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군주론> 읽어 본 사람이다! 독서 모임의 최대 장점이라고 한다면 평소라면 내 의지로 읽지 않았을 책을 읽게 된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조직 내 권력이나 정치 같은 것에 정말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는 내게 <군주론>은 딱 그런 책이었다.
마키아벨리 사후에 출간된 것으로 잘 알려진 <군주론>처럼 극과 극의 평가로 나뉘는 책도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치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인생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권모술수만으로 가득한 ‘악마의 책’처럼 여겨지니까.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별개로 양쪽의 평가 모두 어느 정도는 수긍하게 된다.
우선 이 책, 제목이 주는 중압감에 비해 굉장히 술술 읽힌다. 군.주.론. 뭔가 무겁고 재미없어 보이지 않나? 그런데 막상 읽어 보면 의외로 속도감이 있다. 아무래도 <군주론>이 15세기 이탈리아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고대 로마부터 중세까지의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자신의 주장 근거로 끌어오기 때문에 처음엔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명분이나 과정보다 실리와 결과를 중시하는 마키아벨리의 성향답게 필요한 이야기만 군더더기 없이 끌고 와 의외로 읽는 맛이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굉장히 명확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마치 자기계발서처럼 직설적인 화법이 이어지는데, 이는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원래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일했지만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되찾으면서 실각했고 결국 고문과 추방까지 당하게 된다. 시골로 쫓겨나 사실상 실업자 신세가 된 그가 다시 메디치 가문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쓴 책이 바로 <군주론>이다. 이를테면 이 책은 그의 취업 포트폴리오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책의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간결하고 선명해진다.
내가 <군주론>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낀 지점은 정치와 윤리의 분리에 있다. 흔히 우리는 정치와 윤리는 분리될 수 없으며, ‘정치 없는 윤리’는 무력하고 ‘윤리 없는 정치’는 가혹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어쩌면 그 ‘윤리 없는 정치’를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처럼 보인다. 물론 ‘윤리 없는’이라는 표현은 다소 비약일 수 있다. 다만 그가 정치에서 의도보다 결과를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그의 신념은 폭력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불신 역시 엿볼 수 있는데, 이런 지점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속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마키아벨리의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하지는 않는다. 결과만을 위해 윤리를 유예하기 시작한 정치는 결국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기술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정치가 현실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윤리의 후퇴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윤리는 정치의 발목을 붙드는 장애물이 아니라 권력이 끝내 넘어서는 안 될 마지막 경계에 가깝다.
그럼에도 <군주론>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비도덕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라 혼란한 시대 속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위험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는 듯하다.
* 이 책은 출판사 까치의 독서모임 지원으로 제공받았으며 직접 책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