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오늘의 젊은 작가 33
김희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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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업이 쇠한 후 황폐해진 마을

화성을 닮은 곳

영화 <배틀 온 마스> 촬영지

전동드릴로 머리를 뚫어 자살한 노인

신생에너지 발전소

바이오 회사 설립


이 모든 것이 극동리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3번째 작품인 김희선 작가의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제목부터가 기묘하다.

요즘 한국 문학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젊은 작가들이 아닌가 싶다. 이미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작가들도 있지만 아직은 생소하고 낯선 작가들의 작품들도 읽어보면 기대 이상인 작품들이 많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문학계의 보석들이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통해 하나씩 그 진가를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김희선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었다. 초록색 배경 위에 사람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의 표지는 어딘가 기묘하다. 손은 잡고 있으나 시선은 모두 제각각이며 서로 마주하지 않는다는 점이 제목만큼이나 불안과 괴리감이 들게 만든다.

소설은 2월 16일 화요일 밤을 시작으로 하여 2월 23일 화요일 아침으로 끝난다. 순차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아니고 중간에는 시간과 날짜가 뒤섞이기도 한다.

광산업이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황폐해지고만 마을.

붉은 토양으로 인해 더욱 화성을 닮은 마을은 영화 촬영지로 선정이 된다.

모두가 보는 광장에서 전동 드릴로 머리에 구멍을 뚫어 자살한 노인.

하지만 그의 사인은 음독자살로 기록된다.

노인 외에도 머리가 뚫려 죽은 시신은 셋. 과거에도 이와 같은 시신이 있었다는 사실.

자신의 할머니가 이상하다는 마을의 유일한 어린이인 경오.

머리가 뚫려 죽은 세구의 시신은 어디로 갔나?

심마니 2명이 새벽에 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머리가 뚫린 시신들을 발견.

이장은 시신을 발견한 심마니 2명을 누군가의 명을 받고 처리한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온갖 떡밥들이 가득하다.

처음에 SF 소설인 줄 알았던 터라 조금 걱정스러운 면이 있었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르가 SF와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고 읽기 시작했을 땐 화성으로 날아간 우주선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최.

하지만 몇 장 넘기고 나면 이 내용이 영화의 한 장면인 것을 깨닫게 된다. "컷" 소리와 함께.

바로 극동리를 배경으로 촬영되고 있는 영화 <배틀 온 마스>의 부분인 것이다. 이렇듯 영화의 장면과 소설 속 극동리 마을의 현실이 기묘하게 닮은 듯 영화와 소설 속 이야기로 왔다 갔다 한다.

이 소설은 SF 물이 아닌, SF적 요소를 배경으로 미스터리 사건을 풀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의 구성이나 내용조차 뭔가 기묘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광장에서 머리에 구멍을 내고 죽은 노인의 죽음은 섬뜩하면서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 죽음의 광경을 목격한 김영주 기자와 최, 우광일은 마을의 미심쩍은 사건과 과거를 파헤치는 인물로 나온다. 노인의 죽음 외의 또 다른 죽음과 과거에도 이와 같이 머리가 뚫린 죽음이 이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진실을 파헤치려는 세 인물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의심스럽고 웃는 얼굴 뒤에 감춘 무언가가 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사건에 접근을 하면 또 다른 사건이 나타나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마을과 마을 사람들은 더 수상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그렇기에 더 몰입하면서 읽게 되고 이 수많은 떡밥을 깔아놓은 작가는 나중에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결말을 향해 달렸다.





SF 적이면서 대단한 상상과 음모론이 가득한 소설.

