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 - 전3권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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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마틸다' 등의 소설로 유명한 로알드 달. 에드거 앨런 포 상,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 수상에 빛나는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수식어를 가진 작가이며, 2000년에는 '세계 책의 날' 설문조사에서 전 세계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뽑히기도 하였다.
 
이 책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개성 넘치는 스토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반전이다. 한 권, 두 권 읽어나가다 보면 단편마다 이야기 말미에 상황을 뒤엎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반전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지 유추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잔인하거나 무섭지도 않은 것이 오묘하게 읽는 사람을 홀리고 때론 허탈하게 만든다.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그의 명성에 걸맞는 기묘하고 소름끼치는 단편들을 읽고 있자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 있다. 책을 오후에 집어들면 어느새 저녁, 저녁에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새벽 이런 식이다. 비슷한 구조의 단편들이 반복됨에도 지루하지 않고,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들이 이렇게까지 편하고 재밌게 부담없이 읽히는데는 깔끔하고 재치있는 번역이 한몫한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쓰인 관용적인 표현들이 이야기의 분위기나 말의 뉘앙스를 한층 돋보일 수 있게끔 사용되었다. 정영목 외 여러 역자분들의 세심한 번역이 빛을 발한 단편집이라는 생각이 읽으면서 절로 들었다.
 
또한 비교적 짧은 분량의 단편들로 구성된 만큼 청소년부터 성인 할 것 없이 모든 연령, 세대가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세트의 장점이다. 누가 읽어도 평균 이상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확신한다. 세 권이라는 세트 구성과 디자인적 요소들도 모두 훌륭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권의 단편들이 어떤 기준과 맥락에서 편집되었는지가 독자로서 잘 와닿지 않았다. 그 점이 좀 더 분명했다면 더욱 만족스럽게 읽었을 것 같다. 청소년기에 로알드 달 소설 좀 읽어본 독자라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진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만약 작가를 처음 접했다면 장편도 읽어보고 싶어지는 그런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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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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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마빈 해리스(1927~2001)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세계 곳곳을 답사하면서 문화유물론의 체계를 정립하였다. 특히 문화생태학적 측면에서 가족, 정치, 경제 제도 등의 진화나 발전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대표 저서에는 <인류학 이론의 기원-문화 이론의 역사>, <문화의 수수께끼> 등이 있다.(두산백과)
* 문화유물론?
문화유물론은 영국의 문화비평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창시한 문화비평 용어이다. 인간 문화의 많은 측면을 적절히 설명하는 데에는 물질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제시한 접근이다. 마빈 해리스는 문화생태학적, 문화유물론적 관점에서 문화의 물질적 근거를 파헤치는 데 주력했기에 이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다. 
* < 문화의 수수께끼> 리뷰 및 분석
마빈 해리스는 첫 장부터 밑도 끝도 없이 암소숭배 문화를 객관적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돼지숭배와 돼지혐오, 원시전쟁, 극단적인 남성 우월주의 쇼비니즘, 포틀래치와 관련한 과시욕과 호혜성, 유령화물과 화물숭배, 그리스도와 전투적 메시아니즘, 마녀를 둘러싼 종교재판과 체제유지 그리고 반문화를 나열해 분석한다.
독자로서 흔히 다뤄지지 않는 주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또 편집 면에서도 시간의 흐름과 주제별 그룹화 이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구성이라 만족스러웠다.
그동안 너무도 많은 세계의 문화를 그냥 원래 그런 거야, 그들만의 문화니까 하며 넘겨짚고 지나쳤던 순간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문화를 아끼고 관심있어 한다는 말을 그렇게 하고 다니면서 말이다. 동의하기 힘든 주장도 있으나 저자가 수수께기 같은 문화에 접근한 방식, 그 시각만큼은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특히 인상깊었던 에필로그 구절.
"나는 생활양식의 현상들을 잘 이해할 경우 도래하게 될 천년 왕국적인 찬란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적인 의식을 비신화하려 애씀으로써 평화와 정치, 경제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건강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내가 느끼기에 마빈 해리스의 말대로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다소 신비스럽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수수께끼를 풀듯 파헤쳐보면 그 이면에 숨겨진 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뚜렷한 이유가 없을 것만 같은 문화적 현상들을 말과 글로 설명하려 노력한 그가 사뭇 대단하다. 더불어 마지막에 언급한 반문화운동에 대한 경계와 비판까지... 의견은 갈릴지언정 제목에서 담고자 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쏟아부었음을 알 수 있었다.
* < 문화의 수수께끼> 한줄평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 지성사적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문화'를 자신만의 독특한 유물론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증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누구나 한번쯤 건드려 읽어볼 만한 가치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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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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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도무지 '분석'이 안 되는 작품. 필자 역시 페란테 열병을 앓는 것 마냥 끙끙거리며 끝을 본 소설이다. 점점 낯설어져만 가는 '사춘기'라는 단어가 주제인 소설임에도 13세 소녀 조반나에게 이입해 긴장감 넘치는 긴 시간을 보낸 기분이었다.

