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토피아
-초보 식물주의자가 되기 위한 바이블
꼬꼬마 시절 우리 집 병아리는 비오는 날 밤 죽임을 당했다.
반려동물은 물론 식물 키우기를 잠재의식이 거부했다.라고 핑계를 말해볼까.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사무실 책상에 놓인 화초 잎 끝이 노래지면 물 대신 블랙 커피를 붓기도 했다.
부산에 근무하던 사택에 스투키 하나 사오면서 식물주의자가 될 뻔했는데, 한 달만에 서울로 발령나서 이사하다 화분 깨 먹음.
회사에서 직급자들 생일 때 저가형 난 화분을 하나씩 보내는데 6개월이 지나면 아버님 댁으로 이사를 시킨다.
맥주를 많이 마셔 통풍이 있는데도 채식주의자 되기는 싫어요.
방에 식물 사진이라도 많이 붙여 놓으면 공기가 정화될 까.
대학 다닐 때 방에 가끔 담배를 폈는데 왜 우리 엄마는 등짝 스매싱이 없었을까. 그때 식물과 돈독해질 수 있는 유일한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플랜토피아란 책을 책상 위에 턱 하니 올려놓으니 왠지 채식주의자에 식물숭배자가 된 것 같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초록색 향기가 샤라라 춤을 추며 더운 여름날 30도가 훌쩍 넘는 거실을 뱅글뱅글 어지럽힌다.
태어나서 책 보고 이런 힐링을 느껴 보기는 처음이다.
앞서 주절 주절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은 식물조차 키우기 거부하던 게으름뱅이가 반려동물은 무리지만 식물이라면 한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고 책을 펼친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림이 많고 그림이 싱그러운 이 책은 초보 식물 키우기에 적합한 책이다.
화분 속에 살고 있는 잔인한 식물학살자들을 죽이는 방법보다는 어떤 녀석들을 집으로 들일까 부터 시작해서 좀 더 그럴싸한 인테리어 만들기는 물론, 그림으로 식물원 느낌 만드는 방법까지 버라이어티 하게 안내한다. 그야말로 유토피아 뺨치는 플랜토피아 만드는 가이드다.
시작부터 초보자를 겨냥한다.
초보자가 식물을 키우기 위한 기초상식과 적당한 식물을 소개한다. 분갈이나 꺾꽂이까지는 무리겠지만 상식적으로 알아 두는 것은 나쁘지 않다.
식물은 사람을 닮았다고 한다. 물, 영양분, 빛, 그리고 애정이 필요한 존재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나눠 마신다.
그렇다면 나와 단짝이 될 식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좋은 친구라면 상대의 단점을 개선시켜줄 친구가 최고지만 초보 식물가에게는 빨리 포기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에 키우기 쉬운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항상 물주기가 식물 키우기에 관건이라 들었기에 이 부분은 좀 자세한 설명을 추가로 찾아 봐야하는 부분이 저자에게 좀 아쉬운 대목이다.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식물 중 나는 몬스테라를 골랐다.
이름도 카스테라 닮은 게 큼지막한 이파리가 마음에 들었다. 실내에서도 정글에서도 쑥쑥 자라는 씩씩한 친구다 될 것 같다.
공기정화식물도 소개하고 있는데 역시 난 "스투키"가 제일 좋다. 브라키오사우르스의 기다란 목을 닮아서 좋고, 쭉죽 날씬해서 좋다. 게다가 물을 며칠동안 주지 않아도 참을성이 많다고 한다.
테라리움이란 것은 자주 보았지만 명칭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고, 이름이 마음에 든다.
테라리움은 땅을 뜻하는 라틴어 테라(terra)와 방을 의미하는 아리움(arium)의 합성어다. 투명 용기 안에 작은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하는데 식물 키우기와 인테리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물론 일반적인 식물 키우기보다는 관리요소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밀폐형은 좀 갑갑한 느낌이 들지만 관상용으로는 개방형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코르크 마개 등으로 막으면 호흡도 가능하고 인공적인 느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묘한 효과가 난다.
식물 말리기, 드라이 플라워는 깔끔하고 관리하기는 편하겠지만 시체보관소 느낌이 나서 개인적으로 별로다. 식물 말리기는 책갈피 단풍잎이면 충분하고, 드라이 플라워는 요즘 인기도 많고 관상용으로 더할 나위 없지만 말이다.
화초 없이 완성하는 그린 라이프 챕터는 3번째 이야기인데, 이 책이 식물 키우기 책이 아니라 식물주의자가 되는 가이드인 만큼 적절한 구성이라 생각했다.
호흡기 쪽은 자연이던 인공이던 가미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가끔 무인양품에서 샘플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수증기 속의 에센셜 오일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시간적 여유가 되고 책의 안내대로 조금 더 식물주의자가 되면 시도를 해 볼 예정이다.
아로마 디퓨저도 몇 번 사서 써봤지만 생각보다 농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너무 진하거나 엷거나. 사무실 텅 빈 디퓨저는 누가 사서 채워줄 것인가?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책에 계속 소개되는 그린 라이프인 허브 티는 아직 취미를 못 붙인 편이고, 그린 샐러드는 다이어트 효과를 떠나 조금씩 몸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익숙해지고 있다.
반려동물은 아이가 어렸을 적 같이 놀아주던 추억을 상기시키며 긍정적 사고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과의 불화도 있고 책임감 없는 주인들의 패악질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에 반해 식물은 조금 더 편하고 접기도 쉽다. 정서적인 유대감은 동적인 반려동물과는 또다른 정적인 유대감의 차별점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실물이 아닌 사진이나 식품을 통해서도 식물주의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작은 유대가 지친 하루의 직장생활에서 쌓인 독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내일 저녁 퇴근 때 집 앞 꽃집에서 스투키를 하나 데려올까 고민하게 되었다. 산세베리아가 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