읽으면 읽을수록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기묘한 소설이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를 읽으면서 드는 그 기묘함과 괴리감은 오래전 바이오산업 엑스포에 갔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흔히들 100세 시대를 말하지만 그 당시 열린 행사장에는 120세 150세를 바라보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인간의 수명 연장이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내세우며 온갖 것들을 보여주는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은 바로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였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만 같은 그런 곳에서 느낀 신기함은 잠시, 낯섦과 불편함이 엄습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희선 작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다각도로 탐구해 왔고 그만의 유일한 장르가 된 지 오래라고 출판사 소개 글에서 말한 것을 보면 이번 작품 역시 욕망이라는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인가 보다.

내가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이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밀려왔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우리와 함께 하나가 되자. 다 함께 똑같이..."라는 말이 섬뜩함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 주인공이 최인데 왜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 또한 동명인 최일까... 헷갈리게~'라고 생각했던 것이 마지막에 가서야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김희선 작가의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영화와 소설이 묘하게 섞여있다. 또한 소설과 현실이 닮아 있는 가운데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기에 더 섬뜩한 공포를 안겨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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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나무 1 - 그림 문자로 풀어내는 사람의 오묘한 비밀 한자나무 1
랴오원하오 지음, 김락준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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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모르는 문자를 공부해서 읽고 이해한다는 것에 조금 희열감을 느끼는 편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확실히 사람은 어릴 때 경험이 중요한데요. 제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이전부터 세 살 터울인 형을 따라 (아니 정확히는 형에게 끌려 ) -부모님이 낮에 장사를 해야 해서 형이 학교를 갔다오면 저녁 먹기 전까지는 형에게 자동 인계 되었다 - 만화방에 주말 빼고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습니다. 형은 만화책 잡고 혼자 낄낄 웃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전 옆에서 처음에 그림만 조금 보다가 지루해지만 형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그러다 밥 먹을 때 즈음 끌려서 다시 집에 오고. 전 아직도 그때 만화방이 생생히 기억나는데요. 여하튼 너무 답답해서 몇 번을 엄마한테 나도 글 가르쳐 달라고 진짜 많이 졸랐습니다. 그러면 항상 하는 말이, 그건 학교 들어가서 배우는 거야. 다 배우는 때가 있으니깐 지금 알려고 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요. 결국 8살에 국민학교 들어 가기 전까지 계속 만화방에 끌려 가서 조는 신세를 면치 못했는데요. 그러니 어린 맘에 얼마나 글을 읽고 싶었겠습니까? 학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찌나 읽고 싶던지. 

그렇게 저도 드디어 8살이 되자 1학년이 되었고 그렇게 맞은 3월 첫 토요일. 수업을 파하고 집에서 혼자 점심을 조용히 챙겨 먹고 - 여전히 부모님은 장사 하느라 바쁘셨다 - 돼지 저금통에서 동전 몇 개 슬쩍 빼 혼자 만화방 가서 그동안 형 옆에서 내용은 모르고 그림만 보던 만화책을 집어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때의 감동이란.  아, 이런 이야기였구나. 형이 그래서 낄낄 거렸구나. 이젠 만화방에 있는 책은 다 내꺼야! 쾌재를 불렀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사람 구실 할 수 있다는 것을, 어찌보면 너무 어린 나이에 절절히 몸에 박힌 것 같습니다.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면서는 누구나 다하는 영어와 고등학교 제 2외국어로 불어를, 대학 때는 독일어를, 유러피언 어의 근본에 대한 호기심과 심화 영어 공부를 위해서 라틴어를,  이왕 고대 언어 공부 시작한 거 나일롱 신자이긴 하나 기독교인으로서 성서 원전을 읽고 이해하고 싶어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공부까지 언어 공부를 쭈욱 이어나갔습니다.  이렇게 인도-유럽어족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언어 공부에 있어서 '어원'에 대한 이해가 클수록 공부하는 언어의 기초를 굉장히 탄탄하게 쌓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단어 확장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더군요.



