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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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도무지 '분석'이 안 되는 작품. 필자 역시 페란테 열병을 앓는 것 마냥 끙끙거리며 끝을 본 소설이다. 점점 낯설어져만 가는 '사춘기'라는 단어가 주제인 소설임에도 13세 소녀 조반나에게 이입해 긴장감 넘치는 긴 시간을 보낸 기분이었다.

 

1) 처음

 

조반나는 모든 게 처음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옆에 있던 나폴리 중산층 부모님, 남부러울 것 없던 환경, 그 속에서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던 자신. 13년간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마주친 또 다른 세상. 모든 게 처음인 또다른 세계. 그 세계는 조반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에 걸음을 내딛게 한다.(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랐다.) 처음보는 부모님의 단점, 그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처음 본 고모, 처음 겪는 가슴 저릿한 사랑. 처음이 주는 짜릿한 설렘과 팔을 스치는 서늘한 두려움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어리고 서툴러 완전할 수 없는 10대 소녀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며 작품 속 어떤 한 구절, 한 대사는 분명 독자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 것이다.

 

2) 사춘기, 위선 그리고 성장

 

인간은 평생에 한번은 사춘기를 겪는다고 한다. 그 시기가 대부분 10대 즈음이라 그렇지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참고 참았던 사춘기가 한순간 발현해 남모르게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반나처럼 10대의 사춘기를 그래도 나름 천천히 음미하며 지나가는 것만이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궁금한 건 집요하게 파헤치고, 납득할 때까지 물고 늘어지고, 때론 치기어린 반항으로 주위를 놀라게도 하며.

 

조반나가 위선을 알게 된 계기는 그녀의 부모님이다. 식탁 밑으로 얽혀있는 어머니와 다른 아저씨의 다리, 완벽한 학자 그 자체였던 아버지의 흠과 결점.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바라보며 위선을 느끼는 조반나의 심정과 혼란스러움을 페란테는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 역시 미완의 존재임을 깨달아 가는 조반나의 이야기의 끝은 예상할 수 있듯 명료하지 않다. 이 작품은 자아와 타인의 내면에 자리한 위선을 서서히 받아들여가는, 슬프지만 불가피한 과정이 담긴 성장소설이다. 그저 밝고 해맑은, 희망과 용기로 닥친 위기를 이겨내는 형태의 성장이 아니다. 성장하는 지도 모르는 채 눈앞에 놓인 변화에 맞서고 순간에 몰입해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성장을 보여준다. 어쩌면 조반나가 보여준 성장의 모습이 페란테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성장의 전형이 아닐까.

집을 떠나기 2년 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가 매우 못생겼다고 했다. 신혼 시절 장만한 리오네 알토 구역 산 지아코모 데이 카프리카 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는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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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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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사건의 대체적인 줄거리, 사물의 테두리나 대강의 모습이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끈 건 그 밑에 자리한 색다른 풀이였는데.. "인지적으로 낱말이 지시하는 실체를 받아들이는 틀. 바탕이 되는 큰 단위에서 하위 구조를 부각시킴으로써 나타난다."였다. 레이첼 커스크가 의도한 '윤곽'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 레이첼 커스크의 <윤곽>

이 소설은 이혼을 겪은 한 작가 파예가 아테네로 글쓰기 강의 하러 떠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점차 갖춰져 가는 화자의 윤곽에 대한 이야기다.

 

| 작가 '레이첼 커스크(Rachel Cusk, 1967~)'

1967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레이첼 커스크는 어린 시절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후 1974년 영국으로 이주해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첫 소설 『아그네스 구하기』(SAVING AGNES, 휘트브레드 신인소설가상)를 1993년에 출간한 이후,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생활』(THE COUNTRY LIFE, 서머싯 몸상 수상),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ARLINGTON PARK, 오렌지상 최종 후보), 『운 좋은 사람들』(THE LUCKY ONES, 휘트브레드 소설상 최종 후보), 『우리에 갇혀』(IN THE FOLD, 맨부커상 후보) 등 그녀의 소설은 주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여성상과 이에 대한 풍자를 주제로 했다. 지금까지 모두 아홉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2003년에는 『그란타 매거진』이 선정하는 ‘영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로 뽑혔다. 루퍼트 굴드가 연출하고, 레이첼 커스크가 각본을 쓴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MEDEA, 2015)는 수잔 스미스 블랙번상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10년간의 결혼 생활과 이혼의 아픈 경험을 대담하고 솔직하게 담은 그녀의 회고록 『후유증: 결혼과 이혼』(AFTERMATH: ON MARRIAGE AND SEPARATION, 2012)은 영국 문단에 큰 파장과 논쟁을 낳았다. 긴 공백 후, 커스크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견해는 피하면서 서사적 관습에서 벗어나 개인적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윤곽 3부작’인 『윤곽』(OUTLINE, 2014), 『환승』(TRANSIT, 2016), 『영광』(KUDOS, 2018)으로 발전했고, 해외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소설의 특징

