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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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출생. 86년생 여자. 올해 마흔이 되었고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으며, 직장인 8년 차.


이 한 줄에 담은 나라는 사람에게서 차별이란 단어가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싶지만 <여자>, <마흔>, <딩크>라는 단어들이 주는 인식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벽이 되기도 한다.


가령, 마흔이 된 여자는 관리직으로 올라가야 할 나이와 더 이상 젊은 감각이 남아 있지 않을 나이에서 애매한 평가를 받는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다는 사실은, 때론 '왜 아직 아이가 없냐'는 친절한 조언으로, 때론 '애도 없는데 야근 좀 할 수 있지?'같은 당연한 요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나를 규정하는 단어들이 나의 능력이나 의지보다 먼저 평가받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보고 내가 경험하는 차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우리 세대의 여성들은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했던 시대에 태어나 자랐고, 어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유리천장의 존재를 실감하며 독박 육아의 부담을 감내하고 있으며, 그 차별은 일상 속 폭력과 다름없으니 나는 그 피해자로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답게 나의 예상과 달리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책이다.


나는 피해자 아닌 가해자

"나는 차별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차별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단 점에서 독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는데,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가 가진 무의식적 편견과 사회 구조적 문제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꽤 신선하다.


그동안 나는 '차별'이란 단어를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책은 차별이 반드시 악의적인 소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차별을 '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차별 논의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무심코 저질렀던 차별을 되돌아보게 된다. 예를 들면 장애인들이 지하철 집회를 열었을 때 가졌던 불편한 시선. 또는 복직한지 얼마 안 된 동료가 다시 육아휴직을 간다고 했을 때 느꼈던 씁쓸함. 같은 여성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억누르려 했던 기억. 나는 이 사회가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아 딩크를 고민한다고 하면서 정작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동료에게 불편한 감정을 품었다. 자연스럽게 느꼈던 이런 감정은 결국 차별의 씨앗을 품은 감정이었고, 내가 바로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음을 공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는 말한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라고.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 속 차별 언어. 정말 나는 몰랐어

작가는 사례를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가 어떻게 차별을 강화하는지 설명한다. 다른 건 몰라도 독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선 꼭 알았으면 하는데 그 이유는 언어가 사람의 사고를 구조적으로 배치하고 그 생각과 편견이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확실하고도 결속이 높은 체계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든 예를 보면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은 '정상 가족'과의 구분을 전제하며, '결혼 이주 여성'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한창 많이 보였던 'MZ 세대'라는 표현도 한 세대를 획일적인 이미지로 묶으며, '꼰대'라는 단어는 연령에 따른 선입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MZ 세대'는 종종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젊은 세대를 단순화하고 고정된 성격을 부여하는 프레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꼰대'라는 단어도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권위적이고 변화에 둔감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세대 간의 단절을 부추긴다.


이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한 말속에서 차별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으며, 우선 이를 인식하는 것부터 변화의 출발이다.


나에겐 차별, 너에겐 평등

이 책을 청소년기에 읽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한 사고로 내용을 받아들이고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차별로 느껴졌던 일이 누군가에겐 공정한 시스템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커서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축적되면 내가 차별하는 입장에 서 있는 순간이 많더라도 역으로 차별받는 대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특히 저자가 지적한 능력주의적 시각에서의 차별은 나를 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입사 기준(예: 토익점수)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모순된 감정과 생각이 반복될수록 나는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선량한 차별의 경험은 나의 전 직장에서도 있었다. 내가 회사에 들어도고 1년 뒤 입사한 동료가 있었다. 업무 능력이 더 특출난 것도 아니었지만 팀장은 남자 직원에게 먼저 진급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그가 남자여서 군대를 다녀온 기간을 고려해야 하고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 '남자는 가장이니 더 많은 책임과 보상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불공정하게 들렸지만 그 당시 팀장은 이를 공정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성별에 따른 역할을 고정하고 여성의 기회를 제한하는 차별로 작용했고 이것이야말로 '차별이 공정으로 포장된' 사례이자 내가 겪은 현실이었다. 이처럼 차별과 공정은 쉽게 뒤섞이며, 우리는 때때로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곤 한다.