저의 이런 언어 공부의 또 다른 분기점이 결혼하고 생기게 되는데요. 2000년 초반에 일었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강의를 통해서입니다. 당시 ebs를 통해 정말 재밌게 시청하고 책을 사서 보는데, 한문 원전을 읽는 데 뜻은 고사하고 읽기 조차 힘들더군요. 한자 문명권에 사는 1인으로서 기본 한자를 편하게 읽지 못한다는 점에 스스로 무척 자괴감이 들더군요. 인도-유럽어족의 바탕 언어인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는 띄엄띄엄 읽으며 뜻도 희미하지만 알아채면서 조선 시대까지 이 땅의 공용 문자인 한자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 중에서 겨우 머리에 남은 것만 가지고 지금껏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적당한 때 한번은 마음을 다잡고 한자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맘을 다지게 됩니다. 





몇 년 지나서 드디어 기회가 되어 본격으로 한자 공부를 시작하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무식한 방법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첫째, 옛날 서당에 가면 먼저 '천자문'을 가지고 한자를 배웠으니 우선 '천자문' 책을 사서 한자 공부를 시작한다.

둘째, 언어 공부에 있어 '어원'이 중요하니 한자 '어원'에 해당하는 부수 공부를 병행한다.

이렇게 천자문의 한자를 읽히기 위한 책, 천자문의 한자를 넘어 천자문 책 자체의 이해를 위한 책, 부수 해설을 위한 책 몇 권을 구입해서 한자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생깁니다.

'부수部首' 공부를 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는 것이 허신(AD 58?~149)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AD 121년)인데요. '부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바로 허신입니다.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540자의 한자를 부수로 세우고 부수자의 자형을 기준으로 한자를 분류하게 됩니다. - 이것이 오늘날 한자 사전 즉 '자전字典'의 원형이 된다 -. 설문해자에서 이런 부수를 기준으로 9,353개의 한자를 분류한 후 자형과 본뜻을 설명합니다. 시중의 많은 부수 관련 책들이 설문해자의 자형 분석을 기본으로 한자를 설명하더군요.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설문해자를 보면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설문해자의 자형 분석이 소전小篆을 기본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소전은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후에 이사李斯를 시켜 만든 서체(BC 220년 전후)이다. 문서를 통한 중앙 집권적 통치 방법을 쓰는 진나라 입장에서는 통일된 한자의 필요성이 대두되는데 이 표준 한자가 소전이다 - 소전이 오래된 글자이긴 하나 BC 1200년 전후에 사용한 갑골문에 비하면 천 년이나 지난 글자이거든요. 20세기 고고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갑골문자나 청동기의 금문자 등 고대문자가 대량으로 발굴되어 연구한 결과 소전의 자형이 갑골문에서 너무 많이 생략, 변형되어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가 꽤 된다는 것 알게 됩니다. 결국 원래의 자형에서 많이 변모된 소전에 의거하여 자형을 분석했기 때문에 설문해자에는 오류가 많이 남게 되어버렸습니다. 또 자형 분석에 근거해서 본뜻을 설명해 나가니 본뜻 역시 오류도 많은 거죠.(갑골문의 대가인 대만 학자 호후선(胡厚宣)은 갑골문을 토대로 설문을 분석해 보면, 잘못된 해석이 20~30% 정도 된다고 한다). 이런 설문을 토대로 부수를 해설 - 설문해자 자체 번역서도 많이 나와 있다- 하는 책이 시중에 많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부수 공부를 시작할 때 책 하나만 봐서는 절대 안 되고 부수를 풀이한 다양한 책을 보면서 스스로 이해되고 납득이 되는 해석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깨닫게 됩니다. 이런 작업이 저 같은 초보는 쉽지가 않더군요. 당시에는 한자 관련 인터넷 정보도 많지 않아서 집에 있는 책으로는 이해가 안 되면 도서관에 가서 좀 더 책을 찾아보든가 아니면 꺼림직한 상태로 그냥 넘기던가. 뭔가 진도를 나가는 데 명확해 지지 않고 오히려 더 흐릿한 경우도 많이 생기고... 여하튼 알아서 정리하는 수밖에 없더군요.

