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화와 기담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ㅣ 잘난 척 인문학
이상화 지음 / 노마드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설화와 기담사전 : 놀랍도록 재미있는 기묘한 백과사전
일본에는 왜 그렇게 요괴가 많을까?
일본의 책이나 애니메이션 쪽을 둘러보면 유난히 귀신이나 요괴 같은 초자연적인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파생된 스릴러나 추리소설 같은 장르문학도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어 부럽기도 하다.
폐쇄된 섬문화에서 기인한 건지 아님 다신교에 집집마다 신주단지를 모시는 독특한 종교적인 색채? 자연재해가 워낙 많다 보니 예전부터 여러 신들을 모시고 그들의 눈 밖에 벗어날까 노심초사하는 두려움? 성(性)에 대한 집착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도 들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번역하여 출판했던 "요괴대백과"를 무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요괴들의 이야기에 놀라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했는데 이런 책이 나올 정도로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관심있는 테마라는 점은 확실하다.
우리나라도 숨어있는 도깨비나 괴담들을 집대성하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의 정통성을 가졌던 "전설의 고향"이 더이상 충격도 없고 재미도 없다는 사실을 보면 기본적인 레퍼토리 자체가 상대적으로 곤궁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민심이 그래도 섬나라보다는 덜 흉흉했고 또 하나, 호랑이같은 맹수들이 자주 출몰하여 귀신이나 요괴가 사람들의 입방아 속에 등장할 틈이 없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기원 설화나 신화와 전설, 그리고 기담이나 괴담 등은 모두 사람들이 끊임없는 에너지를 갖고 생성한 상상력의 산물인 동시에 현재의 괴로움과 힘듦을 환타지로 승화한 역사의 굴레이기도 하다.
처녀귀신이 등장하는 무서운 이야기는 힘들더라도 정직한 하루를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담겨있고, 억울하게 죽어간 장화 홍련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억울한 사람들의 원한을 나라에서 책임지고 풀어주길 바라는 희망도 담겨있다. 화려한 기원설화는 각 민족의 환타지를 최대한으로 자극하여 자신들만의 우수성을 떨치고 싶은 사실은 소박한 소망이고, 노스트라다무스의 무시무시한 예언은 미래에는 좀 망해보자 라는 욕망이 숨어있다. (나와 같은 선한 사람은 살아남고 라는 전제도 깔려 있다. 이기적인 발상이다.)
이렇듯 책에서 소개되는 내용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내용들이 탄생한 배경과 해석, 뿐만 아니라 아직 모르고 있던 유명한 설화와 기담들을 요약하여 들려준다.
중국과 일본의 기원설화가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일본은 기묘하기까지 하다. 특히 자손을 퍼뜨리려는 과정이 디테일 하게 의미까지 부여되는 사실을 보면 민족의 성향이란 점은 분명히 나라마다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틀리다는 (당연한) 차이를 깨닫게 한다. 물론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이 처한 자연적 문화적 차이는 아무리 교류가 많고 가까운 지리적 위치에 있더라도 쉽게 납득할 수 없고 이해를 강요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불가사리는 아주 오래전 만났던 우리 고유의 괴물이자 언젠가 제대로 영화로 만들어지길 바라는 소재이기도 하다. 친근한 도깨비들의 이야기는 앞서 말했던 더 깊숙한 내용들을 발굴하고 현대적 컨텐츠로 융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러시아 제국의 몰락에 일조한 라스푸틴의 일화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검색을 하게 된다. 자신들의 불륜을 숨기기는커녕 그를 독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귀족부인들의 결론은 남성 상징의 크기였다는데 아연실색할 수 밖에. 물론 황후마저 범하는 그의 대범함을 생각하면 타고난 대인배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여성들의 피임 역사 이야기다. 인간이 성에 대한 쾌락을 느끼게 된 진화론이 인상적이었다. 연약한 아기를 낳기 위해서 조산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남자의 사냥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이 남자들에게 주는 유일한 대가가 성적인 환타지였고 이는 필수적으로 피임이 필요한 상황에 노출된다. 기원전 오래된 과거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피임법이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1950년대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피임법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콘돔 박사가 처음 만들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붙인 바로 그 물건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해방이 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마침 이 내용을 다룬 유튜브 동영상도 있어 참고할 만하다. (우연하게도 이 동영상을 본 다음날 아침에 책에서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현대인은 새로운 요괴를 탄생시켰고 열광하고 있다. 바로 그들은 수퍼 히어로라 불리는 마블과 DC코믹스의 영웅들이다. 과거의 전설과 요괴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환타지의 요소를 잘 버무려 만들어낸 창조물들이다. 인간은 항상 나보다 강한 존재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세상을 구해주거나 세상을 멸망시키기를 바라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바로 그 영웅이 되어 사람들에게 추앙받거나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권력욕도 녹아 있다.
하지만 이런 숨어있는 욕망이 사회적인 문화적인 인정을 받게 되는 이유는 스토리가 "재미있고", "감동을 주며", "많은 이야기들이 권선징악"의 코스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두려운 존재를 스스로 극복하고 희망을 갖고 싶은 근원적인 욕망과도 연결된다. 책에 소개되는 작은 이야기들을 아는 것만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말재주 좋은 내가 될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평상시에 고민하고 기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다양한 이야기와 독자들에게 서술하는 방식이 편안해서 작가 이력을 보니,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이고 연세도 많으신 작가님이었다. 아직도 누구나 공감하고 즐겁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세련된 문체로 책을 써 내려가고 몰랐던 이야기들을 활자로 접하게 해 주신 노력과 열정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MBC “호랑이 선생님”의 작가였다고 한다. 호랑이 선생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오래된 어린이 드라마다. 1973년에 작가로 등판하셨다고 하니 토달지 말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