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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0년 5월
평점 :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여름날 읽기 좋은 피튀기는 심리 스릴러
피터 스완슨을 처음 만난 책은 많은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 독특하면서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게 만드는 마술이 있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반전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주인공이 계속 마음을 잡고 놔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평상시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 아무래도 악인 보다는 선인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이 소설은 좀 달랐다. 살인자의 성공과 생존을 기원하게 만드는 교묘한 스토리의 힘은 3-4년 동안 읽었던 스릴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 되었다.
영미 작가들 위주로 읽던 스릴러는 어느 순간부터 유럽으로 열풍이 전환된 것 같다. 북유럽의 차가운 흰색 칼 바람같은 스토리가 걸맞는 표지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일본 스릴러에서 느끼던 섬뜩한 느낌은 독일 작가들로 대체된 느낌.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라 다른 독자들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피터 스완슨은 여타 유럽 작가들과는 또다른 날카로운 느낌과 몽유병에 걸릴 것 같은 꿉꿉한 냄새가 혼합된 차별성으로 독자를 몰입시킨다. -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평이한 문장의 연속이 아닌데도 술술이다.
개인적인 열광에도 불구하고 사는게 바쁜건지, 출판된 다른 이야기들은 놓쳤고, 신작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로 오랫만에 조우하게 됐다.
꽤나 마음에 들었던 전작에 비해 바로 와 닿는 북 커버는 아니지만, 첫 인상이 이야기 전체를 휘감는 느낌이다. 초록색 표지 덕분에 이야기 내내 눈동자에 초록 필름으로 인화한 듯한 색이 물들었다고 할까? 등장하는 풍경과 사물이 이야기의 발단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소설은 이사 온 부부가 지역모임 파티에 나가면서 시작된다. 어울리기 싫어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모임에 나서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어색함. 아이가 없다는 이야기에 동네사람들은 이것저것 질문을 돌려가며 아이를 갖을 것이라는 확답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보니 아이가 없는 유일한 두 커플은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고, 우연하게도 두 커플의 집이 바로 붙어있는 이웃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동안 아이없는 유일한 부부였던 탓일까? 매번 아이는 언제 갖느냐는 질문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듣던 미라에게 동지가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예술을 하는 멋진 이웃이라니.
첫 만남에서 저녁식사에 초대할 정도로 신난 미라는 남편의 못마땅한 표정을 멀리 차버리고 좋은 이웃이되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초대에 응해 근사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안 구경을 하던 새로 이사온 옆집 여자 헨은 우연히 미라의 남편인 매슈의 서재에 있던 트로피를 바라보고 정신이 어찔해진다. 과거에 집착했던 한 사건이 트로피로 인해 각성된 것이다. 이웃에 살던 남자가 살해된 사건에 집착했던 본인의 과거와 이제야 범인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놀라운 현실. 그것도...바로.
그때부터 헨과 매슈 두사람은 마치 대화를 이어가듯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정반대 입장에서 들려주기 시작한다.
마치 심리 싸움을 하듯, 자신의 입장을 독자에게 설득한다. 이야기 초반에 두사람의 갈등과 결정적인 목격이 등장하는 -일반 스릴러와는 확실히 빠른 전말이 드러나는-전개를 보여주지만, 이것은 함정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여러가지 예측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신병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목격자의 증언이 번번히 무시당하는 상황은 진실이더라도 객관적인 정황이 눈을 가리는 일들이 실제 우리 일상에서도 많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허탈감을 주기도 한다. 싸움이 났을 때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묘한 차이가 나듯, 하나의 사건을 보는데 각자의 입장과 의견이 묘하게 뒤틀리며 진실과 유리된 왜곡이 시작되는 법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중반부 갈등하는 두 사람이 헨의 작업실에서 대면하는 놀라운 장면을 통해 더욱 독자로 하여금 앞으로의 진행방향과 사건의 숨어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트릭을 쓴다. 일반적인 스릴러의 룰을 깨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물론 두사람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억지설정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상대방의 약점이라는 고삐를 쥐고 있는 악인은 대범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헨이 대학시절 과대망상으로 누군가를 해치려 했다는 설정은 다 이 장면을 위한 화두였을지도.
남성의 폭력성을 일방적으로 매도한다는 의견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슈의 가족사를 들여다보면 끔찍하기만 하다. 피묻은 알 수 없는 여자의 속옷을 아들에게 보여주는 아버지, 네발로 서서 식사하게 강요하는 아버지와 "증인의 얼굴로" 마치 제3자의 입장의 얼굴을 하고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어머니. 무책임한 부모가 자녀들을 어떻게 파멸에 이르게 하는지 악몽같은 샘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슈와 리처드 형제의 비극은 이미 오래전 잉태되었고 어쩌면 헨의 정신병 이력이 그녀의 작품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듯, 가족력은 폭력을 미화하는 도구가 된다.
등장인물의 구체적인 성격과 실제 행동하는 부분이 다소 삐걱거리는 느낌도 든다. 특히 매슈의 동생 리처드는 등장부분부터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들었고 소설 전체적으로 그렇다. - 이 형제를 보며 자꾸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괴짜 겔리거 형제가 떠오르는건지... 헨의 과거 행적과 현재의 공백도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다. 안정적인 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 중간 중간 생략된 느낌이 강하다보니 끔찍한 살인사건 장면을 목격한 중인의 진술을 경찰들이 그렇게 쉽게 부정할수 있을까 설득력이 부족했다. 술에 취한 진술, 과거의 이력, 현장이 어두웠다.... 신문에 소식이 실릴 정도로 강력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의 증언이 이 정도로 부정당하는 건 좀 억지스럽다. 숨가쁘게 진행되는 사건의 연속적인 장면에서 과감한 생략이라 볼 수도 있지만, -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삭제씬 같이 - 소설이다 보니 조금 더 페이지가 두꺼워지더라도 정신병이 어떻게 그녀를 괴롭혀왔고 극복하기 위해 부부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조금 더 구체적이었으면 어땠을까?
작가가 독자의 시간을 빼앗는 힘은 여전하다.
각 주인공들의 빼어난 심리묘사도 군더더기 없으며 일단 책장을 빨리 넘길 수 있다보니 빠른 완독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독자들을 롤러코스트로 밀어붙이는지 알 수 있다. 무더워지는 여름 밤, 즐거운 스릴러의 시간이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문장 하나로 서평을 마무리 한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서 2천 명의 팔로워를 거느릴 만큼 예쁜, 살아있는 여자에서 미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뉴스가 될 만큼 예쁜, 죽은 여자가 될 것이다. - 라차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