차별은 인식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세상에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올까?'하는 의문이 든다. 과연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우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옷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차별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란 질문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처럼 들린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차별도 등장하고, 과거에 비해 법적·제도적 차별은 줄었지만 무의식적 편견과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차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변화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느냐'가 아니라 '차별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다. 차별을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어질수록 사회는 보다 평등하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세상은 자연스럽게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단 나부터 바뀌어야

내게 붙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타이틀을 똑바로 인지하고 이 이름표를 떼기 위해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고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인식하기

작가가 강조하는 것처럼 **나는 차별하지 않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차별은 일부 악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리고 내가 쓰는 일상 속 차별적 언어를 점검해 보자.

- 여자가 너무 드세니까 저래

- 남자가 저렇게 소심해서 어디다가 쓰냐?

위와 같은 말들은 특정 성별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또한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사회적 변화들(장애인 이동권 시위, 여성 할당제, 육아휴직 등)의 문제들을 돌아보며 그 불편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행동하기

차별적 발언을 들었을 때 그냥 넘기지 않고 반응하는 것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이다. 그뿐만 아니라 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나 다큐멘터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접한다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차별을 간접 체험하며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구조적 변화 위해 소리내기

아무리 개인이 발버둥 친다고 해도 결국 사회 구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영향이 축소된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제도적 차별 개선을 직접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내가 리더급에 있다면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편견이 개입되지 않은 평가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아마 이들의 과정은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빛을 발하는 일일 테다. 저자도 이를 알기에 당장의 변화를 말하기보다 다양한 판례와 용어를 통해 독자들이 차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는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법.

이 책이 더더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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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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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김려령 작가님의 이름은 생소해도 <완득이>라고 하면 다 아는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님의 신간 소설 「기술자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장편소설인줄 알았지만 7개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었고,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천천히 한 문장씩 공을 들여가며 읽는 맛이 있다면, 단편소설은 짧은 호흡으로 내가 원할 때 어떤 이야기든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맛이 있는건데 그리 어렵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 풍경의 이야기들이 재밌었다.

나의 최애 단편 소설은 「기술자들」 속의 《기술자들》 소설이었다.

제목 그대로 종합설비 기술로 한평생 살아온 최가 가게를 정리하면서 구인용 승합차 한대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이 필요한 곳에 가서 그날의 노동비로 삶을 재정비하려는 이야기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욕실 누수 문의가 들어와 빌라로 가던 때 조가 다가와 최의 보조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기술자들》 소설은 다른 전체 이야기 중에서 더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기도 했고, 내가 늘 부러워하는, 자신만의 능력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노력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감에 있어 맞닥뜨리는 일의 부침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09 공사는 최가 도맡았다. 아직 조의 실력을 몰랐다. 그러나 조가 화장실 입구에 방진용 비닐 막을 칠 때부터 그가 괜히 덤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엇다. 자고로 기초적인 일에 능숙한 사람이 나머지 일도 잘했다. 대형 비닐을 각 잡고 펼쳐 말끔하게 설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조는 혼자서도 잘했다. 장비를 준비하거나 거드는 일도 매끈하게 소화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신속한 보조였다.


전문가가 느끼는 전문가의 '각'
어떤 대화없이 일과 일로 주고 받는 현장에서 대충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본인과 상대 모두 기술자여야만 알 수 있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런 면을 이 책에서는 중심 인물로 중년의 기술자들을 정했고 마치 로드무비를 연상시키는 배경에서 독특함을 자아낸다.

우연히 합류한 조는 의외로 최에게 큰 도움이 되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했냐는 질문에 조는 두루뭉실하게 대답했지만 서로의 역량을 확인한 뒤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길거리 생활을 잘해나간다.


18 조는 최가 세면대를 교체하면서 테두리에 두른 실리콘을 유심히 봤었다. 좋은 솜씨였다. 단시 설치·수리가 주였던 최가 실리콘 작업은 부차적인 일로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맨손의 노상 기술자에게 부차적인 일이란 없었다. 당장의 일이 곧 본업이었다.


