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배신 : 월 메이드 여성 심리 스릴러, 라는 광고카피가 딱인 소설임
"영국 독자를 사로잡은 월 메이드 여성 심리 스릴러"
주황색의 강렬한 소설 띠 지에 새겨진 카피. "여성 심리 스릴러"라는 관용어는 자주 접하지 않던 단어라 굳이 이렇게 구체적인 독자의 조건을 광고에 달았어야 했나 라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감상 남자 독자들의 관심을 빗겨 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뒷면에 써 있는 우리가 좋아하는 "반전!"이 독자를 사로잡을 거라는 "리얼 라이즈"의 작가 T.M. 로건의 추천사가 미끄러지는 손길을 잡아 주길 바라며.
2019년에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이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인 동시에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를 강타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데뷔작이 이 먼 대한민국까지 소개되어 변역 출판될 정도면 얼마나 대단하길래! 라는 부러움이 슬그머니 심보를 건드렸다. 자, 얼마나 재미있을지 한 번 보자고!
446페이지면 꽤 긴 호흡의 소설이다.
여름에 읽는 스릴러는 원래 책장이 착착 감겨지며 넘어가야 하는데, 완벽한 배신감을 느끼게 느리다. 한 페이지의 글자도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대화보다는 주인공의 머리속을 떠다니는 생각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약간의 정신적인 불편함을 가진 주인공은 입으로 꺼냈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정도의 많은 생각들을 혼자서 하고 심지어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든 비극의 시작은 남편의 사망에서 시작된다.
어린 아들과 자신을 남겨놓고 고인이 된 남편은 이미 흙 속에 파묻혔지만 주인공 테시는 아직 남편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물론 그녀의 상상 속의 대화지만 어쩌면 영혼이 그녀의 주변에서 머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많은 등장을 하고 있다. 물론 테시의 불안한 상황을 대변하는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남편 마크는 평범하게 사망하지 않았다. 탑승한 비행기의 조종사가 자살을 하며 수많은 승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끔찍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9.11테러 이후로 조종석의 문은 안에서만 잠글 수 있었는데, 핑계를 대며 부조종사를 밖으로 내보내고는 문을 잠가 버렸다.
4주가 지나고 6주가 지나도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보도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등장하고 테시는 지속적인 공황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변호사이자 마크의 형인 이안은 유언집행인의 자격을 자신이 행사하고자, 그리고 동생에게 빌려주었던 돈을 빨리 돌려받으려고 테시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선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미망인과 그녀의 어린 아들을 보살피겠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다행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너져 있는 주인공을 보살피는 사람은 최근 인연을 맺게 된 셀리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자선봉사 활동을 하는 예쁘고 멋진 여성이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어린 나이에 잃은 공통된 아픔을 가진 이기도 했다. 처음에 상담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쾌활함 속에 숨어있는 아픔을 알게 된 테시는 점점 그녀에게 이끌린다.
테시의 아들인 제이미도 아빠를 잃었다는 슬픔과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엄마의 심상치 않은 상태에서 방황하던 중 셀리를 알게 되어 밝아졌다. 그녀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엄마가 질투와 안도감 사이 중간쯤 되는 지역에서 망설일 정도로.
하지만, 작품의 챕터 중간 중간 인터뷰 형식의 대화가 실려 있다.
이야기는 제이미의 생일을 기점으로 55일 전부터 전개된다. 그리고 첫번째 챕터와 인터뷰 내용을 통해 제이미는 실종되었고, 셀리가 범인이라고 테시는 생각하지만 과연 누가 진짜 범인일지는 알 수 없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범인일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제이미는 실종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의식이 몽롱한 현재 시점에서 테시의 진술과 울부짖음은 독자조차 100% 동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테시의 머리속에 흘러 다니는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따라서 테시의 생각이 정상은 아니겠다는 느낌을 갖고 책장을 넘겨가기에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반전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우리가 추리하는 이야기 전개 방향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쯤 되면 왜 출판사에서 여성심리 스릴러라는 단어를 꺼내 왔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섬세한 여성의 심리상태의 급격한 변화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인 동시에 독자들의 상상력을 고취시키며, 문장만으로 영화의 한장면들이 흘러가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호흡이 굉장히 느리다. 피가 튀기고 비명 소리가 난무하지 않고 세상은 평온한데 주인공 머리속만 복잡한 느낌이다. 생각 더럽게 많이 한다. 그리고 우리는 책장 속도가 아주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대단한 작가의 탄생을 경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