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ㄱㄴㄷ 또는 abc 순으로 세상에 쓰이는 모든 단어들이 해설되어 있는 친절한 책이다.
한번 보고 중고 책방에 되팔거나 어둠의 책장 아래 켠에 봉인되지 않고 항상 책상 가까이에서 주인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두툼한 녀석이다.
학창시절, 영어사전을 다 씹어 먹으면 서울대 간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고, 진짜 이걸 실천한 친구들도 있었다. (몇 장 먹다 포기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대형서점 코너를 가보고 아이들의 공부방을 엿봐도 사전은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전자 사전 영향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휴대폰 떡 꺼내서 녹색창에 물어보면 바로 답을 주니 사전을 헤집으며 단어를 찾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디지털의 문제인 순차적인 검색 과정의 생략이라는 단점은 있겠지만.
사전을 뒤적거리면 한 단어의 파생어라던가 유사한 스펠링의 또다른 단어도 알게 되는 장점이 있었는데 휴대폰 검색은 이런 게 불가능하다.
더 빠른 억세스와 연관성에 의한 확장력, 어떤 게 더 유리할까?
작가는 카피라이터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카피가 많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향하라’, ‘나라를 나라 답게'
그의 책 "카피 책" 첫 구절을 보면 웨이터 류현진과 이영표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상황에서 카피를 썼을 때 고객들의 머릿속에 콕 박히는 말과 그저 흘러 지나가는 말의 차이를 사례를 통해 확실히 알려준다.
카피라이터가 되는게 목적이 아니라도, 저자의 조언들을 잘 따라해 본다면 회사에서 문서를 만들 때나 시장에서 상점을 하더라도 보다 강렬한 어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글을 써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모든 것이 카피라고 저자는 독자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다 잘 알고 있잖은가?
긴 소설을 써야 하는 호흡이 있지만 카피는 짧은 호흡으로 써야 한다.
단숨에 고객의 눈에서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가 즉각적인 행동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카피나 한 줄 문장은 어떤 연습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데 정철 작가는 "사람사전"을 통해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나만의 단어사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책을 쓸 게 아니라면 ㄱㄴㄷ 순으로 하나 하나 사물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루에 단어 한 개 내지 두개 정도를 정해 놓고 단어에 대한 이야기, 느낌, 연결되는 에피소드 등을 글로 옮겨본다면 오랜 시간이 흘러 나만의 사전이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본다면 세상에 대한 개인의 철학일 것이고, 단순한 셈법을 따져 보더라도 글쓰기 연습이 될 수 있다.
글로 꼭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닌 나를 표현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고객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어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습 말이다.
그리고 사람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보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도 좋고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 때로는 과거를 살아갔던 위인의 이야기도 좋다.
모든 단어에 숨어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친구와 대화하듯이 두런 두런 써내려가는 것이다.
사물을 통해 사람을 발견하고 나를 돌아보는 일기장 같은 사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상적인 단어 몇개를 골라보았다.
기적 : 3억대 1의 경쟁력을 뚫고 세상에 나왔으니 사실 못할 건 없는데 로또는 안될 것 같아. 그래도 내일 줄을 설지도.
내복 : 추위에 약하는 사실을 숨기고 싶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일단 추우면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바쁜 출근길 열나는 내복은 왜 이렇게 안 입어지는지. 깽깽이, 매일 아침
맥주 : 소맥 때문에 맥주가 불쌍하다고 하는데, 양은 맥주가 더 많이 들어가고 비싸...
방황 : 방황하다 안정된 삶을 살다 또 방황을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은 마음이 가볍다.
목차도 필요 없고, 책상에 두고 잠깐 머리를 식히거나 저자와 대화를 하고 싶을 때 손을 뻗쳐 한 페이지 툭 펼치면 된다.
책상머리에서 영어사전 대신 사람사전을 놓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사색, 때로는 치열한 비즈니스 아이디어에 대한 조언을 구해볼 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