게다가 부수 공부를 하면서 하나 더 고려 사항이 있더군요. 현재 한자는 부수 214자를 기본으로 배열되는데요. 부수에 들어가는 다양한 한자들이 부수를 기본으로 의미가 파생되었다고 이해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소전을 거쳐 예서, 해서로 정착이 되면서 또다시 많은 생략과 변모를 맞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원래 갑골문의 모양의 온데간데없고 엉뚱한 모양으로 변하면서 엉뚱한 부수로 편입된 한자가 꽤 많다는 점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壽福'이라는 한자가 내용상 그냥 떠억 나오는 문장이 있었는데요. 선생님이 '목숨 수, 복 복'이라는 불러주더군요. 수업 끝나고 '수'자를 찾아보니 부수가 '士이더군요. (士가 나왔으니 한마디. 중학교 당시 한문 선생님 曰 '하나를 깨우치면 열을 아니 선비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만 나오는 설명을 합니다. 그땐 자형 분석이 그렇게 주먹구구식이었습니다). 그런 '士'에서 어떻게 '목숨'이라는 의미까지 나오게 된 걸까요? 어린 제가 이런 걸 알 턱이 없으니 고등학교 때까지는 한자는 그냥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다시 한자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결론적으로 壽는 원래 '士'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글자였습니다(시중에 士를 토대로 壽를 설명하는 글이 천지다).

결국 부수의 자형을 갑골문을 바탕으로 잘 이해했더라도 부수에 속한 한자를 살피는 데에는 무척 세심해야 한다는 것이죠. 부수에 속한 글자 중에 어떤 것은 부수로부터 파생되었고 어떤 것은 부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자인 줄을 알아야지 제대로 된 한자 공부가 되니 초보 입장에서는 정말 갈 길이 보이지 않더군요. 결국 거의 우격다짐으로 어찌어찌해서 천자문도 때고 부수 공부도 대충 마치고 구미가 당기는 옛 글들을 사전 찾아가며 어눌하게나마 읽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에 아내로부터 조금 솔깃한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바로 '한자나무'라는 책입니다. 미리 보기를 통해서 대략 살펴보는데 적잖게 놀랐습니다.

제가 한자 부수 공부를 대략 마치고 몇 년 지나서 부수라든지 기본 (상형. 지사. 회의) 한자에 대해서 굉장히 새롭게 이해하게 만든 책이 있었는데요. 그 책과 굉장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더군요. (나중에 '한자나무'를 받아보고 혹시 제가 본 책이 이 '한자나무'의 영향을 받았나 살펴보니 대만에서 한자나무가 출판되기 이전에 출판된 책이더군요. 자형의 분석이나 설명도 비교해 보니 많이 다르네요)



그간 한자를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은 제대로 된 한자 (자형 설명) 책은 (부수와 같은) 기본 한자가 들어가서 파생되는 여러 한자들을 설명할 때 파생된 모든 한자 속을 관통하는 기본 한자의 쓰임을 공통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과연 한자나무 이 책은 어떨지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받아서 빠르게 살펴보다가 아래 단락을 읽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자의 비밀을 푸는 것은 어떤 사건을 추리해 해결해가는 과정처럼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비밀을 풀 때 어느 한 단계라도 잘못되면 마지막에 가서 잘못 해석하게 되거나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

(중략)

...

이 책에 나오는 한자들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검증 원칙을 통과했다. 먼저 반드시 갑골문, 금문의 자형에 부합하고, 둘째 반드시 역사적인 사실이나 선진시대의 서적 기록에 부합해야 하며, 셋째 모든 한자 부호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일치해서 그 한자 부호를 포함한 다른 한자에서도 똑같이 쓰여야 한다. 넷째 파생된 뜻을 반드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자형과 뜻이 일관성 있게 변화해야 한다. 예컨대 '갑'이라는 부호와 이 부호와 관계있는 '을'이라는 부호 사이에는 합리적인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논리적으로 정확하고, 고대 문물이나 서적에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다석 가지 검증 원칙은 한자 시스템을 지탱하는 다섯 개의 기둥으로서 한자 시스템을 체계적, 일관적, 합리적으로 만들어 쉬운 이해를 돕는다."

