라고 한다.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울 젖이 부족하기에 둘 다 죽을 운명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우리가 보기에 안타까운 장면이지만 사실 이것이 가이아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족의 번성은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투쟁에 인정(人情)은 마이너스 요소다.



아쉬운 점은 사진 자료가 흑백이라도 중간에 섞여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 중간에 번역이 굉장히 어색한 부분이 가끔 눈에 띕니다. 그리고 종이 질이 까실거리며 질이 좀 떨어지는 느낌 적인 느낌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내용과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운 따스함은 그 어떤 과학도서보다 읽어 나가는데 즐거움을 주었고, 모든 생명체의 존중이라는 관점의 변화를 생각하게 만든 오랜만에 만나는 우수한 도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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