분명 화자가 존재하는데 그 존재가 요란하지 않다. 깊고 낮게 움직이는 화자는 소설에서 주로 청자의 역할을 한다. 타인의 말을 듣고 듣고 경청한다. 듣고 행위의 반복으로 인해 독자들 역시 끊임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경청을 거듭하던 화자는 어느 한 순간 삶의 윤곽이 이어져감을 느낀다. 독자는 그 사실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다. 익숙하면서도 독창적이라 더욱 매력적인 서술방식이다. 어딘지 빈 듯한 이질적인 서술이 작품의 스토리, 제목의 전달을 극대화한다.

또 장편소설임에도 단편소설의 장점을 지녔다. 파편적인 이야기가 한데 묶인, 그러면서도 서로 비슷한 흐름 위에 위치한 소설을 엮은 단편집을 읽는 묘한 감정을 선사한다. 그로 인해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사랑, 상실, 단절, 후회, 오해, 깨달음이 더욱 크게 와닿는다. 독자는 같은 처지의 인물에 공감할 수도, 화자처럼 묵묵히 들을 수도, 약간 떨어져 인물들과 화자를 주시할 수도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른 지점에서 반응할 수 있는 그 어느 것보다도 열린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 개인적인 감상

여정 중 만난 여러 사람들의 독백을 들은 화자는 점차 자신의 윤곽을 완성해나가는데 이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자명한 사실이나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은 늘 멀고 손에 쥘 듯 애타는 것은 손에 넣으면 눈 깜빡할 사이 바스라져 사라진다.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가진 윤곽은 감각으로 인지가 가능한 신체 하나뿐이다. 인생의 빈틈없는 윤곽이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 상실, 단절같은 조그만 파편들이 모여 삶의 윤곽을 이룬다.

삶의 윤곽이 흐릿할 때가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보통 윤곽을 채워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더 선명하게 더 진하게 안간힘을 써서 지워지지 않는 윤곽선을 그려나가고자 계획하고 실천하고 소통한다. 그렇게 모양을 잡아온 윤곽이 흐릿해질 때 찾아오는 무력감은 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가끔은 선이 엇나가도 돼, 약간은 뒤틀려도 돼, 흐릿해져도 괜찮아 이렇게 말해줄 것만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윤곽>을 읽고 일종의 용기를 얻었다.

 

| 문장수집

p.14 나는 런던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에 시골집에서 이사를 했는데, 그 집에서 아이들과 지난 3년 동안 살았고, 그 전에는 7년 동안 남편도 함께 살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건 가정이었고, 그곳에 살면서 그 집이 무언가의 무덤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무언가가 현실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p.89 나는 원하는 만큼 멀리 헤엄쳐나갈 수도 있었고, 거기서 그대로 익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동, 자유롭고 싶다는 그 욕망마저도 내게는 여전히 어떤 강박이었다. 나는 그 충동과 관련한 모든 것이 환영에 불과함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그 존재만큼은 여전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 한줄평

원래대로 돌아올 걸 알면서도 자꾸만 흐릿해지는 삶을 위로받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책.

나는 런던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에 시골집에서 이사를 했는데, 그 집에서 아이들과 지난 3년 동안 살았고, 그 전에는 7년 동안 남편도 함께 살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건 가정이었고, 그곳에 살면서 그 집이 무언가의 무덤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무언가가 현실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 P14

나는 원하는 만큼 멀리 헤엄쳐나갈 수도 있었고, 거기서 그대로 익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동, 자유롭고 싶다는 그 욕망마저도 내게는 여전히 어떤 강박이었다. 나는 그 충동과 관련한 모든 것이 환영에 불과함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어떤 식으로든, 그 존재만큼은 여전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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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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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열대' 책소개

 

'슬픈 열대'는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집필한 인류학서로 현대 구조주의 사상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책으로 평가된다. 저자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카두베오, 보로로, 남비콰라, 투비 카와이브족)의 원시사회와 문화를 통해 문명과 야만의 개념을 비판하였다.