조가 만든 조잡한 전단으로 일이 들어오는 걸 보며 최는 처음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해 희망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동네에 하나씩 있던 가게에 누구나 드나들며 자신의 집 문제를 상의하러 오는 세상은 저물고 이제는 모든 것이 검색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빚만 빚대로 늘어가는 최의 가게는 몰락이 예상되었을 것이다. 최는 처음 가게를 인수받을 때만 해도 동네에 정 붙이고 살면서 연장 든 할아버지로 늙고 싶은 소망(14)을 꿈꿨지만 변하는 시대를 붙잡는 건 그 어느 기술이 있었더라도 어려웠을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일이 자리를 잡고, 집은 아니지만 고정적으로 몸이 누울 수 있는 허름한 여관도 달방으로 쓸 수 있게 되면서 오늘만 같기를 바라는 최의 작고 소박한 행복이 더 진실되게 와닿았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재주로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고 나조차도 늘 원하고 원하는 바다. 거기에 믿고 일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현장에서 발휘하는 일의 능력은 더욱 높은 단계를 쌓을 것이다.

김려령 작가님이 보여준 기술자들의 세계는 처음에는 어둡고 외로웠지만 점점 환해지며 삶의 희망이 든든해진다. 한 사람을 만나고(조),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어(황) 불안한 하루만 예측하던 삶이 좀 더 안정적인 삶으로 확장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결국 희망을 보니까.


(출판사 서평 이벤트를 통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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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 시간에 집에 있다. 오후 4시. 늦은 오후.
그러나 활기찬 여름의 속성이 여전히 머물러 있는 시간.
이럴 땐 에세이보다 소설.
그렇게 유명하다고. 어떤 누구는 자기 인생의 최애 작가로 꼽히는 최진영 작가의 책을 이제서야 읽어 본다.
<쓰게 될 것> 최진영 단편소설집이다. 어떤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고, 어떤 이야기는 과몰입하다가, 어떤 이야기에서는 밑줄을 계속 그을 수밖에 없었다. 왜 당신들의 최애작가인지 알게 된 단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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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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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았던 이 책은 논리와 이성으로 똘똘 뭉친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연구를 완성시키고 또 실패하는가에 이야기한다.
사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무수히 많은 실패는 그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ing 일뿐이다.

부제인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답게 우리는 노벨과학상을 탄 이후의 물리학자들의 삶을 통해 이들이 끊임없이 창조하는 연구에 대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삶의 태도의 에센셜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조언이 될 것이다.

우주론자 브라이언 키팅은 노벨상을 탈 뻔한 과학자다. 여러 책을 집필했으며 이번 「과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노벨상을 탄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그 유명한 상을 수상하고도 어떤 마음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또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실함과 꾸준함을 밝혔다.

우리는 흔히 과학자라고 하면 엄청 똑똑해서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여 어렵게 생각하지만 이번 책에서 읽은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쩌면 직장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기획서를 잘 써야 하고, 동료와 협력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매일 마주하면서 인류에 도움 되는 작은 단서를 가지고 다시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반복적인 삶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삶에서 과학자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특히 그중에서도 재미, 자신들의 흥미를 돋울 연구를 계속한다는 점에서 그 지속성이 있다.

의외로 이 책은 굉장히 딱딱한 듯 보여도 속은 말랑말랑한 에세이에 속한다. 나는 가끔 보기에 부드럽고 인상이 좋은 사람에게 듣는 말보다, 보기에 엄청 냉정하고 세게 생겼는데 그 사람이 하는 하는 말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곤 하는데 아마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에게 받은 위로가 더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절대 이성과 논리로 점철된 물리학자들은 그들의 수치와 데이터를 가지고 그들만의 운과 노력에 대해 어떤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듯 보인다.

처음부터 정답을 향해 걸어가 보이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미로 속을 헤매다 끝끝내 결승점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지성은 돌파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성장한다. 언뜻 볼 때 결과가 비슷해 보인다고 해도 어떻게 배웠느냐에 따라 성장의 정도는 다르다. 막막함을 견디며 버거운 과제에 몰입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 끝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면 치를 수 없는 값도 아니다. 스트레칭할 때 닿기 힘든 곳까지 몸을 뻗는 순간 근육이 자란다고 한다. 지적 근육 또한 새롭고 낯설고 조금 불편한 시도를 통해 자란다.(129)”의 저자의 말처럼 모든 이에게 번뜩이는 영감과 창조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묻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또 하고 또 좌절하고 또다시 해보면서 포기하려는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 길고 길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말을 그동안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마음에 남지 않았던 건 너무 뻔하디 뻔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자들이 겪고 있는 인내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상을 수상하고 거만의 세상에 남지 않고 다시 겸손한 자세로 작은 연구실에서 그들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그들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단 위로가 된다.

