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눈의 여자 - 무속신앙이 잉태한 피할 수 없는 비극
박해로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살"이라는 글자가 뭔가 섬찟한 느낌을 주는 파란 색 표지의 소설을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서이다.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살”이라고 써 있던 제목은 선뜻 손대기 어려운 문구였다. 공포/스릴러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한 술 더 떠 "상갓집의 저주"를 누가 읽고 싶어하겠는가!
시간이 잠시 흘러 마음에 꼭 들던 알라딘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전자책 3만이상 구매 조건이었는데, 이 소설이 우연찮게 껴들어갔다. 2018년 여름 어느 날 무더운 날씨에 심드렁하게 누워서 볼 책을 찾다가 "살"을 오픈했고 그 날 새벽까지 독서는 이어졌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황정민씨의 충격적인 굿 장면이 오버랩 되는 소설이었다. 개인적인 저주를 위한 방법을 위해 상가집을 찾아다닌 주인공. 그러다 오히려 자신이 지독한 살을 맞으며 환영에 시달리게 되는 이야기였는데, 처음 접해보는 장르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흡입력을 보여주었다.
서양의 "오멘"이나 “엑소시스트”같이 악마가 등장하고 저주가 난무하는 구성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의 귀신이야기는 정서적 유대감 덕인지 더 짜릿하고 심장이 벌벌 떨린다. 물론 작품에 따라 표현되는 공포가 천차만별이지만 앞서 이야기한 두 개의 작품이 몇 편 보지는 않았지만 무당과 저주를 다룬 그 어떤 작품보다 인상이 깊이 남아 다시 한번 도전해 볼까 하는 엄두는 나지 않았다.
몇달 전 국내에 어렵게 – 오랜 시간이 걸려서 - 출시한 "곡성"의 블루레이를 집에서 감상하며 극장에서 놓쳤던 부분을 곱씹으며 감상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전체적인 영화의 짜임새나 중간 중간 드러나는 메타포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살"이란 소설도 다시 한 번 읽어본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해로라는 작가를 두번째 만나게 됐다. 전작처럼 음산한 제목도 표지도 아닌 - 마치 최근 유행하는 유럽풍 스릴러 같은 표지를 가진 "올빼미 눈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코로나19 지원금 등을 둘러싸고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애환은 가끔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요즘같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국가의 행정력이 근근히 버티고 있고 무슨 일이든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어렵사리 지원책을 내놓지만 미숙한 부분이 드러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내"가 중요한 민원인들은 자신들이 한 번 더 꼼꼼히 살피고 작성해야 하는 서류를 공무원들에게 던져 놓고 소리만 질러 댄다. 과거 공무원들에게 쩔쩔매며 급행료를 지불하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세상 좋아진 것이다. 물론 철밥통이라고 배를 두드리며 일하는 공무원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요즘 일선현장의 공무원들은 감히 그러지 못한다. 여기저기 민원과 협박을 들러붙기 때문이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인 기성과 준오는 9급 공무원 동기다. 둘 다 민원업무를 담당하는데 민원인들의 등쌀에 일반 업무를 맡게 되길 바라거나 아예 새로운 일자리를 꿈꾸기까지 한다. 꿈 속에서도 민원인들에게 곤란을 겪고 심지어 시너통을 투척하며 불을 지르는 사고로 목숨을 위협당한 적까지 있다.
이들에게 교육연수는 짧은 휴식인 동시에 도피처 역할을 하게 된다.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빽을 동원해야 원하는 시기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오랜만에 같은 시기에 교육을 받게 된 동기는 첫날부터 의기투합하여 거나한 술판을 벌이고, 노래방까지 2차를 돌며 억압받았던 업무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한다. 하지만 기성은 필름이 끊겨 아무런 기억을 못한 채 다음날 일어나고 뭔가 찜찜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휴대폰마저 노래방 도우미로 왔던 중년여성과 바뀌어 곤란한 상황이 되지만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만난 중년여성의 딸에게 첫눈에 반한다. 애인이 있는데도 수작을 걸어보려는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커진다.
알고 보니 그녀는 대학 동아리 친구였던 연진이었다. 다단계 판매로 주변 사람들 등을 쳐 놓고는 성형수술을 통해 위장한 채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와 도피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끌린 마음은 자꾸 욕망으로 연결되는데, 엉뚱하게 기성의 입장에서는 장모님이 되 주길 은근히 바라는 연수의 엄마 현수가 기성을 찝적거린다.
이와 같이 일상적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도입부가 평이한 채로 너무 오래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꽤나 길게 - 재미는 있지만 - 공포의 오싹함은 없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살"에서 읽었던 템포와도 다르고 여타 유사 작품들의 전개와는 느린 마을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無긴장감에 지루해질 수도 있다. 살짝 알려드린다면 묵묵히 참고 책장을 넘겨주시기 권한다.
책은 크게 세가지 파트로 나뉘어 있다.
책의 절반 이상은 주인공인 기성의 시각으로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간다. 그리고, 결말은 뜨막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 짓고 있다.
두번째 파트는 다시 시간을 돌려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짚어가며 몰랐던 진실을 마구 파헤치는 과정을 엮어낸다.
마지막으로는 에필로그라 할 수 있으며, 각 인물들이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아가며 새로운 변화를 거치는지 담담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몰아치는 힘은 후반부에 격렬해지며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천천히 흘러간 초반부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잠깐 역사의 한 토막을 빌려오고 지역에 전해지는 올빼미 눈에 관한 전설의 고향을 들려주는데 몰입감이 꽤나 강한 편이다. 이 부분은 정말 좋았다.
아쉬운 점은 에필로그 부분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사연의 결말이 긴장감이 풀어지거나 명확한 이유없이 끝나간다는 점이다. 큰 이야기에 충실했기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지만 앞선 충격들을 수습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동감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사연과 파국적인 마무리를 기대했던 욕심에는 살짝 못 미친 듯하다.
전작 "살"과 같이 토속신앙과 무당, 굿 같은 평상시 접하기 힘든 한국만의 공포이야기를 들려주는 힘은 강력하다. 시간의 교차편집 등을 통해 숨겨진 내용을 한 꺼풀 벗겨 나가는 재미나 오래된 이야기를 섞어가는 부분도 한여름에 읽기에 적합한 소설인 것 같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스릴러보다 우리의 정서가 묻어난 복수나 저주의 블랜딩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은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무척이나 빠르게 만들어 준다.
저자가 후기에 언급한대로 현대사회는 모두 “나”만 중요하고 “나”만을 위해 살아간다. 극도의 이기주의는 타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라도 욕망을 끝까지 해내는 악착감을 동반한다. 법의 허점을 파고들고 돌이킬 수 없는 서로의 상처를 남기며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나만 잘산면 돼라고 허공에 주먹질을 해가며 무자비한 뜀박질을 달려가고 있다. 씁쓸한 것은 오래던 과거나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이런 사회적 병리는 마찬가지일 것이고, 언제나 희생자는 의외의 우리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다.
업보로 오랜 시간 동안 돌고 도는게 어쩌면 인간의 숙명이라는 부담감을 가져야할 거 아닌가, 악인들아.
저자의 다음 작품도 두려운 기대감을 가지고 올빼미는 머리 속에서 지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