한자 나무 1 p. 24

이 대목을 읽고는 진짜 감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위에서 풀어쓴 제 생각이 저자의 세 번째, 네 번째 검증 원칙에 걸쳐 있던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런 저자라면 그의 얘기를 믿고 따라가 보야도 된다는 확신이 생기더군요.

이 문장을 만난 이후부터는 모든 의심의 눈초리는 내려 두고 정말 기쁘게 읽었, 아니 읽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름 넘어 책상 위에 두고 저녁마다 다시 읽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간 제가 부수 공부하며 참고했던 책들도 다시 들춰보고 이 책과 비교하면서 조금 다가오지 않았던 한자들을 새롭게 정리하고 있답니다.

이 책은 다시 한자 공부를 시작하는 이에게도 좋은 책이지만 어찌 보면 이 책은 한자를 처음 공부하는 이에게 절대적으로 유용할 책입니다.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맞은 한문 시간에 가장 먼저 한 것이 일 단원 공부가 아니라 한문 교과서 맨 마지막에 있는 '부수'를 따라 읽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도 무슨 글자인지도 모른 체, 7-8획 정도 넘어가면 가뜩이나 글자도 복잡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무작정 따라 하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부수 '辵착'을 왜 '책'받침이라 하는지 설명도 없이 책받침, 책받침 하던 무심한 한자 선생의 목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땐 그렇게 선생도 무식했고 우린 무식하게 그걸 따라 했다).

제가 만약 한자 공부를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했다면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는 상용 한자 정도는 힘들이지 않고 그냥 내 것이 되었으리라 감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만큼 초심자에게 기초를 다지는데 매우 유용한 책 같습니다. 주위에 한자 공부를 막 시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고민 없이 그냥 사주고 싶은 책입니다.



한자 나무 1권에서는 '人'을 기본으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한자들을 살피고 있는데요. 지금껏 만나 본 자형 풀이 책으로서는 최고라고 말하고 싶네요.

초반에 孕, 秀, 盈으로 이어지는 풀이만 보더라도 -이게 다 人과 연결돼 있다! - 이 책이 풀어가는 내용이 얼마나 과함 없이 물 흐르 듯 자연스러운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진짜 설명이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검색해 보니깐 대만에서 현재 5권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국내에는 1, 2권이 출간되어 있네요. - 1권은 사람이라는 큰 틀에서, 2권은 사람이 가진 신체 부위를 중심으로 - 3, 4, 5권에서는 어떤 한자를 중심으로 한자 나무를 그렸는지도 몹시 궁금하고 하루빨리 번역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한자 공부를 하면서 찜찜하게 머릿속에 남은 한자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은 욕심도 생깁니다.

최근 10년간은 사진 작업에 매달리느라 책은 항상 카메라 뒷전에 있었는데요. 모처럼 카메라를 던져두고 책 읽는 재미에 흠뻑 빠졌던 9월이었습니다. (이 책의 특성상 한번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올려 두고 다락에 넣어둔 곶감 빼먹듯 매일매일 야금야금 보는 재미가 있다)

혹시 한자의 체계와 구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입문하고자 하는 이라면 꼭 곁에 두길 바라면서 오늘 글을 맺겠습니다.