 

| 저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나 생후 2개월 때 파리로 갔다. 파리 대학 법학부와 문학부에 입학하여 1930년 법학사와 철학사에서 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에는 조르주 뒤마의 강의를 듣고 임상심리학·정신분석학 등에 흥미를 가졌고, 루소의 저작들도 탐독하였으나 이때까지는 인류학이나 민족학에 아직 관심을 두지 않아 마르셀 모스의 강의도 청강하지 못했다. 합격하기 어려운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최연소자로 붙었으며, 세 사람이 한 조가 되는 교육실습에서 메를로-퐁티와 같은 조가 되어 그와 친교를 맺었다. 1933년에 우연히 로버트 로위의 『미개사유』를 읽게 되어 강한 감명을 받고 인류학·민족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을 방문·조사하여 「보로로족의 사회조직에 대한 연구」 「문명화된 야만인 가운데서」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대학을 떠나 1년 간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히브족 등의 원주민 사회를 조사하기도 하였다. 1941년에는 미국으로 가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연구하였고, 미국으로 망명해온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 야콥슨과 알게 되어 언어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야콥슨과 공동으로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을 발표하였다. 이후 프랑스로 귀국하여 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학위논문이 『친족의 기본구조』라는 책으로 출판되자 프랑스 학계와 사상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밖에도 『슬픈열대』 『구조인류학』 『오늘날의 토테미즘』 『야생의 사고』 『신화학』(1:날것과 익힌 것, 2:꿀에서 재까지, 3:식사예절의 기원, 4:벌거벗은 인간)등 굵직한 저술들을 내놓아 사상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콜레주 드 프랑스와 파리 대학 고등연구원에서 교수를 지냈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있었으며, 향년 100세로 2009년 10월 30일 타계했다. [예스24 제공]

 

| 구성 및 내용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보이는 것은 레비-스트로스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부족의 사진이다. 잡지와 같은 질감의 종이에 새겨진 강렬한 사진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뒤이어 옮긴이의 말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레비-스트로스의 사상과 '슬픈 열대')가 등장한다. 저자의 생애와 구조주의와의 관계, 책의 내용 등을 설명한다. 옮긴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레비-스트로스의 기행이 시작된다. 탐사의 시작과 목적, 네 원주민 부족에 대한 기록, 귀로의 여정이 책의 남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구조주의는 사회현상의 개별 요소보다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얼개를 상위에 두고 파악하려는 철학 및 사회학의 한 경향이다레비-스트로스는 사람들의 인지구조, 즉 사람들이 주위세계의 사물들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방식을 파악함으로써 문화를 해석하고자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인류학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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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슬픈 열대'의 주요 내용은 저자가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p.67)이나 그저 하나의 기행문으로 치부하는 건 그릇된 생각이다. 인류학적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민족학에의 입문, 원주민 사회의 비애감 등(옮긴이의 말 참고)을 설명한다. 인상깊은 점은 치밀한 관찰과 분석을 뛰어넘는 저자의 진솔한 연구의 기록이다. 누군가의 일기를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서술 방식이 방대한 분량을 잊게 만든다. 저자의 이론적 배경과 연구 성과를 모두 이해하진 못해도 당시에 그가 어떤 마음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절로 느껴진다. 간결하게 번역된 문장은 독자가 숨쉴 틈을 비워놓는다. 개인적인 감상은 문명과 야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 뜻깊었고, 부끄럽게도 관심조차 없었던 열대 부족을 조금이나마 그려보는 계기가 되어 뿌듯했다.

