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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수필집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9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4월
평점 :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같은 사람을 보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든다. ‘위험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닮고 싶다.’ 자신의 신념을 이토록 결기 있게 밀어붙이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은 내게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의 신념에서 오만과 독선, 심지어는 위험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확신에 찬 어조가 얕고 부박한 치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숙고 끝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질 때면, 오히려 그를 우러러보게 된다. 나에게는 과연 목숨을 걸 만한 신념이 있었던가.
문예출판사의 『시민 불복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 수필 아홉 편을 엮은 산문집이다. 그중 앞의 두 편인 <시민 불복종>과 <존 브라운 대위를 위한 청원>은 소로의 저항 정신이 강하게 드러나는 선 굵은 글이고, 이후 이어지는 글들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월든>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관찰한 기록에 가깝다.
하지만 이 두 갈래의 글이 칼로 자르듯 명확히 나뉘는 것은 아니다. 소로에게 있어 자연을 거니는 ‘산책’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문명과 제도, 권력에 대한 저항처럼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산책은 진정한 야생의 삶과 접촉하는 통로이며, 인간이 본래의 자유를 회복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산책>에 담긴 사유는 <시민 불복종>과 <존 브라운 대위를 위한 청원>에서 줄곧 드러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저항의 목소리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불의에 맞서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로는 노예제를 방관하는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시민 불복종>). 그리고 모두가 머뭇거릴 때, 홀로 행동에 나선 사람을 위해 기꺼이 변호를 자처한다(<존 브라운 대위를 위한 청원>).
내가 특히 흥미롭게 느낀 것은 소로가 가진 선(善)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 선한 의견을 품는 것보다 자기 삶으로 그 선을 직접 증명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다수의 미온적이고 표현되지 않는 선의보다 소수의 뜨겁고 선명한 행동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얼핏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역사 진보의 바퀴는 언제나 소수의 깨어 있고 용감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절대선은 누룩이 되어 온 반죽을 부풀리기 때문이다.”(18p)라는 그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미국이 독립과 자유의 정신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왜 오랫동안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아 왔는지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의 급진적이고 단호한 신념은 다소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다만 마틴 루서 킹이 말했듯, <시민 불복종>의 핵심을 ‘악에 협력하지 않는 것’에 둔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내가 대단한 선을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악에 협력하지 않을 용기를 지닌다면 세상은 아주 조금씩은 나아질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언급되는 아이히만처럼 악은 언제나 거대한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루의 침묵과 외면 속으로도 조용히 스며든다. 어제 하루 은밀하게 숨어들어왔을지 모르는 악에게 나는 과연 협력하지는 않았는지 곰곰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