蛇足

一. 이 책은 번역가도 번역가이지만 편집자의 공이 정말 많이 들었으리라 짐작된다. 우선 원서에는 없는 한자 관련 배경지식을 짧게 정리해서 삽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자책이라는 특성답게 한국식 뜻과 음을 한자마다 일일이 새롭게 다는 것은 물론이고 한자와 관련해서 기억하면 좋을 한국식 단어까지 새롭게 찾아 집어넣는 등 티 안 나며 돈 안되는 일에 시간을 갈아 넣었다. 부디 건강하게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二. '壽' 자형도 人에서 시작이다. 이럴 수가! 궁금하면 한자 나무 1 60쪽을 보라.

三. 辵의 음은 '착'이고 좌변에서 부수로 파생 한자의 받침 역할을 하기에 '착받침'으로 읽어야 한다. 책받침은 명백한 오류이나 사람들이 그리 부른다며 다들 그리 부른다.


교유당 서포터즈 4기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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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집 의사 친구, 닥터프렌즈
닥터프렌즈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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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정도는 아닌 거 같고 그래도 뭔가 몸의 어딘가가 불편하게 께름칙할 때 속 시원하게 궁금증을 해결해 줄 친구 같은 의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가끔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평소와 다른 증상이 나타나면 그나마 네이버 검색을 통해 지식인에서 정보를 찾아보곤 하지만 의사들의 답변이라고 해도 결론은 정확한 증상을 판단하려면 병원에 내방하여 진료를 받으라고 되어 있다. 이렇듯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순간순간 심각하진 않아도 이런 증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등 수많은 질문과 궁금증 속에 살고 있다.

<내 이웃집 의사 친구 닥터프렌즈>는 절친 의사 3명이 똘똘 뭉쳐 만든 의학? 에세이다. 내과, 이비인후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3인은 친구이자 의사이다. 말 그대로 이웃집에 오래 살던 친구처럼 편하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면 대답해 줄 수 있는 그런 의사가 되어보자며 의기투합하였고 이 셋은 책을 내기 앞서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여 왔다.

의사라는 직업 자체만으로도 무척 바쁠 텐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상담과 다양한 인생 이야기까지 더하며 권위적인 의사가 아닌 그야말로 이웃 같은 의사의 모습으로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온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의사들이 마치 현실에도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들은 밴드를 하지만 이들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것. ㅎ 사람이 아플 때 마음이 약해지는 것처럼 병원이라는 곳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인식 속에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친근한 곳은 아니다. 어렵고 불편하고 잘 모르기 때문에 더 걱정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환자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잘 설명을 해 주고 상냥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병에 대한 것이라든지, 질병의 상황 등에 대해서는 조금 세세하게 알려주면 좋으련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그렇게 친절한 의사선생님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오진승, 우창윤, 이낙준 이 세 명의 의사쌤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헤아려 일상에서 흔히 고민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상담 사례 등을 토대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상담 사례에 대한 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대생 시절의 에피소드나 꿈, 살아온 이야기 등도 있어 흥미롭고 의사선생님이기에 앞서 인간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닥터프렌즈 유튜브 채널을 찾아서 봤는데 생각했던 거 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재미난 의사들의 수다여서 흥미로웠다.

일상 속에서 문득 궁금해지는 여러 질문들에 대한 답도 있고 의사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인생 이야기도 있고... 흥미롭고 유쾌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읽다 보면 유익한 정보들도 꽤 많은 편이다. <내 이웃집 의사 친구 닥터프렌즈>라는 제목처럼 이런 의사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 되길 우리도 함께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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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 교유서가 소설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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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작가의 이번 소설집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신춘문예 등단 후 7년간 발표한 소설들을 묶어서 낸 <안녕, 레나>의 개정판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20년도 전에 쓴 소설을 다시 꺼내 읽고 당대의 시대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적당히 수정된 결과물이다.

총 9개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자면 <자전거 타는 여자>와 <사루비아>와 <호출, 1995>였다.