이 책의 큰 흐름은 계속하는 거다. 남들이 인정한 노벨상을 본인과 팀의 헌신으로 받았다더라도 결코 그것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그들의 호기심 여정에서 만난 잠깐의 행운일 뿐. 결국 그들은 계속 일을 한다.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관통한 말은 ‘계속해 볼 것’이었다. 실수를 하든 실패를 하든 혹, 성공을 하든. 그 자리에서 좌절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계속 뭔가를 하는 일이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안락한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것이 오롯이 나 혼자 해낸 듯 능력을 믿고 까불기 마련이고 크게 실패했다면 세상 모든 저주를 스스로에게 내리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 단 한 가지, 그저 계속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상처받지 말고 계속해 볼 수밖에 없는 증거를 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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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수아지크 미슐로 지음, 이현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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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크림색의 책표지와 그 속에 그려진 창문 하나.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과연 나인가, 무엇인가.

이제 명상은 꽤 비즈니스적인 말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정도로 많은 현대인들은 ‘명상’이란 단어에 기대 지금의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도달하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눈 감고 ‘명상 시작~!’하면 온갖 잡념의 끄트머리까지 보게 된다. 이번 을유문화사의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은 좀 신기한 명상록이랄까?

이 책의 목적은 단 하나다.

수도자들은 순례길 위에서 시를 읊었고 은자들은 즉흥적으로 노래를 지어 부르거나 그림이나 서예에 몰두하면서 명상을 했다. 명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과 비물질 사이 빈 곳에 위치하는 내면의 운동이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개 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예술 작품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책에서 발췌>


그래서 우리가 이번 책을 통해 담아갈 것은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매개장치로서 예술을 바라보고 작가가 안내하는 명상의 길로 차분히 들어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한 번만 읽고 딱 끝내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페이지를 곱씹으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처음에는 그림 한번, 글 한번.

두번째는 그림만 집중적으로 한번 더 보고, 마지막으로 글을 다시 꼭꼭 씹어 읽는다면 예술 작품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명상의 길로 이끄는지 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작품이 내 마음에 와닿진 않았지만 꽤 많은 페이지에 인덱스를 붙이고 귀퉁이를 접은 걸 보면 그동안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꼈던 명상의 본질을 눈으로 확인하며 더욱 쉽게 다가간 것 같다.

작가가 안내하는 예술 작품은 독자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명상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매개체가 된다. 처음에는 과연 이 그림 혹은 작품에서 우리가 뭘 알 수 있을까 싶은데 옆에 글이 나란히 놓이면 우리는 머릿 속이 아닌 눈으로 직관하며 저절로 명상의 초입에 다다른다. 특히 나처럼 눈만 감으면 수많은 생각의 꼬리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에게는 하나에 한 글, 한 작품에 하나의 명상록을 간직하는 것이 더없이 단순한 수행의 길이 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기대하는 명상의 역할을 뒤로하고 진정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고야의 <수프를 먹는 두 노인>의 그림을 빌려왔다. 늙고 추레한 노인이 표정에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직관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피할 수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 명상이란 점을 일깨운다.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자기 마음을 통제하고 세상의 불안을 이기는 방법으로 명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가만히 바라보며 인지하는 것부터 우리는 명상으로 다시 배워야 한다.

결국 명상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시작하는 일이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에 살지 않는, 지금 여기에서. 그런 의미로 화가가 그린 정물화에서 모든 사물은 거기에 그대로 존재하는 그것이며, 그것이 전부이고 모두다. 오직 그것. 작가는 “정물화가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다. 빈약하고 체념 어린 만족감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평범하게 방치하지 않는 만족감.”이라고 표현했다. 완벽히 딱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술관에서 그냥 지나치던 그림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물의 각도를 틀어 명상의 길로 잇는 디테일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 계기가 무척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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