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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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 피 냄새 가득한 액션 호러의 새로운 도전




작가들이야 글들 잘 쓰지만 그 중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스토리를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재주를 가진 이들이다.
같은 주제나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더라도 의외의 충격적인 상황이 도처에서 튀어나오는 전개방식이 있고, 담담하게 사건을 전개시키다가 막판에 정신없이 반전들이 줄줄이 나오는 형태도 좋다. 개인적인 호감은 전자가 더 끌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읽는 소설들이 내내 숨가쁜 질주를 하게 되면 독자도 피곤해지기에 여러가지 템포를 가진 작품들이 섞이며 만나는 책읽기가 즐겁다. 단조로운 사건을 복잡하나 독자의 흥미를 꺼뜨리지 않으면서 들었다 놨다 하는 작업이 중요하지 않을까?
인외 서커스의 저자인 "고바야시 야스미"가 바로 여기에 부합하는 스타일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과 형식은 웹 소설적인 느낌도 나고, 굉장히 트랜드 한데 나이를 보면 꽤나 지긋한 분이다. 20년 정도 차이나는 머리속의 작가의 연령대가 충격적인 작가 중 하나다.
최근에 읽었던 그의 소설 "분리된 기억의 세계"는 단편같은 작품들이 여러 편 이어지는 구조지만 전 세계의 인류가 동시에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라는 단순한 질문을 깊고 넓은 가능성을 돌파하며 흡입력 있는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이야기꾼의 공격적인 모습으로 몰아붙였다.
"앨리스 죽이기"나 "클라라 죽이기" 시리즈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제 소개하려는 "인외 서커스"도 현란한 글솜씨와 스토리 뽑기의 진수를 체감할 수 있는 소설 되겠다.
오래전부터 공포영화는 꽤나 좋아한 편이라 고전적인 작품들 로부터 "덱스터"같은 순한 맛 고어, 점점 심한 수준의 잔인함의 볼륨을 높이는 "쏘우" 시리즈, 아, 이건 진짜 역겨워서 못보겠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와 재생 중지 버튼을 눌렀던 "네크로맨틱"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했다. 
하지만, 이쪽 장르는 시각적인 면이 중요한 요소다 보니 글로 읽을 때는 상상력의 한계도 생기고 자극적인 면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껏해야 "양들의 침묵"의 토머스 해리스나 "브레인"의 로빈 쿡 정도가 그나마 섬뜩하다는 느낌을 페이지 넘길 때마다 느낀 기억이다.
이런 편견을 어느 정도 깨뜨린 게 "인외 서커스". -물론 이런 장르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는 전제를 밝힌다. 공포영화에 비해 소설류를 접한 분량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점 양해있으시길.
공포영화의 시각적 끔찍함을 글로 표현해도 피 튀기는 끔찍함이 와 닿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다행히 인간이 아닌 흡혈귀라는 설정을 가지고 잔인함을 표현하지만 어차피 인간의 생체조직을 기반으로 변형된 그들이기에 끔찍함은 살짝 얇은 막을 하나 중간에 끼워 넣었을 뿐 충분히 자극적이다. 무서운 장면을 손바닥으로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실눈을 뜨게 보네 되는 느낌으로 책장을 넘어간다. 잔학 울렁증이 있다면 책 읽기 전에 다시 한번 고려하길 권한다.
사실 좀비물도 이런 가림 막이 있다. 인간이었으나 인간이 아니기에 잔인한 제거법을 사용해도 독자로서, 관람객으로서 폭력적인 성향이 덜 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좀비가 등장하는 목적일지도 모른다. 잔인한 장면이지만 인간이 아니기에 소비자가 무의식적인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장치.
"서커스"는 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배경으로도 선호하지는 않지만 작가 이름 믿고 책장을 넘겨 가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난 서커스장에 재미 좀 보려는 젊은 커플이 등장한다. 이상하게 들 뜬 여인은 서커스장이라는 장소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색다른 경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순순히 남자의 손에 이끌린다.
그런데, 아뿔싸. 이 여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뱃사공들을 유혹하는 사이렌같은 여인, 아니 흡혈귀였던 것이다.
하룻밤 유희를 즐기려던 서커스 단원이자 마술사인 주인공 랜디는 위기에 봉착, 이렇게 연애 한 번 해 보려다 인생 종치는구나.
그런데, 아뿔싸, 이 남자는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흡혈귀를 잡는 사냥꾼이자 흡혈귀 사냥단의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인간이 아니기에 압도적인 피지컬은 물론이고 잘리고 뚫리고 깨져도 끝없이 재생하는 T2의 T-1000같은 무한복구능력은 당해낼 수가 없는 힘을 가진 존재였다.
여인 흡혈귀의 이름은 퀸 비. 그녀를 따르는 흡혈귀 두 마리와 서커스단원들의 목숨을 건 액션이 글솜씨를 뽐내며 머리속에서 한 바탕 난리를 피운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인간들은 흡혈귀 둘을 간신히 죽이는데, 그 와중에 우두머리이자 막강한 파워를 가진 퀸 비는 그 와중에 어디론 가 사라졌다.
그렇게 인간과 흡혈귀의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망친 퀸 비를 제압한 것은 인간이 아닌 흡혈귀였다. 그들은 새로운 전쟁에서 퀸 비가 자신을 노출시킨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홀로 활동하지만 파워만큼은 최상급인 "미티아"라는 흡혈귀의 짓이었다. 인간의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힘을 합치자는 찾아온 그는 문전 괄시를 당하고, 흡혈귀끼리 한바탕 싸움이 벌인다. 
이 장면에서도 표현이 잔혹하고 움찔 움찔 살고자 하는 생명력의 욕심은 흡혈귀로 변했어도 마찬가지구나 씁쓸한 웃음을 남긴다. 결국 이들은 인간과의 새로운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앞서 보았던 서커스단원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야기는 갑자기 3년전으로 돌아가고 평범한 서커스단, 그러나 이제 좋은 멤버들은 다 나가버리고 십여명만이 남아 존폐 자체가 위험한 서커스단에 입단하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위태했지만 가까스로 무자비한 흡혈귀를 무찔렀던 그들은 누구인가?
이야기는 쉽게 흘러갈 듯하지만 다시 꼬이며 전개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앞서 언급한, 특히 최근작인 "분리된 기억의 세계"와는 결이 다른 소설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물론, 글 쓰는 방식도 스토리를 끌어가는 힘도 전혀 다르다. 저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우연히 책을 들었다면 같은 작가가 쓴 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수준이라 보면 된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긴장을 유지하며 현란한 글솜씨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것이 저자의 강력한 힘이다.
미야베 미유키 같이 문장과 스토리의 사건이 대결을 벌이는 방식보다 더 급진적이다. 사건이 독자의 눈을 빼앗았는데 화려한 문체는 스토리에 딸려갈 정도로 파워가 강하다. 이야기는 전개될수록 뻔한 대결과 전개를 뛰어넘는 방식을 최고조로 보여주고, 글을 읽는데도 장면이 머리속에 투사되는 기적을 맛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답다는 인간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독자에게 던진다. 항상 답하기 어렵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의견에 끌려가는 억울함을 느끼지만, 묘하게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 장까지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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