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수아지크 미슐로 지음, 이현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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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크림색의 책표지와 그 속에 그려진 창문 하나.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과연 나인가, 무엇인가.

이제 명상은 꽤 비즈니스적인 말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정도로 많은 현대인들은 ‘명상’이란 단어에 기대 지금의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도달하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눈 감고 ‘명상 시작~!’하면 온갖 잡념의 끄트머리까지 보게 된다. 이번 을유문화사의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은 좀 신기한 명상록이랄까?

이 책의 목적은 단 하나다.

수도자들은 순례길 위에서 시를 읊었고 은자들은 즉흥적으로 노래를 지어 부르거나 그림이나 서예에 몰두하면서 명상을 했다. 명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과 비물질 사이 빈 곳에 위치하는 내면의 운동이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개 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예술 작품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책에서 발췌>


그래서 우리가 이번 책을 통해 담아갈 것은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매개장치로서 예술을 바라보고 작가가 안내하는 명상의 길로 차분히 들어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한 번만 읽고 딱 끝내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페이지를 곱씹으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처음에는 그림 한번, 글 한번.

두번째는 그림만 집중적으로 한번 더 보고, 마지막으로 글을 다시 꼭꼭 씹어 읽는다면 예술 작품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명상의 길로 이끄는지 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작품이 내 마음에 와닿진 않았지만 꽤 많은 페이지에 인덱스를 붙이고 귀퉁이를 접은 걸 보면 그동안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꼈던 명상의 본질을 눈으로 확인하며 더욱 쉽게 다가간 것 같다.

작가가 안내하는 예술 작품은 독자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명상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매개체가 된다. 처음에는 과연 이 그림 혹은 작품에서 우리가 뭘 알 수 있을까 싶은데 옆에 글이 나란히 놓이면 우리는 머릿 속이 아닌 눈으로 직관하며 저절로 명상의 초입에 다다른다. 특히 나처럼 눈만 감으면 수많은 생각의 꼬리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에게는 하나에 한 글, 한 작품에 하나의 명상록을 간직하는 것이 더없이 단순한 수행의 길이 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기대하는 명상의 역할을 뒤로하고 진정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고야의 <수프를 먹는 두 노인>의 그림을 빌려왔다. 늙고 추레한 노인이 표정에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직관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피할 수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 명상이란 점을 일깨운다.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자기 마음을 통제하고 세상의 불안을 이기는 방법으로 명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가만히 바라보며 인지하는 것부터 우리는 명상으로 다시 배워야 한다.

결국 명상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시작하는 일이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에 살지 않는, 지금 여기에서. 그런 의미로 화가가 그린 정물화에서 모든 사물은 거기에 그대로 존재하는 그것이며, 그것이 전부이고 모두다. 오직 그것. 작가는 “정물화가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다. 빈약하고 체념 어린 만족감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평범하게 방치하지 않는 만족감.”이라고 표현했다. 완벽히 딱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술관에서 그냥 지나치던 그림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물의 각도를 틀어 명상의 길로 잇는 디테일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 계기가 무척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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