짧은 9편의 단편소설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소외되고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야기라는 점이다.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취업이 힘들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청춘의 삶은 글을 쓴 그때나 지금이나 더 나아진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내 집 마련의 꿈을 꿔 보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버겁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이야기가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서른두번이나 이력서를 냈지만 자신을 원하는 곳이 없어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나,

교수직을 퇴임하면 여행이다 즐기며 살겠다던 남자는 갑자기 쓰러져 꿈꿔온 인생을 펼쳐보기도 전에 죽음의 문턱에 임한다.

<외출>

임대 아파트 입주와 내 집 마련의 꿈을 여전히 꾸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아파트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문화.

<이사>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아파트라는 공간 안에서 식물을 키우며 위로받는 여자.

<사루비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자신의 박복한 인생을 해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여자.

<목포행 완행열차>

자살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햇빛 밝은>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좁은 집에서 돌보는 모녀

<자전거 타는 여자>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어딘가에 흔하게 존재할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 엄마와 딸은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를 아버지를 돌아가며 간병하게 되고 행여 엄마가, 딸이 간병 일이 지쳐 도망가지 않을까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간병 일이 얼마나 힘든지, 오랜 투병생활에 가족들이 얼마나 지칠지 짐작이 되기에 모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서로가 서로의 감옥이 되어 옥죄는 삶을 살던 모녀. 젊은 딸은 이러한 삶이 더 괴롭고 공포스럽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의 상을 치른 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엄마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는 딸. 숨 막히던 삶에서 이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서글픈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버거움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끔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권태랄까 나른함이랄까 하는 것들을 잠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리는 까닭이었다.

죽는 이유는 유서를 쓸 때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가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죽고, 어떤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어떤 날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 P30

왜 아파트에서 살긴요? 그래도 맘만 좀 독하게 먹으면 아파트가 살기는 편해요. 그냥 안에서 문 단단히 걸어 잠그고 누가 와도 나 몰라라 하면 되거든요. 잡상인이 찾아와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부녀회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관리실에서 띵동 해도 모르는 척. 몇 번만 그렇게 살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그냥 자기들 관심 밖에 내놓는 거죠. 어쩌다가 모여서 입이 심심하거나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우르르 모여서 입을 댓발이나 내밀고 궁시렁거리겠지만, 뭐 섞여 산다고 안 그러겠어요. 사람 사는 데서 말 나오지 어디 딴 데서 나오나요. 살면서 젤 무서운 게 사람이에요.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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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미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2
천세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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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문화비평가인 천세진 작가의 소설 <이야기꾼 미로>는 한편의 판타지 동화 같은 이야기다.

총 3부로 나누어진 구성으로 1부에서는 다른 세상에서 온 미로를 만나게 된 사건과 이후 홀연히 사라진 미로, 미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글로 써놓고 여행을 떠난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2부에서는 외삼촌이 쓴 미로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3부에서는 호수 세계의 이야기를 맺으며 소감과 함께 마무리 짓고 있다.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기는 어렵지. 무척이나 어렵지만, 그렇다고 만날 수 없는 건 아니야."

"꽃들의 숨안개를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당연히 생기지.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면, '그리움거울 호수'로 가는 길이 열리는데, 나는 그 길도 걸어보았지. 모든 이야기꾼에게 허락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운좋게도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 그리움거울 호수에 갈 수 있었지. 그곳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걸 보았어. 만났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무엇을 만났는데요?"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만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존재야. 그게 꽃들의 숨안개가 허락하는 비밀이야."

"그럼......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면, 그리움거울 호수에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어요?"

"있지! 너에게서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난다면!"

p. 46~47


어쩌면 <이야기꾼 미로>의 탄생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엄마를 잃은 슬픔은 엄마를 잃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그리움과 슬픔에 울고 또 울었다. 아이의 눈물은 눈물호수를 넘쳐흐르게 하고 아이 울음소리가 함께 넘쳐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 골목마다 울음으로 가득 찼다. 호수가 범람하고 마을이 침수될 위기에 몰린 정도의 슬픔. 그것이 엄마를 잃은 아이의 슬픔의 무게이자 슬픔의 깊이일 것이다. 마을이 아이의 눈물로 침수될 상황에서 이야기꾼이 건넨 이야기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이야기꾼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이야기꾼 미로>의 중심 내용이 된다.