            

| 문장수집

p.100 이처럼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의 사회에 대해 동경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비인간적인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해 명백한 분노와 깊은 우수를 나타내고 있다.

p.453 한 사회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와의 관계를 다루는 관점은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종교적 사고법을 통해서 살아 있는 자들 상호간에 실존하는 관계를 숨기거나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진리는 은폐할 수가 없다.

p.577 나는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어 있는 사회를 찾아 다녔다. 그런데 바로 남비콰라족의 사회가 내가 그 사회에서 오직 인간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단순화된 상태에 있었다.

p.742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내가 일생을 바쳐서 목록을 작성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제도나 풍습 또는 관습들은 만약 이것들이 인간성으로 하여금 그것의 운명지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무의미해지고 마는 어떤 창조적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개화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독립적인 위치를 배당하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 자신이 저주받을지라도 그의 헛된 노력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몰락과정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처럼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의 사회에 대해 동경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비인간적인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문명에 대해 명백한 분노와 깊은 우수를 나타내고 있다. - P100

한 사회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와의 관계를 다루는 관점은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종교적 사고법을 통해서 살아 있는 자들 상호간에 실존하는 관계를 숨기거나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진리는 은폐할 수가 없다. - P453

나는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어 있는 사회를 찾아 다녔다. 그런데 바로 남비콰라족의 사회가 내가 그 사회에서 오직 인간만을 발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단순화된 상태에 있었다. - P577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내가 일생을 바쳐서 목록을 작성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될 제도나 풍습 또는 관습들은 만약 이것들이 인간성으로 하여금 그것의 운명지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전혀 무의미해지고 마는 어떤 창조적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개화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독립적인 위치를 배당하지는 않는다. 또한 인간 자신이 저주받을지라도 그의 헛된 노력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몰락과정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 P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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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부한다
퍼 페터슨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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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나는 거부한다'(페르 페테르손, 손화수 역, 한길사, 2020) 리뷰


- 저자 페르 페테르손(Per Petterson, 1952~):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 막노동꾼으로 생활하다 나중에 도서관 사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87년 단편소설집 '내 입안에 재, 내 신발 속에 모래'(Ashes in My Mouth, Sand in My Shoes)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2003년 '말 도둑놀이'(Out Stealing Horses)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노르웨이의 대표작가가 되었다. '말 도둑놀이'는 현재 43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타임'지가 선정한 '2007년 최고의 소설 10편'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 노르웨이 비평가상을 수상한 '나는 시간의 강을 저주한다'(I Curse the River of Time)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 옮긴이 손화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98년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크빈헤라드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2002년부터 노르웨이 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노르웨이 번역인협회 회원(MNO)이 되었고 같은 해 노르웨이 국제문학협회(NORLA)에서 수여하는 번역가상을 받았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시리즈와 '벌들의 역사' '부러진 코를 위한 발라드' '노스트라다무스의 암호' '파리인간' '이케아 사장을 납치한 하롤드 영감' 등을 번역했다. 스테인셰르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철 따라 찾아오는 노르웨이의 백야와 극야를 벗 삼아 책을 읽고 번역을 하고 있다.


- 구성 / 줄거리: 제1~4장 / 우리가 삶에서 거부해야 할 모든 것을 담은 노르웨이 화제작. 『나는 거부한다』는 삶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게 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토미와 짐은 어느 날 다리 위에서 35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난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여섯 명의 화자가 각자의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 과거의 흉터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한다. ‘거부’라는 것은 단지 소극적인 형태의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부’는 가장 용감하고 확실한 행동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삶의 교차로에 서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타협을 거부하고, 용서를 거부하고, 망각을 거부한다. 토미가 무의미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짐이 망각해버린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삶을 향한 의지를 담은 『나는 거부한다』는 읽기는 쉽지만 잊기는 어려운 가족과 친구에 대한 강렬한 이야기다. (책소개 참고)

- 감상:

먼저 책의 물성을 살펴보았다.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소설답게 작품의 극적인 사건을 그린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무난했다. 글자 크기, 자간 모두 가독성있게 편집되었다. 다만 하나의 장편을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한 작가 혹은 편집자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특히 각 장을 나눈 기준이.

작품을 읽었을 뿐인데 가본 적 없는 북유럽의 도시와 풍경이 머리에 그려졌다. 전반적으로 탁월한 묘사가 돋보이며 객관적인 서술방식이 작품의 매력을 살려준다. 핵심 인물인 토미와 짐, 시리, 욘센, 베르그렌 씨 부인이 겪은 몇십 년 간의 일이 책의 큰 줄기이다. 토미, 시리, 쌍둥이가 겪은 아버지의 학대, 짐이 겪은 정신적 문제와 자살시도, 욘센과 베르그렌 씨 부인의 관계 등 인생을 살며 마주쳤을 때 돌파해야만 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불가피해 보이는 일들을 끊임없이 거부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눈 앞에 벌어진, 처절할 정도로 생생한 현실 그리고 살아낼 미래. 이 모두를 거부하는 놀라운 사고의 전환이 인상적인 책이다.