 

1) 처음

 

조반나는 모든 게 처음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옆에 있던 나폴리 중산층 부모님, 남부러울 것 없던 환경, 그 속에서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던 자신. 13년간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마주친 또 다른 세상. 모든 게 처음인 또다른 세계. 그 세계는 조반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에 걸음을 내딛게 한다.(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랐다.) 처음보는 부모님의 단점,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처음 본 고모, 처음 겪는 가슴 저릿한 사랑. 처음이 주는 짜릿한 설렘과 팔을 스치는 서늘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어리고 서툴러 완전할 수 없는 10대 소녀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며 작품 속 어떤 한 구절, 한 대사는 분명 독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 것이다.

 

2) 사춘기, 위선 그리고 성장

 

인간은 평생에 한번은 사춘기를 겪는다고 한다. 그 시기가 대부분 10대 즈음이라 그렇지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참고 참았던 사춘기가 한순간 발현해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반나처럼 10대의 사춘기를 그래도 나름 천천히 음미하며 지나가는 것만이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궁금한 건 집요하게 파헤치고, 납득할 때까지 물고 늘어지고, 때론 치기어린 반항으로 주위를 놀라게도 하며.

 

조반나가 위선을 알게 된 계기는 그녀의 부모님이다. 식탁 밑으로 얽혀있는 어머니와 다른 아저씨의 다리, 완벽한 학자 그 자체였던 아버지의 흠과 결점.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바라보며 위선을 느끼는 조반나의 심정과 혼란스러움을 페란테는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 역시 미완의 존재임을 깨달아 가는 조반나의 이야기의 끝은 예상할 수 있듯 명료하지 않다. 이 작품은 자아와 타인의 내면에 자리한 위선을 서서히 받아들여가는, 슬프지만 불가피한 과정이 담긴 성장소설이다. 그저 밝고 해맑은, 희망과 용기로 닥친 위기를 이겨내는 형태의 성장이 아니다. 성장하는 지도 모르는 채 눈앞에 놓인 변화에 맞서고 순간에 몰입해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성장을 보여준다. 어쩌면 조반나가 보여준 성장의 모습이 페란테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성장의 전형이 아닐까.

집을 떠나기 2년 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가 매우 못생겼다고 했다. 신혼 시절 장만한 리오네 알토 구역 산 지아코모 데이 카프리카 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는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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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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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사건의 대체적인 줄거리, 사물의 테두리나 대강의 모습이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끈 건 그 밑에 자리한 색다른 풀이였는데.. "인지적으로 낱말이 지시하는 실체를 받아들이는 틀. 바탕이 되는 큰 단위에서 하위 구조를 부각시킴으로써 나타난다."였다. 레이첼 커스크가 의도한 '윤곽'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 레이첼 커스크의 <윤곽>

이 소설은 이혼을 겪은 한 작가 파예가 아테네로 글쓰기 강의 하러 떠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점차 갖춰져 가는 화자의 윤곽에 대한 이야기다.

 

| 작가 '레이첼 커스크(Rachel Cusk, 1967~)'

1967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레이첼 커스크는 어린 시절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후 1974년 영국으로 이주해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첫 소설 『아그네스 구하기』(SAVING AGNES, 휘트브레드 신인소설가상)를 1993년에 출간한 이후,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생활』(THE COUNTRY LIFE, 서머싯 몸상 수상),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ARLINGTON PARK, 오렌지상 최종 후보), 『운 좋은 사람들』(THE LUCKY ONES, 휘트브레드 소설상 최종 후보), 『우리에 갇혀』(IN THE FOLD, 맨부커상 후보) 등 그녀의 소설은 주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여성상과 이에 대한 풍자를 주제로 했다. 지금까지 모두 아홉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2003년에는 『그란타 매거진』이 선정하는 ‘영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로 뽑혔다. 루퍼트 굴드가 연출하고, 레이첼 커스크가 각본을 쓴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MEDEA, 2015)는 수잔 스미스 블랙번상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10년간의 결혼 생활과 이혼의 아픈 경험을 대담하고 솔직하게 담은 그녀의 회고록 『후유증: 결혼과 이혼』(AFTERMATH: ON MARRIAGE AND SEPARATION, 2012)은 영국 문단에 큰 파장과 논쟁을 낳았다. 긴 공백 후, 커스크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견해는 피하면서 서사적 관습에서 벗어나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윤곽 3부작’인 『윤곽』(OUTLINE, 2014), 『환승』(TRANSIT, 2016), 『영광』(KUDOS, 2018)으로 발전했고, 해외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소설의 특징

