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전자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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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전자 : 우리가 꿈꾸던 악당 제거 프로젝트 
 
딱 한 발의 총알이 죄책감 없이 법적 책임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면.
길거리를 스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명은 지목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많아서 문제인 사람은 있어도 대상이 한 사람도 없어 고민하는 이는 없겠지?
복수는 복수를 낳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서 짜릿한 쾌감을 준다. 대리만족. 증오의 크기가 작던 크던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제약으로 금기시된 폭력을 컨텐츠로 해소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같은 사건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이 바뀌는 경우가 있더라도 복수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적이자 집요한 추적이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채 개인적인 복수 하나만을 위해 희생하는 이가 있고, 조국의 적에 대한 도시락폭탄으로 피 끓는 애국심을 불태우는 영웅도 있다.
사적인 처벌과 복수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합의는 누군가 있을지 모르는 억울한 누명과 오해를 피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죄의 경중을 따지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는 일이기에 중요한 룰이지만 권력과 암투를 통해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피해자들은 항상 사적인 복수를 꿈꾼다.
아들을 성폭행한 범인을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쏴 죽인 미국의 아버지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범인이 저지른 대가가 터무니없이 약한 판결로 드러날 때 부모로서의 분노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사적인 복수는 불가하나 누구나 사적인 복수를 응원한다.
그리고, 복수를 할 거면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게 해야 제 맛이다.

소설의 테마는 앞서 이야기한 소시민들의 작은 소망, 그러나 영원히 풀 수 없는 복수 대리인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아원 신세가 될 위기의 주인공에게 숨겨진 아버지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는 대단한 재력가이자 사학의 이사장이었다. 꿈만 같이 커다란 집에 아들로 살게 된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아이처럼 적응을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아버지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모습에 치를 떨게 된다. 그래서 나름대로 사고를 치며 아버지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나쁜 악당으로 오해한 한 소녀로부터 이상한 명함을 받게 되고 복수전자라는 곳을 찾아가게 된다. - 물론 방문 전 50스테이지의 스마트폰 게임을 클리어해야 접촉이 가능하다. 다소 어색한 설정이다. 굳이 게임을 클리어해야 면담이 가능한 이유를 알려줘.
이 곳은 복수를 하고 싶은 이를 선별하여 타당성을 검토하고, 복수를 해도 된다는 확신이 들면 합리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대신해주는 정체불명의 단체였다.
주인공도 여러가지 통과의례를 통해 대리 복수가 어렵사리 허용되지만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복수 대상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일이 진행되다 가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계획을 중단할 만큼 친족에 대한 복수는 어려운 법이다.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기에 다소 부족한 스토리의 아쉬움-갈등의 구체적인 내용-도 있기는 하다.)
유소년 범죄로 잔인하게 딸을 잃은 부부, 왕따로 죽음에 몰린 소녀,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
복수전자의 직원들은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복수가 타당할 경우 일을 진행하고 주어진 조건에 따라 처리한다. 과정을 지켜보는 복수의 시간이 길게 걸리는 주인공은 점차 그들의 일원이 되어 가고 일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물론 자신에게 내려진 처방에 따라 시나리오에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자꾸 이렇게 복수를 하는게 맞는가 라는 고민도 되풀이된다.
사적인 복수는 용납할 수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회가 공정하고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대가를 올바르게 받고 누구나 공평하다면 사적인 응징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도 뉴스를 보면 어이없는 사건에 대한 결과와 맞닥뜨린다. 이 글을 쓰기 불과 얼마 전에도 만삭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자세한 내막도 모르고 올바른 법적인 판단인지 섣불리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판결에 불만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과거에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판례로 희생된 사람, 또는 면책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도 시대만의 문제도 아니겠지만 그만큼 국민들에게 오해받기 쉬운 판결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복수전자란 곳이 있고 합리적이고 이해가능한 복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소원을 빌겠는가?
책에 등장하는 복수가 꼭 누굴 죽이거나 해를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가해자가 뉘우치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방향을 그렇게 잡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악인들은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복수전자를 찾아가고자 한다.
있을법한 가상의 이야기를 재치있고 유려하게, 이야기를 잡아끄는 힘이 있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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