- 서평:

1) 각 인물의 개성과 불친절한 서사
책을 읽으면 각각의 인물의 개성이 유난히 두드러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채 일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불친절한 서사가 특징이다. 이 불친절함이 초반에는 약간의 혼란을 주지만 뒤로 갈수록 해석의 여지를 열어준다. 서사와 더불어 제목마저도 애매모호한데 의도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거부한다'라는 제목도 독특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나'가 누구인지 '무엇'을 거부하는지 작품 전체를 읽어도 명확히 알 순 없다. 거부라는 단어가 등장하긴 하나 격렬한 저항 또는 드라마틱한 극적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2) 시점 변화와 시간 이동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시점 변화도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한 인물의 관점만 드러난 작품과는 달리 인물 대부분의 생각과 가치관이 드러나 복잡한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해준다. 1960년대부터 2006년까지 약 40~50년의 시간 이동이 빈번한 만큼 흐름을 잘 쫓아가면서 읽어야 한다. 작품 속 과거와 현재를 따라가며 변화를 비교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개인적으로 시간 이동의 장점을 백번 살리지 못한 소설이라는 점은 좀 아쉽다. 그러나 제목과 내용의 부족한 개연성에도 열린 결말, 해석의 자유 보장이라 생각하면 그리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
사실 작품 서사 목적과 의미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인물별로 고민, 거부의 주체는 있으나 서술 자체가 담담한 편이라 이질적이고 그 점이 반전을 준다. 작품의 메시지는 다분히 자아성찰적이다. '데미안'을 연상케 하는 부분들도 있고 독자마다 발견하는 교훈이 다를 것 같다. 가족, 우정, 사랑 등 여러 테마가 혼합된 형태로 되어있고 하나의 주제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주제의 불명확성, 급변하는 시간의 인과관계가 작품의 생애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톱니바퀴와 양심에 대한 이야기는 진실인 것 같아." "뭐가?" "양심이란 것은 톱니바퀴나 원형 톱처럼 뾰족한 톱날을 지닌 채 우리의 영혼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이래. 그래서 우리가 나쁜 짓을 하면 뾰족한 톱날에 영혼이 상처를 받고 심지어는 피가 나기도 한대. 그런데도 우리가 나쁜 짓을 계속하게 되는 것은 뾰족하던 톱날이 무뎌져서 그런 거래." "뭐가 어떻게 된다고?" "아주 나쁜 짓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지." - P42

그때 우리는 참 어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세상을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때는 세상이 더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시간도 훨씬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점점 더 나빠 보이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찢어져버린 세상의 조각들이 어제보다 더 많이 보인다. - P130

"죽음을 거부할 이유는 충분해." ... "거부하셔도 돼요."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죽음을 거부할 수는 없어, 친구." "제기랄. 왜 거부할 수 없다는 거죠?" - P133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하얀 환자복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담배를 피워도 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병원 정문 앞에 서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몸을 덜덜 떨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내게 도전과 저항, 일종의 자랑스러움을 가져다주었다. - P190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꺼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대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와 함께 각자 알고 있는 지식과 기억을 나누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진정으로 함께 나누었던 것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 나는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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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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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답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었다."
유홍준 답사의 절정, 실크로드 완결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사막과 오아시스, 미라와 석굴사원을 찾아가는 신비로운 순례길

 

타클라마칸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순례
오늘날 '초원의 길', '오아시스의 길', '바다의 길' 세 갈래인 실크로드는 크게 동부, 중부, 서부 구간으로 나뉜다. 중국편3인 이 책은 그중 실크로드의 중부 구간에 해당한다. 1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 경제적 번영으로 '서역 55국'에서 6개의 연합국가 형태로 통합을 이룬 '서역 6강(저자)'은 다음과 같다.

 

차사국: 투르판, 뒷날 고창국이 됨.
언기국: 카라샤르
구자국: 쿠차
소륵국: 카슈가르
우전국: 호탄
누란국: 누란, 뒷날 선선국이 됨.