분명 화자가 존재하는데 그 존재가 요란하지 않다. 깊고 낮게 움직이는 화자는 소설에서 주로 청자의 역할을 한다. 타인의 말을 듣고 듣고 경청한다. 듣고 행위의 반복으로 인해 독자들 역시 끊임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경청을 거듭하던 화자는 어느 한 순간 삶의 윤곽이 이어져감을 느낀다. 독자는 그 사실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익숙하면서도 독창적이라 더욱 매력적인 서술방식이다. 어딘지 빈 듯한 이질적인 서술이 작품의 스토리, 제목의 전달을 극대화한다.

또 장편소설임에도 단편소설의 장점을 지녔다. 파편적인 이야기가 한데 묶인, 그러면서도 서로 비슷한 흐름 위에 위치한 소설을 엮은 단편집을 읽는 묘한 감정을 선사한다. 그로 인해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사랑, 상실, 단절, 후회, 오해, 깨달음이 더욱 크게 와닿는다. 독자는 같은 처지의 인물에 공감할 수도, 화자처럼 묵묵히 들을 수도, 약간 떨어져 인물들과 화자를 주시할 수도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지점에서 반응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도 열린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개인적인 감상

여정 중 만난 여러 사람들의 독백을 들은 화자는 점차 자신의 윤곽을 완성해나가는데 이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자명한 사실이나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은 늘 멀고 손에 쥘 듯 애타는 것은 손에 넣으면 눈 깜빡할 사이 바스라져 사라진다.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가진 윤곽은 감각으로 인지가 가능한 신체 하나뿐이다. 인생의 빈틈없는 윤곽이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 상실, 단절같은 조그만 파편들이 모여 삶의 윤곽을 이룬다.

삶의 윤곽이 흐릿할 때가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보통 윤곽을 채워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더 선명하게 더 진하게 안간힘을 써서 지워지지 않는 윤곽선을 그려나가고자 계획하고 실천하고 소통한다. 그렇게 모양을 잡아온 윤곽이 흐릿해질 때 찾아오는 무력감은 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가끔은 선이 엇나가도 돼, 약간은 뒤틀려도 돼, 흐릿해져도 괜찮아 이렇게 말해줄 것만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윤곽>을 읽고 일종의 용기를 얻었다.

 

| 문장수집

p.14 나는 런던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에 시골집에서 이사를 했는데, 그 집에서 아이들과 지난 3년 동안 살았고, 그 전에는 7년 동안 남편도 함께 살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건 가정이었고, 그곳에 살면서 그 집이 무언가의 무덤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무언가가 현실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p.89 나는 원하는 만큼 멀리 헤엄쳐나갈 수도 있었고, 거기서 그대로 익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동, 자유롭고 싶다는 그 욕망마저도 내게는 여전히 어떤 강박이었다. 나는 그 충동과 관련한 모든 것이 환영에 불과함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그 존재만큼은 여전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 한줄평

원래대로 돌아올 걸 알면서도 자꾸만 흐릿해지는 삶을 위로받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

나는 런던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에 시골집에서 이사를 했는데, 그 집에서 아이들과 지난 3년 동안 살았고, 그 전에는 7년 동안 남편도 함께 살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건 가정이었고, 그곳에 살면서 그 집이 무언가의 무덤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무언가가 현실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 P14

나는 원하는 만큼 멀리 헤엄쳐나갈 수도 있었고, 거기서 그대로 익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동, 자유롭고 싶다는 그 욕망마저도 내게는 여전히 어떤 강박이었다. 나는 그 충동과 관련한 모든 것이 환영에 불과함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그 존재만큼은 여전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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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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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열대' 책소개

 

'슬픈 열대'는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집필한 인류학서로 현대 구조주의 사상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책으로 평가된다. 저자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카두베오, 보로로, 남비콰라, 투비 카와이브족)의 원시사회와 문화를 통해 문명과 야만의 개념을 비판하였다.