미로야, 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어.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갖고 있지. 세상에 죽은 것은 단 하나도 없어.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그리고 세상에는 아주 많은 말이 있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겠지?

p. 50-51


열한 살의 미로는 이야기꾼 구루 할아버지와 크고 작은 호수마을들을 둘러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미로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잔잔하면서도 술술 읽히는 이야기는 시인의 감성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호수마을의 풍경들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마음으로 미로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호수마을 사람들. 그리고 미로와 구루 할아버지가 만나는 호수 세계 이야기는 딴 세상 속 이야기 같지만 다름 속에서도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단의 모습을 통해 세상은 어디서든 악이 존재하고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니?"

"나무 이름들이요! 밤나무하고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가 서로를 소개한다면 웃기는 대화가 이어질 거 같아요. 밤나무가 '나는 밤나무다!'라고 말하면, 나도밤나무가 분명히 '나도밤나무다!'라고 말할 테고, 밤나무가 자기하고 모습이 다른 나무가 '나도밤나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너도밤나무라고?'하며 물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옆의 나무가 '그래 너도밤나무다!'라고 대답을 하며 끼어들 거고, 그러면 세 나무가 말다툼을 벌일 거 아니에요. 그러다가 셋 중의 어느 나무가 '먼 나무야, 대체 이 나무는?'하고 말을 하면 이번에는 '먼나무'하고 '이나무'가 끼어들어, '밤나무면 밤나무지 왜 너도나도 밤나무라고 난리들이야, 밤나무들은 너도나도 꽝꽝 막혔어'라고 할 거고, 그러면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던 꽝꽝나무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왜 자기를 물고 늘어지냐고 그럴 거고, 점점 더 난장판이 되는 장면이 떠올라요!"

p. 140 ~141


이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이름을 일일이 붙여가며 언급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무의 이름에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상상하며 풀어놓듯 호수 마을마다 아름다운 이름들이 참 인상적이다. 마을, 나무, 호수, 버섯 등 수많은 사물에 이름을 붙여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이름은 아무렇게나 붙이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내용은 부족함이 없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현실을 꼬집는 듯, 공감과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이야기꾼 할아버지와 여행을 하면서 미로는 이야기꾼이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리움거울 호수에서 그토록 그립던 엄마를 만난 미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이별의 슬픔을 딛고 나아가게 된다. 그리움거울 호수의 이야기와 소금기억 호수의 이야기가 특히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미로는 여행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고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 두 사람이 이야기꾼의 집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을 때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기운, 마을 여기저기 저녁 불빛이 밝혀지고 집집 굴뚝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 골목 어귀에서 아직도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밥 먹게 들어와~'하는 엄마의 소리에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들의 소리.

마지막 장면들은 마치 영화처럼, 장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이었다. 어릴 적 어디선가 경험했던, 실제 만났던 그 풍경들을 작가가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듯한 내용이 그때의 추억과 함께 가슴 뭉클함을 전해주기도 했다.





참 따스한 이야기다.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이는 파문 같은 감동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시인의 감성으로 써서 그런지 책의 문장과 내용이 너무 아름답고 아름다움 속에 삶의 지혜와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곳곳에 묻어나서 이 또한 좋았다. 엄마를 잃은 열한 살 꼬마 미로는 이야기꾼 할아버지를 따라 떠난 호수 세계 여행을 통해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미로 같았던 미로의 삶이 여행을 계기로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된달까.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모모>도 생각나고 정채봉 시인의 시도 생각나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건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미로가 들려준 이야기 말고 이젠 나만의 이야기를, 우리들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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