 

이 책은 '서역 6강' 중 역사의 자취가 거의 사라진 언기국 답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도시 답사 이야기이다. 다섯 도시에는 천산남로의 투르판과 쿠차, 서역남로의 호탄과 카슈가르, 그리고 모래 속에 파묻힌 누란이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은 남쪽은 곤륜산맥, 북쪽은 천산산맥, 서쪽은 파미르고원, 동쪽은 고비사막에 둘러싸인 달걀 모양의 타림분지 한가운데 위치한다. 책에 수록된 '신강위구르자치구 실크로드 주요 지명 지도'와 '실크로드 북로 중로 남로 지도'를 보면 친숙하지 않은 지명이 눈에 띈다.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는 중국 동부의 대도시와는 달리 타클라마칸사막 주변, 천산산맥 아래로 펼쳐진 오아시스 도시는 그 존재감부터 신비스럽다. 누란부터 카슈가르까지 어쩌면 알지 못한 곳이 아닌 알려 노력하지 않은 지역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유산을 간직한, 반전있는 새로운 모습의 오아시스 도시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편과 같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어렵지 않게 눈으로 답사 여정을 함께할 수 있다. 실감나는 묘사에 가끔 등장하는 소설적 표현이 가미되어
중국 서쪽의 세계, 동서를 잇는 공간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해결해준다. '명불허전'이란 말은 이 책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역사와 미술사, 문화를 아우르는 한편의 답사 지침서이니 말이다.

 

풍부한 사진과 지도 자료는 여정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게끔 도와주고, 뛰어난 필력과 인간적인 감상은 답사의 흐름과 맥락을 잘 보여준다. 그저 책을 읽었을 뿐인데 사막에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로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듯하다. 버스를 타고 유적지에 가는 설렘, 내려서 마주친 놀라운 석굴과 벽화, 그 옆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오아시스 도시를 바라보는 뭉클함, 답사할 수 없는 곳을 두고 돌아서는 아쉬움 등 답사를 하며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책이다.

 

'서역 6강'의 규모나 장엄함보다 놀라운 것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탐험이란 명목으로 행한 문화유산 도굴, 약탈, 훼손이다. 아주 먼 과거에는 정복과 지배, 얼마 안 된 근현대에는 도굴과 약탈의 대상이 된 오아시스 도시들은 저마다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사연들을 사진과 글로 함께 하는 동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한 켠이 무거워진다. 소설에서 얻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감정, 감동을 이 답사기를 통해 얻었다.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배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역사의 빈 공간이 느껴지는 사람,
몇 조각이 빠진 역사의 퍼즐을 완성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p.72 "8박 9일 실크로드 답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풍광은 쿰타크사막이었다."

 

p.86 "쿰타크사막에서 대자연에 압도되는 경외심이 올라왔다면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 삶의 원초적 향기가 일어난다. 앞으로 우리가 만날 또 다른 옛 도시 유적인 고창고성에서는 역사적 향기가 느껴지는데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적 체취가 다가온다. 참으로 위대한 폐허였다."

 

p.170 "우리도 중국을 바라볼 때 중원을 중심으로 했던 왕조만 생각할 것이 아니며 서역과 막북(고비사막 북쪽)의 유목민족들을 함부로 '호(胡)'라고 부르며 오랑캐로 대할 일이 아니다."

 

p.186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p.196 "쿠차의 산에는 장식이라는 것이 없다. 그것은 장식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귀신이 도끼질하고 신이 다듬었다."

 

p.210 "쿠차 사람들은 그 푸르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푸른 하늘은 그 자체가 신이다. 푸르름과 있으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

 

p.261 "본래 폐사지에 오면 종교로서 불교의 자취는 희미해지지만 역사의 자취가 풍기는 처연함이 일어난다. 불교가 폐기된 흔적이지만 이슬람이 폐불한 벽화의 자취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한편으로는 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쿰타크사막에서 대자연에 압도되는 경외심이 올라왔다면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 삶의 원초적 향기가 일어난다. 앞으로 우리가 만날 또 다른 옛 도시 유적인 고창고성에서는 역사적 향기가 느껴지는데 여기서(교하고성)는 인간적 체취가 다가온다. 참으로 위대한 폐허였다. - P86

본래 폐사지에 오면 종교로서 불교의 자취는 희미해지지만 역사의 자취가 풍기는 처연함이 일어난다. 불교가 폐기된 흔적이지만 이슬람이 폐불한 벽화의 자취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한편으로는 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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