 

| 저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나 생후 2개월 때 파리로 갔다. 파리 대학 법학부와 문학부에 입학하여 1930년 법학사와 철학사에서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에는 조르주 뒤마의 강의를 듣고 임상심리학·정신분석학 등에 흥미를 가졌고, 루소의 저작들도 탐독하였으나 이때까지는 인류학이나 민족학에 아직 관심을 두지 않아 마르셀 모스의 강의도 청강하지 못했다. 합격하기 어려운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최연소자로 붙었으며, 세 사람이 한 조가 되는 교육실습에서 메를로-퐁티와 같은 조가 되어 그와 친교를 맺었다. 1933년에 우연히 로버트 로위의 『미개사유』를 읽게 되어 강한 감명을 받고 인류학·민족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을 방문·조사하여 「보로로족의 사회조직에 대한 연구」 「문명화된 야만인 가운데서」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대학을 떠나 1년 간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히브족 등의 원주민 사회를 조사하기도 하였다. 1941년에는 미국으로 가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연구하였고, 미국으로 망명해온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 야콥슨과 알게 되어 언어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야콥슨과 공동으로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을 발표하였다. 이후 프랑스로 귀국하여 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학위논문이 『친족의 기본구조』라는 책으로 출판되자 프랑스 학계와 사상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밖에도 『슬픈열대』 『구조인류학』 『오늘날의 토테미즘』 『야생의 사고』 『신화학』(1:날것과 익힌 것, 2:꿀에서 재까지, 3:식사예절의 기원, 4:벌거벗은 인간)등 굵직한 저술들을 내놓아 사상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콜레주 드 프랑스와 파리 대학 고등연구원에서 교수를 지냈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있었으며, 향년 100세로 2009년 10월 30일 타계했다. [예스24 제공]

 

| 구성 및 내용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보이는 것은 레비-스트로스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부족의 사진이다. 잡지와 같은 질감의 종이에 새겨진 강렬한 사진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뒤이어 옮긴이의 말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레비-스트로스의 사상과 '슬픈 열대')가 등장한다. 저자의 생애와 구조주의와의 관계, 책의 내용 등을 설명한다. 옮긴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레비-스트로스의 기행이 시작된다. 탐사의 시작과 목적, 네 원주민 부족에 대한 기록, 귀로의 여정이 책의 남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구조주의는 사회현상의 개별 요소보다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얼개를 상위에 두고 파악하려는 철학 및 사회학의 한 경향이다레비-스트로스는 사람들의 인지구조, 즉 사람들이 주위세계의 사물들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방식을 파악함으로써 문화를 해석하고자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인류학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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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슬픈 열대'의 주요 내용은 저자가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p.67)이나 그저 하나의 기행문으로 치부하는 건 그릇된 생각이다. 인류학적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민족학에의 입문, 원주민 사회의 비애감 등(옮긴이의 말 참고)을 설명한다. 인상깊은 점은 치밀한 관찰과 분석을 뛰어넘는 저자의 진솔한 연구의 기록이다. 누군가의 일기를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서술 방식이 방대한 분량을 잊게 만든다. 저자의 이론적 배경과 연구 성과를 모두 이해하진 못해도 당시에 그가 어떤 마음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절로 느껴진다. 간결하게 번역된 문장은 독자가 숨쉴 틈을 비워놓는다. 개인적인 감상은 문명과 야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 뜻깊었고, 부끄럽게도 관심조차 없었던 열대 부족을 조금이나마 그려보는 계기가 되어 뿌듯했다.

            

| 문장수집

p.100 이처럼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의 사회에 대해 동경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비인간적인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해 명백한 분노와 깊은 우수를 나타내고 있다.

p.453 한 사회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와의 관계를 다루는 관점은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종교적 사고법을 통해서 살아 있는 자들 상호간에 실존하는 관계를 숨기거나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진리는 은폐할 수가 없다.

p.577 나는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어 있는 사회를 찾아 다녔다. 그런데 바로 남비콰라족의 사회가 내가 그 사회에서 오직 인간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단순화된 상태에 있었다.

p.742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내가 일생을 바쳐서 목록을 작성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제도나 풍습 또는 관습들은 만약 이것들이 인간성으로 하여금 그것의 운명지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무의미해지고 마는 어떤 창조적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개화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독립적인 위치를 배당하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 자신이 저주받을지라도 그의 헛된 노력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몰락과정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처럼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의 사회에 대해 동경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비인간적인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해 명백한 분노와 깊은 우수를 나타내고 있다. - P100

한 사회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와의 관계를 다루는 관점은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종교적 사고법을 통해서 살아 있는 자들 상호간에 실존하는 관계를 숨기거나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진리는 은폐할 수가 없다. - P453

나는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어 있는 사회를 찾아 다녔다. 그런데 바로 남비콰라족의 사회가 내가 그 사회에서 오직 인간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단순화된 상태에 있었다. - P577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내가 일생을 바쳐서 목록을 작성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제도나 풍습 또는 관습들은 만약 이것들이 인간성으로 하여금 그것의 운명지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무의미해지고 마는 어떤 창조적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개화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독립적인 위치를 배당하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 자신이 저주받을지라도 그의 헛된 노력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몰락과정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 P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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